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인물사전] 212. 아엄(兒奄)

입력 2017-10-13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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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왕생을 꿈꾸며 불상을 제작하다

▲명문(銘文)이 보이는 불상의 뒷면.

아엄(兒奄)은 삼국시대를 살았던 6세기 여성이다.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이 한반도의 패권을 치열하게 다투던 시기였다. 삼국은 특히 한강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접전을 벌였는데, 남한강 유역인 오늘날의 충주지역은 처음에는 백제가 차지했으나 고구려로 넘어갔다가 다시 신라로 주인이 바뀌는 등 격전지였다.

이 충주지역에서 12.4㎝ 크기의 광배(光背)가 있는 불상이 발견되었다. 원래는 세 명의 부처님이 있는 삼존불상(三尊佛像)으로 만들어졌지만 중앙의 본존 불상은 없어지고 광배에 부조로 붙여진 좌우의 협시(脇侍) 보살상만 남아 있었다.

불상이 주목받게 된 것은 광배 뒷면에 명문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 내용은 “건흥(建興) 5년 병진년에 불제자 청신녀(淸信女) 상부(上部) 아엄이 석가모니상을 만들었는데, 세상에 다시 태어나도 불법을 만나 듣기를 원하며 일체중생이 모두 이와 같이 바란다”라는 것이었다. 청신녀는 출가하지 않고 재가(在家)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는 여자를 말한다. 상부는 삼국의 단위 정치체제로 사용되었던 부(部)의 명칭으로 보인다. 금동불상이 상부에 소속된 청신녀로 표현된 불교신자 아엄이라는 여성의 발원에 의해 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발원자인 아엄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명문에 ‘건흥’ 5년에 만들었다고 했는데, ‘건흥’이라는 연호가 사료에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불상의 조각 양식이 대체로 6세기 양식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병진년’이라는 간지(干支)가 536년이나 596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충주지역은 6세기 전반에는 고구려가 차지했다가 후반기에는 신라로 주인이 바뀌었다. 그렇지만 명문에 ‘건흥’이라는 연호를 쓴 데다 광배 뒤의 명문 배열 형식이 연가7년명(延嘉七年銘) 고구려 불상과 비슷하다. 또한 상부라고 하는 부명은 고구려에 있었다. 평원왕이 평강공주를 상부 고씨가에 강제로 시집보내려 했던 일화에서도 등장한다. 그래서 이 불상은 충주지역이 고구려에 속했던 시기인 536년(안원왕 6년)에 제작된 것으로, 발원자 아엄은 고구려인으로 추정하고 있다.

아엄은 세상에 다시 태어나도 불법을 듣기를 바라고 일체중생이 이 소원을 같이하기를 소망하는 마음에서 불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현재까지 전해져 오는 여성들의 후원으로 만들어진 불탑이나 불상의 대부분이 가족과 관련된 발원을 담고 있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아엄은 전쟁이 일상화한 6세기에, 특히 격전지였던 충주에 살면서 전쟁의 참상을 직·간접적으로 겪었을 것이다. 죽음을 일상적으로 목격하면서 아엄은 인생의 무상함과 함께 불교에 깊이 심취하면서, 전쟁이 없는 불법이 가득한 내세를 꿈꾸었던 것이 아닐까 한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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