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반문의 묘미

입력 2018-01-23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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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선 ㈜커뮤즈파트너스 대표이사
 누군가의 질문에 당황했던 경험을 떠올려보자. 부하나 후배의 당돌한 질문이었을 수도 있고, 거래처와의 협상과정에서 날아온, 허를 찌르는 일침이었을 수도 있으며, 난생처음 부모가 된 후 딸아이로부터의 받은 질문일 수도 있다. “아빠는 꿈이 뭐야?”라는 뜬금없던 질문에 사십이 넘은 나의 머릿속은 그야말로 백지가 된다. 황당한 질문을 접했을 때, 당신이라는 상대는 무슨 대답을 어떻게 해왔는가? “무식하면 용감할 수 있다”는 정면돌파의 정공법(正攻法)이 있다면 배워 익히고 싶지 않을까?

 ‘적절한 대답이 무엇일까?’, ‘나에게 바라는 대답이 있었던가?’ 질문의 표면적 해석부터 상대와의 관계적 해석까지 질문의 본질은 외면당한 채 머릿속은 온통 군더더기로만 꽉 차 있다. 머릿속 밑바닥의 경험까지 쥐어짜내려 애써보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얼굴은 달아오르고 나도 모를 대답만 주저리주저리 늘어놓곤 한다. 말이라는 것이 한번 내뱉으면 주워 담기 힘든 것인데, 대답의 적절성은 무시한 채 즉답(卽答)의 쾌락이라도 찾으려는 듯 쏜살같이 대답하곤 아찔해한다. 아마 그 이전 누군가의 질문에 적절한 답을 했었다는 칭찬이 만든 비극일 수도 있고, 구렁이 담 넘듯 질문의 요지를 살짝 비켜가는 노하우를 자랑하고 싶은 것일 수도 있다.

 황당한 질문을 접했을 땐, 내가 전부를 안다고 생각하지 말자. 어떤 대답이든 해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리자.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을 땐 그저 무답(無答)이 정답일 수 있음을 믿어보자. 사람은 자고로 자신의 허물은 몰라도 남의 잘못은 쉽게 눈치챈다. 눈 가리고 아웅 하지 말고 충분히 인정하자. 자신의 경험이 미천하고, 지식이 짧은 것을 인정하며 겸손의 자세를 갖추게 되면 그 어떤 황당한 질문에도 단 한마디의 대답이 당신을 구원해 줄 수 있다. 질문자와의 관계가 더 돈독해질 수 있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하는 그것은 바로 ‘반문(反問)’의 기술이다.

 이제 상대의 질문에 반문해보자. ‘무엇을 어떻게 반문하지?’라고 생각하지 말고 그냥 상대의 질문에 대답을 생략한 채 “And you?”를 외쳐보자. 나에게 생각을 물어온 사람에게 되레 반문(反問)하는 것이 예의 없게 보일 수도 있겠으나 그 부분이 오해되지 않도록 머릿속에 약간의 쉼표를 두는 것이 중요하다. 약간은 생각하는 듯 시간의 여운을 두고 “…… 당신 생각은 어떤데요?(And you?)” 그 즉시 대답하는 사람의 마음은 평온해진다.

 “선배님, OOO에 대해서 어떻게 처리하실 생각이세요?” “음… 자네는 OOO에 대해서 내가 어떻게 처리했으면 좋겠는데?” / “도대체 원가가 얼마나 되길래 공급가가 그리 비쌉니까?” 아… 저희가 원가가 얼마쯤 된다고 생각하시는데요?” / “아빠는 꿈이 뭐야?” “음… 우리 딸은 꿈이 뭘까?”

 그저 주어만 달라지고 물음표까지 그대로 베꼈을 뿐인데, 잠시 잠깐 당신에게 건너왔던 대답의 강박관념은 질문자에게 돌아간다. 더 신기한 것은 내 속내가 무엇인지는 아랑곳 않고 자신의 질문에 스스로 생각에 잠긴다는 점이다. 그것도 내 반문을 사뭇 고마워하면서 말이다. 그것이 ‘반문의 묘미(妙味)’다. 질문과 답은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해야 의미가 있다지만, 반문도 하나의 독특한 형태의 대화 방법이며, 그 기술 또한 현명한 ‘답’일 수 있음을 간과하지 말자.

 자, 아직도 당황스러운 질문을 받을까 걱정되는가? 대답만이 존재하는 면접만 아니라면 그 어떤 질문이 닥쳐도 솟아날 구멍 하나쯤은 마련된 셈 아닌가? 눈앞이 하얘질 때, 예의 있는 물음표로 되돌려주자. 시간의 여유는 당신의 것이 되고, 더 나은 대답이 떠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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