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성헌의 왁자地껄] ‘안전’ 빠진 ‘안전진단’ 강화방안

입력 2018-03-07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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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사회부 차장

아파트 가격을 잡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새해 들어서도 거침없다. 아파트 가격 상승의 주범(?)으로 꼽히는 재건축 단지들을 규제하기 위해 ‘안전진단 강화’라는 카드를 빼들었다.

‘안전진단 정상화’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그동안 재건축이 진행된 단지들을 비정상으로 만들기까지 했다.

얼마나 급했는지 통상적으로 20일인 행정예고 기간을 열흘로 줄인 데 이어, 이 기간이 끝나자마자 바로 시행하기로 했다. 여러 사정이 있겠지만, 일부 단지들이 안전진단부터 받기로 서두르는 등 움직임이 나타나자, 이를 차단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우세하다.

이 같은 정부의 전광석화(電光石火) 같은 움직임에 재건축 추진 초기인 단지들은 혼란에 휩싸였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서울에서 재건축 연한이 도래했지만 아직 안전진단을 받지 않은 아파트는 총 10만3822가구에 달한다.

정부가 주민 반발로 당초 강경한 입장에서 한발 물러나 주차장 여건·소방 용이성 등을 안전진단 때 높게 반영해 주겠다고 발표했지만, 강화된 규정이 워낙 세다 보니 재건축 가능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재건축에 필요한 E등급이 나오려면 주거환경의 9개 항목 총점이 20점 이하여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주차·소방 용이성 이외 나머지 50%를 차지하는 △도시 미관 △침수 피해 가능성 △일조 환경 △사생활 침해 △에너지 효율성 등의 항목에서 모두 낮은 점수를 얻어야 한다.

낡고 주차 공간이 부족해도 인근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쾌적한 주거 환경을 지닌 대부분의 재건축 해당 단지들은 총점 20점 이하를 받긴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 관련업계의 중론이다.

때문에 목동, 강동구 등 재건축 단지들은 수억 원의 돈이 들어가는 안전진단을 보이콧하고 새 안전진단 기준의 위법성을 다투는 소송 등을 검토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좀 더 좋은 주거 환경을 갖고 싶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들 단지 주민들 중에는 투기수요도 있겠지만, 대부분 아파트 입주 초기부터 살아온 실거주민들이다.

물론 재건축을 통한 시세차익을 바라는 기대감이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층간소음과 배수관 노후, 누수, 주차 불편, 내진설계가 안 된 불안감 등에서 해방되길 고대하고 있다.

1980년대에 지어진 아파트들이 주거의 질(質)보다 싼값에 대량 공급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졌다는 점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때문에 불과 수년 만에 기준 강화로 돌아선 것은 삶의 질보다는 집값 잡기의 수단으로 재건축 규제를 활용하겠다는 의미로밖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일반 주택이나 빌딩은 집주인이 재건축을 하든, 리모델링을 하든 제약이 없고 오히려 잘된 재테크로 홍보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아파트라고 해서 재건축에 연한을 두고 이마저도 여러 규제를 하는 것은 옳은 일인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정부에서 명분으로 자주 내세우는 자원 낭비란 말도 적합하지 않은 이유다. 그렇다면 자동차가 낡아도 더 이상 굴러가지 않을 때까지 폐차할 수 없고, 새 차도 구입할 수 없어야 하는 건가?

결국 안전진단은 ‘안전’이 빠진 채, 정부가 재건축을 집값 잡기 위한 통제수단으로 이리저리 이용하고 있을 뿐이다. 이는 ‘신규 공급 주택’이라는 재건축의 순기능은 배제하고, 집값 상승의 주범으로만 보는 시각 때문이다.

집값 안정을 위해 재건축 해당 단지들의 행복추구권과 재산권을 침해하는 건 또 다른 불평등이 아닌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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