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로] 4차 산업혁명, 법과 규제도 잊지 말아야

입력 2017-12-15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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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신문을 펼쳐 들면 보수, 진보 가를 것 없이 4차 산업혁명에 관한 기사를 연일 쏟아내고 있다. 사물인터넷(IoT), 3D 프린팅, 맞춤형 유전체 연구, 인공지능(AI), 로봇 등을 아우르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에는 AI가 있다. ‘유전병 치료한 아기 탄생…한국선 연구만 해도 처벌’, ‘개인정보 털어간 구글, 혹시 내 정보도?’ 제하의 언론보도 등에서 AI에 대한 규제는 철폐해야 할 암 덩어리나 꼭 필요한 처방약으로 묘사되는 극단을 달리고 있다.

이세돌을 이긴 알파고가 바둑계를 은퇴(?)한 후 한동안 세인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었는데, 구글 딥마인드는 커제(柯潔)를 이긴 알파고 프로를 넘어 최근 제로 버전을 내놓았다. 더욱 강력해진 알파고 제로의 특징은 자기 학습에 있다. 이전 알파고 버전은 기존 기보를 입력함으로써, 학습을 통해 지능을 키우는 방식이었다. 이런 딥 러닝 방식은 기보가 저작권 보호 여부에 논란이 있다는 점에서 저작권법이라는 허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런데 제로 버전은 기보를 사용하지 않으므로 저작권법 위반이라는 장애물을 훌쩍 뛰어넘어 버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AI 논의에서 기술 외에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은 규제다. 규제가 법으로만 얘기되지만, 윤리와 종교적 문제까지 포함시킨다면 이 논의는 매우 넓어지게 된다. AI 낙관론자들은 이런 규제(법, 윤리, 종교)를 달리기 경기에서 다리에 모래주머니를 차는 것에 비유해 거추장스러워한다.

3차원 프린팅 산업 진흥법을 제정하기 위해 정부는 관련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운영했었다. 법 초안이 나올 무렵 뒤늦게 지식재산권 쟁점이 불거져 필자는 전문가로 참여한 적이 있다. 이 자리에서 저작권법이나 디자인보호법으로 보호되는 물건을 3차원 스캐닝으로 파일을 만들어 공유 사이트에 올릴 경우 심각한 위법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음을 피력했다. 그 후로 이 회의 관계자는 필자를 부르지 않았고 필자 역시 반기지 않는 모임에 나갈 이유가 없어 발길을 끊었다. 이미 3D 프린팅 산업에서 3D 파일 공유로 인한 지식재산권 문제는 이 산업에서 암초가 된 지 오래다. 지금도 이 법이 예산과 관련 조직 확보를 넘어 진정 진흥과 규제를 위한 실체적 내용이 있는지 의문이다.

법은 항상 족쇄로만 기능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규제가 되는 법이 때로는 다른 누군가에게는 구원이 되기도 한다. 4차 산업혁명 영역에 한정해 보더라도 우리 산업을 진작하기 위해 규제를 풀어야 할 필요도 있지만, 세계 경쟁에서 뒤처져 있는 국내 유치 산업 보호를 위해 규제가 필요할 때도 있다. 국가 간 문제가 아니라 인류 공동의 문제, 즉 인간(Human being)대 비인간(non-human being)의 대결 구도에서 법은 인간을 위한 보호 장치가 될 수도 있다. 법의 역할이 상반된 것은 세상사가 다양하기 때문이고 나라와 산업 간 이해가 제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다양한 이해관계를 넘어 인류의 운명이 걸린 4차 산업혁명, AI 문제에서 동전의 한 면만 보고 가서는 안 된다. 개인이라면 개성이나 전문성으로 봐줄 수 있지만, 국가나 인류의 존망이 걸린 문제에서는 균형이 절실하다.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대통령 직속 4차 산업혁명위원회가 설립됐다. 위원장을 비롯한 민간위원 20명 중 법 전문가는 단 한 명도 없다. 당연직인 정부위원도 산업 관련 부서 장관들뿐이다. 벌써부터 위원회가 비정규직이라는 자조 섞인 소리가 새나오고 있지만, 문제의 본질은 한시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규제에 대한 관점이다. 정부든 민간이든 AI를 비롯한 4차 산업혁명 논의에서 법과 규제를 벗어던져야만 할 대상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잘 드는 액셀러레이터만으로 좋은 차가 될 수 없다. 브레이크가 들지 않으면 최악의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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