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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장관들을 살려라
입력 2018-04-17 13:33
주필

“니, 장관이 얼마나 좋은지 아나? 모르제?”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복역 중인 김기춘(金淇春)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26년 전인 1992년 12월 부산지역 정부 기관장들이 모인 초원복국집에서 한 말이다. “고향에서 대통령이 나오면 돈이 생기나 밥이 생기나, 그 말은 맞는데…” 그러면서 한 말이다. 당장 돈과 밥이 생기는 건 아니지만 그 좋은 장관 자리는 생긴다, 장관이 되면 돈이 생기고 밥이 생긴다는 뜻이었다고 해석해도 된다.

장관이 되면 개인과 가문의 광영이지만 인사와 각종 행정행위를 통해 돈과 밥을 챙길 수 있고, 그만둔 뒤에는 여러 직위를 맡을 기회가 생기는 건 물론 사회적 대우와 안정적 연금이 확보된다. 장관은 부가가치가 매우 높은 직업이다. 그러니 장관 시켜줄 사람을 위해 열심히 뛰어 공을 인정받고 충성만 하면 된다.

그때든 지금이든 이런 생각은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경륜과 역량을 펼치고 봉사하는 자세를 갖춘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잠깐만 참고 견디면 누리고 사는 시절이 열리니 청문회에서 까이고 망신당하는 건 일도 아니다.

좋은 장관, 소신 있는 장관도 많았다. 박정희 시대의 인물들이지만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김학렬(金鶴烈), 보사부 장관 신현확(申鉉碻), 문교부 장관 민관식(閔寬植) 등은 소신과 고집으로 그 부처의 얼굴을 만들어냈다. 초대 문화부 장관 이어령(李御寧)은 쉴 새 없이 떨어지는 지시와 아이디어 때문에 직원들이 늘 고달파했지만 문화행정의 튼튼한 얼개를 짠 인물이다. 지금은 저술가로 더 유명한 유시민(柳時敏) 씨도 보건복지부 장관으로서는 평이 좋았다.

그들이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은 소관 업무에 대해 다각도로 판단하고 신중하게 고심하며 행정방침을 결정한 뒤 그 결과에 책임을 졌기 때문이다. 대통령이나 총리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않고 잘못을 부하 직원들에게 떠넘기지 않았다. 결정의 영향력이 대통령, 국무총리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장관의 중요한 덕목은 무엇이든 결정을 하고 책임을 지는 것이다. 장관은 소관 행정에서 결정적 결정권자가 되어야 한다.

대학 입시제도 개편과 국가교육회의의 활동을 지켜보면서 장관의 역할을 생각하게 된다. 김상곤(金相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대입 개편에 관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국가교육회의에 결정을 떠넘겼다. 국가교육회의는 엊그제 대입개편특위와 공론화위원회 가동 등을 발표했지만, 불과 4개월 안에 제대로 된 개편안을 만들어낼는지 걱정스럽다. 대입 개편이 ‘대입 개판’이라는 말이 나돈다.

그동안의 언행이나 태도로 보아 교육행정의 우두머리가 되면 방향이 옳든 그르든 무언가 만들어낼 것 같던 김 장관은 취임 이후 한 일이 없다. 오히려 최근 1년 사이 대입 정책을 담당한 국장들을 4개월, 5개월 7일, 3개월 15일 만에 세 번이나 갈아치웠다. 말썽이 나자 책임을 떠넘긴 문책성 인사라는 해석이 파다하다.

교육부 장관만 이런가. 책임지는 장관이 없고 현장에 밀착하는 장관이 없다. 그 첫 번째 이유는 그런 성향의 사람들을 임명한 탓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청와대가 재량권과 설 자리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국무회의보다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 더 비중을 두어 이를 통해 모든 걸 논의하고, 장관은 자기 부처 인사도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니 무슨 결정인들 할 수 있을까. 오히려 이 상황에 안주하면서 편하게 벼슬살이를 하고 있는지 모른다.

노무현 정부는 참여정부, 문재인 정부는 참여연대정부라는 말을 들을 만큼 이 정부에서는 참여연대 출신들의 끼리끼리 정서와 문화가 국정 운영을 지배하고 있는 분위기이다. 내각과 청와대가 서로 겉도는 상황이 지속되면 국민생활과 직결된 각종 행정이 제대로 굴러가지 못하며 그 피해는 일반 국민이 당하게 된다. 장관들을 살려라. 그리고 장관들은 스스로 살아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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