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더 읽기] 최고금리 낮을 수록 좋은건가

입력 2018-02-08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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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리로부터 서민보호…저신용자엔 대출절벽 올 수도

2002년엔 법에서 정한 최고 이자율이 연 66%였다. 지금으로선 상상이 안 되는 고금리다. 차주(借主)가 1억 원을 빌리면 1년에 갚아야 할 이자만 6600만 원인 셈이다.

일본계 대부업체가 국내에 터를 잡게 된 시기도 이 즈음이었다. 당시 일본은 연 20%로 최고금리를 내렸다. 러시앤캐시 등 일본계 대부업체는 “못 살겠다”며 한국으로 넘어왔다. 이들의 눈에 연 66% 이자 수익을 거둘 수 있는 한국은 매력적인 시장이었다. 하지만 정부가 고리로 인한 서민층 피해가 심각하다고 판단하면서 최고금리는 빠른 속도로 내려갔다. 연 60%를 웃돌던 최고금리가 8일부터 24%로 인하된다.

◇궁금증 ① 왜 연 24%인가 = 애초 문재인 대통령이 목표치로 내건 최고금리 상한은 연 20%였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최고금리를 단계적으로 연 20%로 내리겠다”고 공언해 왔다. 이번에 금리 상한선이 연 24%가 된 것은 이 수치가 직전 최고금리(연 27.9%)와 현 정부 목표치(연20%)의 중간 지점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일부에선 “연 20%로 한 번에 내리는 건 왜 안 되냐”고 말하지만, 이 경우 저신용자들이 대출 절벽에 내몰릴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이자 수익이 떨어지면 금융기관 입장에선 부실을 줄이기 위해 대출심사를 더 깐깐하게 하기 때문이다.

대부업법상 최고금리는 연 66%부터 시작했다. 그전에는 법으로 ‘이 정도 금리를 초과해서 받으면 안 된다’는 규제가 아예 없었다. 정권이 바뀌고 시간이 흐르면서 법정 최고금리는 2007년 10월 연 49%, 2010년 7월 44%, 2011년 6월 39%, 2014년 4월 34.9%, 2016년 3월에는 27.9%로 낮아졌다. 이번엔 최고금리가 연 24%로, 16년 사이 42%포인트 큰 폭으로 내렸다. 정부가 이번에 법정 최고금리를 일원화한 것도 특징이다. 지금까지는 빌려주는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최고금리가 달랐다. 대부업체 등 금융기관이 빌려주는 경우(대부업법) 최고금리는 연 27.9%, 개인이 빌려주는 경우(이자제한법) 최고금리는 연 25%였다. 이번에 모두 24%로 일원화한 것이다.

◇궁금증 ② 누가, 어느 정도 혜택 보나 = 최고금리 인하는 저신용자를 타깃으로 한 정책이다. 1~3등급인 고신용자들은 은행에서 연 5% 안팎의 이자로 돈을 빌릴 수 있다. 이들에게 최고금리 인하는 딴 세상 이야기다. 문제는 신용등급이 7~10등급인 저신용자들이다. 이들은 저축은행, 대부업체, 카드사 등 제2금융권에서 연 20% 안팎의 고금리 대출을 받는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신용대출 평균 금리는 은행 연 5.1%, 저축은행 연 25.4%, 캐피털 연 21.6%다. 평균 금리는 연 20% 초·중반이지만, 차주에 따라 연 27.9%의 최고금리에 육박하는 금리를 적용받는다. 대부업체는 일반적으로 1등급이나 10등급이나 동일하게 최고금리를 부과해 왔다. 정부는 법정 최고금리 인하로 최대 293만 명이 1년에 1조1000억 원의 이자 부담을 낮출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1인당 금액으로 환산하면 약 38만 원의 이자를 아낄 수 있다. 만약 금융기관이 연 24%를 초과해 이자를 받으면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받게 된다. 최고금리를 초과해 이자를 냈다면 돌려받을 수 있는 길도 생긴다. 정부는 최고금리 초과분은 무효라고 판단, 채무자가 초과분을 돌려 달라는 ‘반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궁금증 ③ 최고금리 인하 소급 적용되나 = 법상으로는 최고금리 인하 전에 돈을 빌린 차주들은 인하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소급 적용이 안 되는 것이다. 정부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완책도 함께 발표했다. 정부가 우려했던 대상은 8일 이전에 24% 초과 이자로 돈을 빌렸으면서 대출 만기가 3개월 내 돌아오는 취약차주다.

예컨대 신용대출은 1년마다 만기를 연장하는데 금융사가 최고금리 인하로 저신용·저소득자에 대한 대출심사를 깐깐하게 하면 이들은 만기연장이 안 될 가능성이 높다. 연장이 안 되면 수백만 원, 수천만 원 하는 원금을 한 번에 갚아야(일시상환) 하는 부담이 생긴다. 이에 정부는 이들을 대상으로 대환대출 상품을 내놨다. ‘안전망대출’이라 이름 붙여진 이 상품을 통해 연 24% 초과로 돈을 빌린 차주는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연 12~24%)로 갈아탈 수 있다.

금리인하요구권’을 행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는 일반 시민들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제도다. 해당 차주가 연봉이 올랐거나, 승진을 했거나, 신용등급이 올랐다면 금융기관이 이를 감안해 금리를 낮춰 준다. 본인이 직접 신청해야 한다. 저축은행 실제 사례를 보면 저축은행에서 신용대출을 받은 한 차주는 신용등급이 7등급에서 6등급으로 상승해 금리 인하를 신청했더니, 대출금리가 연 25.9%에서 23.9%로 내려갔다.

◇궁금증 ④ 최고금리 내릴수록 좋은가 = 금리 인하는 정치권의 포퓰리즘 정책 중 하나로 꼽힌다. 정책 효과와 시민들 지지를 즉각적으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자를 내리면 내릴수록 좋다’고 단순하게 생각해선 곤란하다. 저신용자 대출 절벽이라는 더 큰 폐해를 부를 수 있어서다. 대부업체 입장에서 보면 이자 수익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상환 능력이 떨어지는 차주에게 굳이 대출해 줄 필요가 없다. 10등급보다는 9등급에게, 9등급보다는 8등급에게 대출해 주는 식으로 대출심사를 엄격하게 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 수치도 금리인하 시 대출절벽 가능성을 입증한다. 금융감독원의 ‘지난해 상반기 대부업체 실태조사’를 보면 전체 대출잔액에서 저신용자 대출액이 차지하는 비중이 금리 인하 추세에 맞춰 줄어들었다. 지난해 6월 기준 대형 대부업체들의 전체 대출잔액(13조5632억 원) 중 저신용자 대출잔액(9조9101억 원)은 73.1%를 차지했는데, 이는 2015년 말 76.1%, 2016년 말 74.3%보다 쪼그라든 수치다. 2016년 3월, 법정 최고금리가 연 34.9%에서 27.9%로 인하된 여파다.

최고금리를 연 20%로 내린다는 말이 나왔을 때 대부업계에선 “1위인 산와대부(일본계)마저 마진이 안 남아 한국 시장을 떠날 것”이라는 말이 나왔었다. 지금도 이자 수익 감소를 버틸 수 없는 중소 대부업체들은 줄도산을 하고 있다. 저신용자들의 마지막 대출창구인 대부업체마저 문을 닫으면, 취약차주들이 불법 사채시장으로 내몰릴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물론 저신용 차주를 보호하자고 고금리를 유지하자는 것은 ‘모순’에 가까운 말이다. 이에 정치권 등에선 “저신용 차주들은 대출 시장이 아닌, 긴급생계자금 등 복지로 껴안아야 하는 존재”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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