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아의 라온 우리말터] 神을 품은 말 “고맙습니다”

입력 2017-09-28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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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에게 밥은 특별하다. 온 가족이 밥상에 둘러앉기만 해도 가슴이 따뜻해진다. 밥상에서 세상 이치를 깨달았다는 이들도 여럿이다. 밥상머리 교육의 덕을 본 게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헐레벌떡 먹는 아침밥보다 도란거리며 먹는 저녁밥이 참 좋다. 저녁 밥상에는 저물녁 귀가한 아버지의 가르침도 있었다. “정직하게 살아라”, “돈을 아끼고 저축하는 습관을 들여라”, “불쌍한 사람을 도와줘라”….

이번 주말 추석 연휴가 시작된다. 며칠간은 밥상을 여러 번 차리며 힘 좀 쓸 것 같다. 그래도 명절 밥상에선 덕담(德談)이 오고가니 그 이상으로 즐겁다. 할 때보다 들을 때 더 좋은 게 덕담이다.

우리 선조들은 말 속에 신비한 힘이 배어 있다고 믿었다.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말한 대로 성취된다는 믿음을 육당 최남선은 ‘언령관념(言靈觀念)’이라고 했다. 좋은 말에는 영적인 기운이 있어 그대로 되게 한다는 의미이다. 특히 일상의 무게에 짓눌린 이에게 건네는 위로의 말 한마디는 그야말로 양약(良藥)이 될 수 있다.

덕담을 들으면 대부분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답례를 한다. 그런데 윗사람에게 ‘고맙습니다’라고 인사를 하면 예의가 없고 건방지다고 느끼는 이들이 적잖다. ‘고맙습니다’는 가깝고 허물없는 사이에 하는 말로, ‘감사합니다’는 격식을 갖춘 말로 여기기 때문이다. 크게 잘못된 생각이다.

‘감사합니다’와 ‘고맙습니다’는 뜻이나 쓰임에 별 차이가 없다. 하지만 ‘감사합니다’보다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는 게 바람직하다. ‘남이 베풀어 준 호의나 도움 등에 대하여 마음이 흐뭇하고 즐겁다’라는 뜻의 우리말이기 때문이다.

손석희 jtbc 앵커 등 방송사 뉴스 진행자들이 프로그램 마지막에 늘 “시청자 여러분,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어디 그들뿐이겠는가. 지하철 5·6·7·8호선의 안내방송 마지막 인사말도 “고맙습니다”이다. “감사합니다”보다 훨씬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감사하다’ 또한 고마운 마음을 나타내는 인사로, 한자 ‘感謝(감사)’에서 파생했다. 일본말 ‘칸샤시마스(感謝します)’에서 유래, 일제강점기에 슬그머니 들어와 우리말처럼 쓰였다는 설(說)이 있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중국에도 ‘깐시에(感謝)’라는 인사말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고맙다’만 취하고 ‘감사하다’를 버릴 이유는 없다. 오랫동안 써온 말이기에 버리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감사합니다’는 중국, 일본에서도 하는 인사말로 이해하면 될 듯싶다.

토박이말 ‘고맙다’의 어원 ‘고마’는 신(神), 신령(神靈)을 뜻한다. 국어학자 천소영, 홍윤표 교수 등은 “고마의 형용사 ‘고맙다’는 인간 이상의 존재에 대한 외경(畏敬)의 표현이며, 동사 ‘고맙다’는 공경하다, 존경하다의 뜻을 지닌 말이 되었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은혜를 베푼 사람에게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 대상을 신과 같이 거룩하고 존귀하게 생각한다는 뜻이다.

‘고맙다’, 참으로 고귀한 말이다. “고마워” “고맙습니다”를 입에 달고 산다면 서로 존중받는 사회가 될 것이다. 특히 조상을 섬기고 효의 중요성을 가슴에 새기는 한가위에 가족·친지, 이웃에 고마움을 표현한다면 마음이 더욱더 넉넉해지겠다. 연휴 생각에 벌써부터 가슴이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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