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보는 경제] 기업 구조조정과 휴브리스(Hubris)

입력 2018-04-12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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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훈 시인·BTC 감사

금호타이어가 큰 고비를 넘기고 매각 계약을 체결했다. 노조가 전 조합원의 의사를 묻기로 하였고 60%가 넘는 조합원들이 매각 작업에 찬성한 이후의 일이다. 그런데 최근의 기업구조조정 작업은 왜 이리 힘들까.

수에즈 운하는 지중해와 홍해를 연결해 주는 수로(水路)다. 영국에서 인도로 항해할 경우 아프리카를 돌아가는 노선 2만4500Km에 비해 1만5000Km로, 무려 9500Km나 단축한다. 영국의 반대 아래 프랑스가 나섰다. 프랑스의 외교관이자 기술자였던 페르디낭 드 레셉스가 이집트 왕의 허가와 이집트의 종주국인 오스만투르크의 동의를 얻어 1858년 회사를 설립하였다. 약 4000만 달러의 자본금을 가지고 1859년 공사가 시작되었고 10년 후인 1869년 11월 완공, 첫 통행이 이루어졌다.

수에즈 운하의 성공은 파나마 운하 건설에 대한 가능성으로 이어졌다. 당시 뉴욕에서 배를 타고 샌프란시스코를 가려면 남아메리카를 돌아 마젤란해협을 통과해야 했는데 2만2500km의 기나긴 항로였다. 파나마 운하를 뚫는다면 불과 9500km로 단축될 수 있었다. 1880년 다시 프랑스가 나섰다. 건설 책임자는 당연히 '레셉스', 프랑스 정계나 재계 모두 대대적으로 그의 등장을 환영했다.

수에즈 운하의 길이가 193km인 데 비해 파나마 운하는 기껏해야 80km 내외, 10년 걸린 수에즈 운하에 비해 그동안의 기술 발전 등을 감안하면 수월한 공사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파나마 운하가 완공된 것은 1914년, 34년이나 걸렸다. 건설현장에서 2만7500명의 노동자들이 사망했고, 신화의 주인공 레셉스는 8년간 3억5000만 달러를 탕진한 후 파산했다. 우여곡절 끝에 미국 정부가 그 공사를 넘겨받았다. 1903년 미국은 파산한 레셉스의 운하 굴착권과 기계 설비 일체를 프랑스로부터 사들였다. 이후 12년간 연인원 7만여 명, 공사비 4억 달러를 들여 1914년 8월 15일에 완공했다.

'레셉스'는 왜 파나마 운하 건설에서는 실패한 것일까? 수에즈 운하는 해발 15미터의 사막 지역을 통과하는 것이어서 지류(支流)와 지류를 연결하는 공사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파나마 지역은 해발이 150미터로 높았다. 게다가 습도도 높아 열대 말라리아 등 전염병이 창궐했다. 레셉스는 이 점을 간과했다. 수에즈의 성공에 눈이 멀어 파나마의 문제점을 보지 못한 것이다.

신의 영역을 넘보는 인간의 오만함을 그리스인들은 '휴브리스(Hubris)'라고 한다. 이 말을 토인비가 재해석했다. 과거의 성공 경험을 과신해 과거에 했던 방법을 고수하는 것을 두고 토인비는 '휴브리스'라고 규정했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구조조정의 경험이 많다. 1997년 IMF 경제위기 시 대우그룹을 비롯하여 굵직한 구조조정 업무를 해낸 성공 사례를 가지고 있다. 2003년 카드대란 위기 때에도 쌓고 닦은 구조조정 업무 실력을 발휘했다. 이외에도 성공 사례는 적지 않다.

그런데 지난 9년간의 구조조정 작업은 왜 실패했던 것일까. 성동조선은 법정관리를 신청했고 대우조선에는 엄청난 돈이 투입되었다. 대우건설은 매각에 실패했고 금호타어어도 작년의 매각 실패 뒤 우여곡절을 거쳤다. 이미 법정관리를 거친 STX조선해양은 다시 법정관리라는 운명을 벗어날 수 있을지… 벗어난다 해도 비용은 충분히 지불되었다. 시대가 바뀌고 여건이 달라졌는데도 그동안 과거의 방식에 매달린 것은 아닌가. 딜의 진행에 이익을 우선하고, 노조를 설득하지 못하고, 이해관계자들에게 휘둘린 것 아닌가.

최근 새로운 시도가 등장했다. 원칙을 정하고 책임자가 직접 현장에 출두하여 광주에서 교섭하고 창원에서 설득했다. 물러서지 않았다. 전에 없던 일이다.

과거의 방식을 답습하는 것은 문제해결에 방해가 될 뿐이다.

그러나 아직 '휴브리스'가 만연하다. 그리스인들은 '휴브리스' 짓을 하면 ‘복수의 여신’인 네메시스가 찾아와 벌을 내린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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