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순 칼럼] “우리 개는 절대 물지 않아요”

입력 2017-10-31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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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개 때문에 세상이 시끄럽다. 유명 가수의 반려견이 이웃 주민인 유명 음식점의 대표를 물어 그 사람이 며칠 뒤 숨지자 개를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개 이야기는 결국 사람 이야기다. 개를 기르는 것은 동물을 사랑하는 일이면서 동반자로 삼아 자신을 보호하거나 고독을 해소하는 행위다. 개는 사람들에게 배려와 사랑을 가르쳐주는 동물이다.

미국의 어느 가정에서 개가 죽어 슬퍼하고 있는 부모에게 여섯 살 먹은 아들이 해주었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개가 빨리 죽은 이유에 대해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서로 사랑하고 친절을 베풀며 살아가는 법을 배우려고 태어나잖아요. 그런데 강아지들은 이미 그걸 알고 태어나니까 오래 살 필요가 없는 거예요.” 사랑하는 개와 작별해본 경험은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 될 수 있고, 가까운 이들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과 고통을 이겨내는 데도 도움이 된다.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살았던 것 같은 프란츠 카프카가 “모든 지식, 모든 질문과 대답의 총체가 한 마리의 개 안에 들어 있다”고 말했다니 놀랍다. 빈센트 반 고흐도 “당신이 개와 함께 살지 않는다고 반드시 문제가 있는 건 아니지만 당신 삶에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인간은 개를 기르고 먹이를 주고 보살피면서 충성과 종속의 보상을 받고 지배욕구를 충족한다. 고양이를 기르던 사람이 개를 기르게 되자 ‘개밥 주는 남자’ 친구에게 “개는 자기 생활이 없니?” 하고 물었다고 한다. 개와 고양이는 인간에 대한 충성이나 종속, 교류의 결과 질이 아주 다르다.

생계가 어려운 사람은 개를 기르기 어렵다. 개를 반려로 기르고 함께 생활하는 것에는 신분 상승이나 과시의 의미도 있다. 여유가 있는 부유층, 인기와 지명도가 높은 연예인들의 개는 사람도 생각하기 어려운 호사를 누린다. 개를 위해 쓰는 돈과 시간은 어느덧 부모나 자녀에게 들이는 정과 공(功)을 뛰어넘는다. 그리고 자기 개에 대한 애호와 집착은 ‘우리’ 외의 것에 대한 배타와 차별, 몰이해와 무배려로 이어진다. “우리 개는 물지 않아요”라는 말에는 일정한 오만과 편견, 착각과 몰염치가 들어 있다.

개를 싫어하고 미워하는 사람들은 사실 개를 미워하는 게 아니라 개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미워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사람보다 개를 더 귀하고 중하게 여기다 사람은 사랑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세상에 떠도는 ‘개 이야기’가 실은 ‘개 사랑이야기’가 아니라 ‘사람 사랑이야기’의 변주(變奏)라는 어떤 학자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개 때문에 상처받고 개 때문에 뒷전으로 밀려나는 부모 세대는 의외로 많다.

요컨대 개를 기르는 사람들은 내 개, 우리 개 때문에 불편하거나 상처받고 피해를 당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목줄을 잘 챙기고 남들이 내 개 때문에 놀라지 않게 하고 개똥을 즉시즉시 치우는 건 기본이다. 개와 함께 살려면 개와 함께 살고 싶지 않은 사람들부터 먼저 배려해야 한다. “우리 개는 절대 물지 않아요”라는 말에 설득력이 있으려면 우리의 개념부터 달라져야 한다.

그런데 이런 개념은 개와 사람 사이에서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니다. 사람들 사이에서도 “우리 개(사람)는 물지 않아요”가 문제 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사람이 먼저다”라고 말해왔지만, 사람을 쓰는 걸 보면 그 말은 결국 “내 사람이 먼저다”, “우리 사람이 먼저다”로 들린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인사는 육사 출신, 법조인, 당 사람들만 챙기는 ‘육법당’ 인사였다. 문 대통령의 인사는 요즘 ‘캠코더’라고 한다. 캠프, 코드, 더불어민주당에서만 사람을 기용하니 ‘우리’의 개념이 확장되기는커녕 독점과 배타의 의미가 커져간다. 그래서 실패 사례가 쌓여가는 것이다. 개 이야기는 결국 사람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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