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평의 개평(槪評)] ‘워라밸’ 선택 아닌 필수

입력 2017-09-18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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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사회부 차장

“적당히 벌고 아주 잘 살자.”

전주 남부시장 청년몰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간판의 문구다. 이는 최근 취업준비생과 직장인들 사이에서 직장과 직업을 선택하는 기준이 단지 돈이 아닌 삶의 질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위기와 일맥상통(一脈相通)한다.

일과 삶의 균형이란 의미의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이란 단어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배경이다.

지난해 말 한 취업포털이 구직자 4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입사를 희망하는 기업의 연봉과 야근의 조건’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도 이러한 세태(世態)가 반영됐다. 당시 가장 많은 응답자인 65.5%가 ‘연봉 중간, 야근 적은 기업’을 선택했다. ‘연봉 적고, 야근 없는 기업’은 22.8%, ‘연봉 높고, 야근 잦은 기업’은 11.8% 순이었다. 직장을 선택할 때 경제적인 안정뿐만 아니라 삶의 질을 고려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대목이다.

대한민국 직장인들은 얼마나 자주 야근을 할까? 최근 한 취업포털이 직장인 1013명을 대상으로 야근 실태를 조사한 결과 일주일에 평균 2.5회 야근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 형태별로는 대기업 직장인이 야근을 가장 자주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회사 생활에서 야근이 당연한가’라는 질문에 직장인 69.9%가 ‘당연하지 않다’고 답했고, ‘스스로 결정해서 야근하느냐’는 물음에도 63.9%가 ‘어쩔 수 없이 야근한다’고 대답했다.

직장인들의 평균 야근 시간은 2시간 30분이었다. 야근(초과근무) 수당을 받는다는 직장인은 37.7%에 그쳤다.

야근을 많이 한다고 해서 업무의 생산성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대한상공회의소와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가 내놓은 ‘한국 기업의 조직 건강도와 기업문화’ 진단 결과를 보면, 평균 수준 야근을 하는 직장인의 업무 생산성은 57%인 반면, 주 5일 야근을 하는 근로자의 생산성은 45%에 불과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두 번째로 일을 많이 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직장인들은 정당한 휴식과 저녁이 있는 삶에 목말라 있다. 퇴근 후 가족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자기 자신에게 시간을 투자할 수 있는 일과 삶의 균형을 원한다.

4차 산업혁명을 맞이하는 지금, 워라밸은 더 이상 선택 사항이 아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인재는 유연하게 사고하고 독창적인 아이템을 기획하는 사람이다. 이런 인재는 적절한 휴식과 여가활동을 통한 자기 계발에서 나올 수 있다. 기업은 업무 시간과 당장의 성과에 집착하지 말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접근해야 한다. 최근 기업에서 눈치 보지 않고 육아 휴직이나 연차를 쓸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정시 퇴근을 의무화하는 등 직원들의 워라밸을 높여주려는 시도가 늘어나고 있다니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국회에서는 퇴근 후 업무카톡 금지법이 발의됐다.

기업과 국회의 노력이 이어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갈 길은 멀다. 동료의 업무 부담 증가, 소통 불편, 인사관리 어려움, 눈치보기 등의 구조적인 문제는 워라밸 실천의 가장 큰 장애물이다. 정부의 제도적 지원과 함께 사회적 분위기 조성을 통해 누구나 워라밸을 누릴 수 있는 삶이 하루빨리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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