[이슈&인물] ‘20돌’ 맞은 특허법원...조경란 법원장 “지적재산권, 국가 경제와 함께 발전”

입력 2018-04-2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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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재산권법은 국가 경제와 함께 발전한다. 기술을 발명해 내는 기업이 없다면 관련 법도 무용지물이다. 현재 우리 지재법은 세계적인 수준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는다. 삼성과 현대자동차 등 우리 기업의 기술 수준이 높아져 활동 무대를 세계로 옮겼고, 그에 따라 법도 발전했기 때문이다.

“법원은 국가 발전 속도에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국가가 발전하면서 사건의 질이 달라지고, 동시에 특허법원도 같이 발전했습니다.”

전문법원인 특허법원이 올해 20주년을 맞았다. 이투데이는 지난 16일 대전 서구 특허법원에서 조경란(58·사법연수원 14기) 특허법원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20돌 맞은 특허법원...“국가와 함께 특허법원도 발전”

특허법원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3월 출범했다. 우리 과학 기술 발전으로 지재권을 적극적으로 보호할 필요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조 원장은 “예전에는 특허청에서 사실상 1·2심을 하고 대법원에서 법률심(법리를 심리하는 심급)만 담당했다”며 “특허법원이 생기면서 사실심(사실관계를 판단하는 심급)을 법원이 맡게 됐다”고 설명했다. 전 세계적으로 분쟁이 잦아지는 상황에서 지재권 보호가 중요하다고 판단해 사실관계부터 법원에서 따지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 특허법원은 특허심판 불복 소송과 일반 민사소송 항소심 사건을 맡고 있다. 특허심판 불복 소송의 경우 특허청과 특허심판원의 결정이 적법한지를 다투는 일종의 행정소송이다. 그밖에 특허침해금지청구소송이나 손해배상청구소송 등 항소심 사건을 심리한다.

특허법원으로 오는 사건 수는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1998년 출범 당시 총 1119건이었던 사건 수는 지난해 총 1712건으로 절반 이상 증가했다. 조 원장은 “특히 2016년 특허소송 관할 집중이 이뤄지면서 사건 수가 많이 늘었다”며 “항소심에 와서 판단을 받아보고 싶다는 뜻”이라고 했다. 애초 각급 고등법원이나 지방법원 항소부에서 담당하던 민사소송 항소심 재판을 2016년부터 특허법원이 맡는다.

법관의 전문성은 특허법원의 장점이다. 조 원장은 “외국에 비해 우리 법원 심리 속도가 빠른 편”이라며 “소속 법관 자질도 높고 지속해서 교육을 하고 있다”고 했다. 현재 특허법원 소속 법관은 총 17명(법원장 포함)이다. 최대 5년까지 근무 가능해 이른바 ‘전문 법관’으로 통한다. 과학기술 분야 전문가인 기술심리관·조사관 등 20여 명이 재판을 돕는다.

◇특허분쟁 잦은 기업...“출원부터 꼼꼼하게”

특허법원 주요 이용자는 기업이다. 각 기업이 특허를 두고 다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조 원장은 “특허를 출원할 때 처음에 어떻게 잘 받을지를 고민해야 한다”며 “잘못하면 상대방이 법을 위반하지 않고 회피할 수 있는 방법이 생긴다”고 말했다.

15년 동안 이어진 중소기업 서오텔레콤과 LG유플러스 간 특허분쟁이 대표적이다. 서오텔레콤은 위급 상황 발생 시 휴대전화 비상 버튼을 누르면 보호자에게 메시지가 전달되는 기술을 개발해 특허로 등록했다. 그런데 LG유플러스가 자사 휴대전화에 유사한 기술을 탑재했다. 이후 소송전을 이어오던 서오텔레콤은 특허심판원에 권리범위확인심판을 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지난해 특허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지난 1월 LG유플러스 손을 들어줬다. 양측의 발명 구성요소와 작용 효과 등이 다르다는 게 이유였다. 재판부는 당시 “창의적이고 좋은 발명이라고 하더라도 법률로 보호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특허출원명세서를 명확히 작성하고 청구범위 문언을 제대로 작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하는 판결”이라고 했다.

조 원장은 “일반 민사소송에서도 상대방한테 돈을 빌렸는데 차용증을 안 받은 경우가 있다”며 “원칙적으로 빌려준 사실이 있으면 소송에서 이겨야 하는데 법원에서는 증거가 없고 상대방이 부인하면 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허출원 단계부터 변리사와 함께 치밀하게 검토해 명세서를 작성해야 하는 이유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때는 관련 특허가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고도 조언했다. 특히 당장 기술 개발이 급한 중소기업의 경우 이를 소홀히 하다가 뒤늦게 낭패를 볼 수 있다.

기업의 영업비밀도 마찬가지다. 조 원장은 “기업 입장에서 직원 채용 시 비밀유지 서약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며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영업비밀이 유출됐을 때 제재 방법이 없다”고 지적했다. 다른 기업 직원을 ‘스카우트’할 때도 영업비밀 침해 소지가 없는지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국제재판, 우리 기업에도 유리”

조 원장은 특허법원 관할을 부정경쟁방지법과 가처분 신청 항고 사건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보통 개인이나 기업이 기술을 발명하면 두 가지 방법 가운데 하나를 선택한다. 특허를 받아 독점적인 이익을 누리는 대신에 기술을 공개하거나, 다른 사람 몰래 영업비밀로 관리하는 식이다. 전자는 특허법과 실용신안법, 상표법, 디자인 보호법 등에 해당돼 관련 소송을 특허법원이 담당한다. 후자는 부정경쟁방지법으로 따로 보호하며, 각급 법원에서 심리한다. 조 원장은 “실제 사건에서는 특허뿐만 아니라 영업비밀 여부 등 부정경쟁방지법 관련 주장도 많이 한다”며 “결국 기술에 대한 판단이라 함께 심리하는 것이 더욱 효율적”이라고 했다.

현재 지방법원 항소부가 맡는 가처분 신청 항고 사건도 마찬가지다. 가처분이란 길게는 수년 동안 이어지는 본안 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임시 조치를 하는 것이다. 당장 제품 판매나 기술 사용 등이 금지되면 당사자 입장에서는 피해가 크다.

외국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손해배상액도 보완할 부분이다. 조 원장은 “특허권자 입장에서 특허침해로 인한 경제적 손실에 대한 손해배상을 충분히 못 받는 경향이 있고 그 손해를 입증하기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특허법원은 6월부터 시행되는 국제재판부에 거는 기대가 크다. 특허법원은 외국 국적 당사자가 손쉽게 재판에 참여할 수 있게 영어로 진행하는 국제재판을 한다. 지난해 총 처리 사건 582건 가운데 194건(33.3%)이 외국 개인 또는 법인이 소송당사자인 사건이었다. 때문에 국제재판부를 설치해 우리 법원의 국제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왔다.

조 원장은 “국제재판을 하면 외국 국적 당사자들을 끌어올 수 있다”며 “지재권 소송이 세계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법원에 소송을 낸다면 그 파급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우리 기업 입장에서도 손해 볼 일 없는 장사다. 조 원장은 “외국어로 재판하면 국내 당사자들이 불리하지 않을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면서도 “국내 기업도 우리 법원에서 먼저 판단을 받으면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일종의 ‘테스트 베드(Test Bed·새로운 서비스의 성능과 효과를 시험할 수 있는 환경)’”라고 강조했다.

한편 특허법원은 이달 23일 ‘20년의 도전과 혁신, 세계로 나아가는 특허법원’이라는 주제로 국제심포지엄을 연다. △특허법원 변화와 미래에 대한 준비 △글로벌 지식재산분쟁과 국제재판부 △글로벌 지식재산분쟁의 이상적 절차규정 등 3가지 세부 주제를 다룬다. 정상조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이광형 KAIST 교수 등이 발표자로 참가한다.

◆조경란 특허법원장은

조경란(58·사법연수원 14기) 특허법원장은 전남 목포 출신으로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 1985년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로 임관했다. △서울민사지법 판사 △서울고법 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법원도서관장 △청주지법원장 △서울고법 부장판사 등을 거쳤다. 서울중앙지법 재직 시 국내 첫 담배소송을 맡았다. 특허법원 개원 20년 만에 여성 법원장은 처음이다.

▲사진 설명

조경란(58·사법연수원 14기) 특허법원장이 개원 20주년을 맞아 대전 서구에 위치한 특허법원 회의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특허법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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