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진의 만년필 이야기] ⑥ 몽블랑 “내 이름은 빨강”

입력 2017-12-22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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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처럼 눈이 내리고 쌀쌀한 연말엔 캐럴이 들려야 제격이다. 딸랑딸랑 구세군의 종소리와 빨강과 녹색으로 꾸민 크리스마스 장식도 보여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산타클로스이다. 빨간 옷, 덥수룩한 흰 수염, 마음씨 좋은 뚱뚱한 할아버지의 모습. 원래 산타클로스는 이렇게 뚱뚱하지 않았다고 한다. 1931년 코카콜라가 크리스마스 시즌 광고에 지금과 같은 모습의 산타클로스를 등장시켰는데 이것이 대히트를 했다. 사실 빨강 산타 마케팅은 1915년에 다른 음료회사가 먼저 했다고 전해진다. 만년필 세계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1945년 9월 2일 도쿄만에 정박 중인 전함(戰艦) 미주리에서 맥아더 원수는 일본 항복 문서에 서명하기 위해 만년필을 들었다. 수많은 사진기 플래시는 터졌고 사진에 찍힌 만년필은 빨간색이었다.

1921년 파커사(社)는 몸체가 빨간 파커 듀오폴드를 내놓았다. 25년 보증이었고 가격은 7달러였다. 7달러는 당시 물가를 고려하면 꽤 비싼 가격이었다. 구색(具色)으로 있던 빨강 만년필을 용감하게 대표로 내세운 것이다. 주요 신문에 대대적으로 광고했고 이 노력은 경이로운 매출로 나타났다. 1921년보다 1922년엔 10배가 넘게 팔렸고, 1923년엔 전년의 두 배가 더 팔렸다. 1920년 워터맨, 월 애버샵, 쉐퍼에 이어 4등이던 파커가 단숨에 이들의 매출에 육박했다. 컬러 만년필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것은 미국은 물론 전 세계로 퍼져 당시 만년필을 만드는 모든 나라에서 빨강 몸체에 검은색 악센트를 준 것이 생산되었다. 지금 당신이 쓰고 있는 만년필이 빨강, 노랑, 파랑, 초록색 중 하나라면 이것은 파커의 공로이다. 하지만 앞서 말한 산타의 이야기처럼 빨강 마케팅을 먼저 시도한 회사가 있다.

▲1910년대의 파커 만년필 광고.

지금 몽블랑으로 알려진 이 회사가 문을 열자마자 내놓은 만년필이 루즈 앤 누아르, 우리말로 옮기면 ‘적과 흑’이다. 프랑스 작가 스탕달의 소설 제목과 같다. 쉽게 인식되고 당시 고급 소비재로 통하는 프랑스산으로 보일 수 있으니 꽤 잘된 작명(作名)이었다.

하지만 이 만년필은 이름만큼 성공하지 못했다. 문제를 찾자면 빨강이 너무 적었다. 몸체 대부분이 검정이었고 빨강은 모자를 살짝 쓴 정도였다. 이 적과 흑은 그 이름에 딱 맞는 후속 몽블랑이 등장하자 곧 사라졌지만 몽블랑이 빨강을 영원히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한참 세월이 지난 1992년 몽블랑은 작가들의 이름으로 한정판을 내놓기 시작한다. 이 시리즈는 성공하여 지금까지 해마다 출시되고 있다. 그중 사람들이 갖고 싶어 하는 것은 1992년 첫 번째인 헤밍웨이, 애거사 크리스티, 알렉산더 뒤마, 마르셀 프루스트 등인데 이 중 가장 인기 있는 것은 헤밍웨이이다. 헤밍웨이를 최고로 좋아하는 것은 헤밍웨이라는 작가의 인기 덕분이다. 몽블랑 빈티지 중 최고봉인 몽블랑 139를 복각(復刻)한 점도 인기를 끄는 요인이다.

그런데 여기에 재미있는 것이 숨어 있다. 그것은 빨강이다. 헤밍웨이 몸체 절반이 빨강이기 때문이다. 충실한 복각이라면 전체가 검정이 되는 것이 맞다. 몽블랑이 파커에 빼앗긴 빨강을 되찾고 싶었던 것일까? 군자의 복수는 10년이 걸려도 늦지 않다고 했는데 복수라고 보면 약 80년 만에 제대로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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