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공인 “일자리 안정자금 효과 없다”는데 홍종학 장관 “중기·소상공인 가장 큰 혜택” 딴소리

입력 2018-01-11 17:19수정 2018-01-12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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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 현장 홍보 나섰지만...소상공인 "월 190만원 미만' ㆍ‘고용보험 가입자’ 조건 모두 비현실적" 토로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소상공인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정부가 내놓은 ‘일자리 안정자금 제도’ 현장 홍보에 나섰지만 소상공인과의 상반된 현실 인식 차이만을 보여줬다.

홍 장관은 11일 서울 동대문구 창신동 의류 집적지를 방문해 “일자리 안정자금으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이 가장 큰 혜택을 볼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소상공인들은 일자리안정자금 수급 기준의 비현실성과 구인난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창신동 일대 업체 대표들은 장관이 다녀간 후 “'월 190만원 미만'이라는 기준과 ‘고용보험 가입자’라는 조건 모두 비현실적이라서 우리 소공인의 현실과 거의 맞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일자리 안정자금은 올해 오른 최저임금(시급 7530원)으로 인건비 부담을 안는 소상공인과 영세기업 사업주를 지원하는 정부 예산이다. 안정자금을 수급하려면 △30명 미만 고용 사업주의 △월 보수액 190만원 미만에 △고용보험에 가입된 상태여야 한다는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이들 근로자 1인당 13만 원씩 보전해준다는 것이 정부 정책의 요지다.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11일 서울 창신동 골목시장 이시웅 창신골목시장 상인회장과 함께 상점가를 돌며 설명을 듣고 있다.(사진제공=중기부)

◇“‘월 190만원’ 기준 비현실적…안정자금 못 받는데 월급은 도미노 인상” = 이날 홍 장관이 방문한 동대문구 숭인동과 창신동 일대에는 750곳의 의류봉제업체가 밀집돼 있다. 근로자수만 3881명에 달하고 한 곳당 평균근로자수는 3.25명이다.

창신동 집적지의 토박이 소공인 대부분은 10년 이상 경력의 숙련 기술자다. 이들은 주로 도급제로 일하며 월급은 200~300만원대에 이른다, 월급이 최저시급에 근접한 비숙련 근로자도 있지만 소수인데다 그나마 일을 배우려는 이들마저 사라지는 추세라는 것이 이곳 대표들의 설명이다. 일자리 안정자금 정책의 대상이 되는 근로자 비율이 적어 홍 장관이 애매한 곳을 방문한 것이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설사 숙련 근로자가 최저임금 이상을 이미 받고 있다고 해서 최저임금 인상의 여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최저임금이 올라가면 일부 비숙련 노동자의 기본급이 올라가기 때문에 숙련 기술자들의 임금도 높여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들의 걱정이다.

유진사의 박균봉 대표는 “창신동에서는 10년, 20년 경력의 숙련 기술자가 많은데 단기 알바를 고용하게 되면 기술자 월급을 더 올려줘야 할 것”이라며 “최저시급 근로자 1인당 13만원 받는다고 해도 그 위에 사람들까지 임금을 올려야 하고 이들은 안정자금도 못 받으니 부담이 ‘따블’인 셈”이라고 말했다.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장관이 11일 서울 창신동 라라패션을 찾아 천명관 대표로부터 의견을 청취하고 있다.(사진제공=중기부)

◇“‘4대 보험 가입’ 근로자들이 먼저 기피” = 월 190만원 미만을 받는 근로자가 일부 있어도 숙련과 비숙련을 막론하고 고용보험 가입률이 50%에도 못 미쳐 일자리 안정자금 수급이 어렵다는 것이 현장 소공인들의 목소리다.

4대 보험에 가입한 정규직 근로자 1명과 시간제 근로자 1명을 고용하고 있는 라라패션의 천명관 대표는 ‘고용보험 가입’이라는 안정자금 조건의 비현실성에 대해 지적했다. 그는 “보험 가입을 하지 않겠다는 근로자가 너무 많다. 우리가 강제로 가입시킬 수도 없고… 그러면 공장에 안 나와 버린다”고 업체를 방문한 홍 장관에게 털어놨다.

의류제조 경력 32년의 한성화 에이스 대표는 창신동에서 6명 직원을 고용하고, 응암동 공장에서 9명을 고용한다. 15명 직원 중 7명만이 보험에 가입돼 있다. 한 대표는 “이들은 우리가 4대보험 들라고 해도 거부한다”며 “인력 수급이 워낙 어렵다 보니 4대 보험 가입하겠다는 사람만 골라서 고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근로자들이 보험 가입을 기피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기초생활수급을 타고 있어서 소득 노출을 꺼리거나, 부부 중 한쪽이 고용보험을 가입해 있기 때문에 이중 가입을 피하거나, 초단기 근로자이거나, 단순히 보험 가입은 곧 소득 노출과 세액 공제라는 인식이 깊어서기도 하다. 한 대표는 “고용주가 일자리 안정자금을 타고 싶어도 탈 수 있는 여건이 안 되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11일 홍종학 장관이 창신동 소공인센터를 찾아 의견을 청취하고 있다.(사진제공=중기부)

◇“일자리 창출 독려 웬 말, 일할 사람이 없는데”…“카드수수료 인하 등 추가 대책도 소공인은 해당 안 돼” = 이날 창신동에서는 불경기에 상시 구인난을 겪고 있는 소공인에게 홍 장관이 일자리 창출을 독려하는 풍경도 연출됐다. 홍 장관이 라라패션을 찾아 “일자리 만들기 힘들겠지만 고용을 늘리면 지원 많이 해드리겠다”고 말하자 천 대표는 “고용을 하고 싶은데 일감이 없고 사람을 구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답변했다.

홍 장관이 일자리안정자금 외에 소상공인들을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밝힌 카드 수수료 인상 억제나 온누리 상품권 등 추가 대책에 대해서도 소공인들은 ‘뜬금없는 소리’라는 반응이다. 소공인들은 “우리는 상점이 아니라 공장이라 카드 수수료 대책은 해당 없다.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물가를 인상해 인건비 부담에 대응하는 선택지도 소공인에겐 없었다. 한 대표는 “우리들의 가장 큰 걱정이 식당에서 밥값을 올리는 것처럼 공장에서는 납품단가를 조정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초저가 의류들이 중국에서 쏟아져 나오고, 이를 저가에 구매해 불법 유통하는 원청 때문에 일감 자체도 대폭 줄었을 뿐더러 임가공비를 높여달라고 요청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한 대표는 “이런 상황에서 중기부가 일자리 안정자금을 한시적으로 지원해 준다고 해도 무슨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며 “임금이 올라가면 정말 타격이 클 것”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이날 홍 장관은 창신동 방문을 마친 후 열린 간담회에서 “인건비 비중이 10~20%라면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비용 증가분은 1~2% 정도일 것”이라고 추측하며 “정부는 지금 임대료 인상, 카드수수료 억제, 소상공인 전용 카드 등 다양한 지원책을 고심 중이다. 이런 대책이 시행되면 부담이 되는 인상분 1~2%를 충분히 상쇄하고 남는다고 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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