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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숭호의 키워드] 머리에 숯불 얹기-가장 아름다운 복수는 이런 것
입력 2018-01-31 10:39   수정 2018-02-01 08:06

영락제(永樂帝, 재위 1402~1424)는 명나라를 창건한 홍무제 주원장의 넷째 아들입니다. 아버지의 명에 따라 변방을 지키던 그는 조카가 2대 황제(건무제)로 즉위하고 그의 세력이 자신을 압박하자, 군사를 일으켜 조카를 쫓아내고 추종자들을 모두 죽였습니다.

단 한 명이 예외였는데, 건무제의 스승이었던 대학자 방효유(方孝孺)였습니다. 영락제는 모반의 정당성을 선전하려고 방효유를 회유(懷柔)했으나, 그는 면전에서 황제를 “도둑놈”이라며 모욕을 줬습니다. 분노한 영락제는 방효유의 입을 찢어 죽이고, 그의 구족(九族, 위로 4대와 아래로 4대, 그리고 본인의 대)은 물론 그와 연고 있는 자는 모두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

역사상 구족을 멸하려는 시도는 여러 번이었으나, 실제로 이뤄지기는 어려웠습니다. 범위가 워낙 넓어 그물망에 안 잡히는 사람이 있었다는 거지요. 하지만 영락제는 방효유의 구족뿐 아니라 친구와 선후배, 제자 등 그의 사회적인 관계망에 있던 모든 사람을 죽였는데, 그 숫자가 2만을 넘는다는 겁니다.

영락제는 세계 최대의 궁성인 자금성을 축조하고 사상 최대의 유서(類書, 백과사전)로 꼽히는 2만8000권짜리 ‘영락대전’을 편찬케 하는 한편, 환관 정화(鄭和)의 함대를 인도양을 넘어 대서양에까지 발진시켜 중국인들이 콜럼버스보다 먼저 아메리카 대륙에 발을 올렸다는 주장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중국의 문명과 경제력이 당시 세계 최고, 최대를 자랑할 수 있었던 것도 이 사람 영락제의 이런 업적 ‘덕분’입니다. 하지만 이런 어마어마한 업적은 2만 명을 죽인 피비린내 나는 복수극에 가려집니다. 정화의 대함대도 달아난 조카 건무제를 찾아내기 위한 거라는 뒷말을 낳았습니다.

칭기즈칸은 자신의 사절단을 죽였다는 이유로 당시 터키를 침공, 400만 명을 죽였습니다. 400만 명이나 2만 명이나 잔인함에 있어서는 피장파장입니다. 둘 다 자신의 설분(雪憤)을 위해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였기 때문입니다.

영락제의 설분은 같은 상황에서 황제가 된 당태종(唐太宗, 재위 626~649), 이세민(李世民)의 통치와 비교됩니다. 당나라를 세운 당고조 이연의 둘째아들인 그는 형 건성과 동생 원길을 죽이고 아버지를 위협하여 황제가 되었습니다.

황제가 된 후 그가 가장 신경 써서 한 일은 반대파 숙청이 아니라 그들을 품는 것이었습니다. 원래 형 건성의 사람이었던 위징(魏徵)은 워낙 쓴소리를 잘해 ‘쓴소리의 황제’라는 별호(別號)가 붙을 정도였는데, 당태종은 그도 받아들여 쓴소리를 일부러 청해 들었다고도 합니다.

이처럼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대의에 따른 황제였기에 그는 후대인 청나라 강희제(康熙帝, 재위 1661~1722)와 함께 중국에서 가장 뛰어난 두 명의 황제로 꼽힙니다. 그가 다스렸던 시대는 ‘정관지치(貞觀之治, 정관은 당태종의 연호)’라는 말로 다른 시대와 구분되고 있습니다.

복수는 후다닥해야 한다고 합니다. 재빨리 해서 반발과 부작용을 피해야 한다는 거지요. 그러나 오래 걸리더라도 스스로 뉘우치도록 하는 복수가 진짜 복수인 것 같습니다.

신약성경 로마서에 “원수의 머리에 숯불을 올려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진짜 숯불을 올려 머리부터 태워 죽이라는 게 아니라, 원수가 자기가 한 일을 평생 부끄럽게 여기도록 머리가 언제나 부끄러움에 홧홧 타오르도록 하라는 가르침입니다. 복수를 하려거든 오히려 은혜를 베풀라는 겁니다.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물을 줘라. 그리함으로 네가 그 숯불을 그 머리 위에 쌓아 놓으리라!”

대통령 주변에서 일부 적폐청산과 관련해 ‘아름다운 복수’라는 말이 나왔다길래 시작된 복수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이 성경 구절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머리 위에 숯불 올리기’, 가장 아름답고 효과적인 복수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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