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아의 라온 우리말터] 돈이 아깝지 않은 맛, 錢魚!

입력 2017-09-14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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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어 구이에 소주 한잔 어때?” 경남 사천이 고향인 선배와 왕십리에서 만났다.

횟집마다 수족관에는 은빛 반짝이는 가을 전어가 그득하다. 옛말에 “가을 전어 대가리엔 참깨가 서 말”이라더니 그 맛이 참 좋다. 달콤한 냄새가 어찌나 강한지 ‘집 나간 며느리’가 아니라 모기떼가 달려들어 고생 좀 했다. “며느리 친정 간 사이에 문 걸어 잠그고 먹는다”는 얌통머리 없는 속담도 있을 만큼 가을의 최고 먹거리는 단연 전어이다. ‘가을 물고기’라는 뜻의 추어(鰍魚) 미꾸라지도 가을 전어에는 어림없다.

김신용 선생의 시 ‘전어’는 생선을 좋아하지 않는 이들마저 식욕을 돋운다. “…참, 동전 짤랑이는 것 같기도 했겠다/ 한때, 짚불 속에 아무렇게나 던져져 구워지던 것/ 비늘째 소금 뿌려 연탄불 위에서도 익어가던 것/ 그 흔하디흔한 물고기의 이름이 하필이면 전어(錢魚)라니―/ 손바닥만 한 게 바다 속에서 은빛 비늘 파닥이는 모습이/ 어쩌면 물속에서 일렁이는 동전을 닮아 보이기도 했겠다…”

전어는 한자로 錢魚이다. ‘돈 전’ 자가 붙은 것은 “그 맛이 하도 좋아 살 때 돈을 따지지 않아서”라는 말이 전해진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서유구도 ‘임원경제지’에 “전어는 기름이 많고 맛이 좋아 상인들이 염장해서 파는데 귀족, 천민을 가리지 않고 돈 아까운 줄을 몰랐다 해서 전어(錢魚)로 불린다”고 썼다. 당시 양반, 서민 할 것 없이 전어 맛에 푹 빠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전어는 지역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경상도에서는 ‘전애’, 강원도에선 ‘새갈치’, 동해에선 ‘어설키’라고 한다. 전라도 지방에선 ‘뒤애미’, ‘엽삭’, 그리고 귀한 새서방에게만 준다고 해서 ‘새서방고기’로 불린다. 어른들 몰래 새서방만 살짝 불러 그 입어 넣어 주는, 숯불에 노릇노릇 구워진 전어가 어떤 맛일지 상상만 해도 군침이 돌지 않는가.

“전어는 고추장 말고 된장에 찍어 뼈째 씹어 먹는 세꼬시가 최곤기라(최고야). 어서들 무(먹어) 봐라.” 선배의 말에 한 쌈 크게 싸서 먹으니 입안 가득 바다 내음이 퍼진다. 그러고 보니 수족관이며 식당 벽 곳곳에 ‘전어 세꼬시’라는 글씨가 화려한 모습으로 붙어 있다.

그런데 세꼬시는 우리말이 아니다. 일본말 ‘세고시(せごし·背越し)’를 되게 발음한 것으로, 작은 물고기에서 머리와 내장 등을 제거하고 뼈째 잘게 썰어낸 것을 뜻한다. 뼈째 먹으니 고소하다고 하여 ‘뼈꼬시’라 말하는 이들도 있는데, 이 역시 바른말이 아니다. 국어원은 세꼬시, 세고시, 뼈꼬시를 ‘뼈째회’로 다듬었다. 뭔가 어색하고 입에 붙진 않는다. 그래도 많은 이들이 자주 사용하다 보면 곧 자연스러워질 것이다.

횟집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쓰키다시, 와사비, 락교, 다시 등의 용어도 각각 곁들이찬, 고추냉이, 염교, 맛국물처럼 우리말로 바꿔 써야 한다. 또 사시미는 생선회로, 스시는 초밥, 지리는 맑은탕으로 바로잡아야 한다.

전어를 먹을 때 놓쳐선 안 되는 맛이 하나 더 있다. 전어밤젓이다. 식당 주인이 단골(선배는 이곳을 20여 년 드나들었다고 한다)에게만 준다는 젓갈인데, 그 맛이 깊고 깔끔했다. 밤젓의 밤은 전어의 내장 중 구슬처럼 생긴 부분으로, 한 마리에 하나밖에 나오지 않아 무척 귀하단다. 거무스르름한 젓갈에 밥을 비벼 한 숟가락 먹고 소주 한 잔을 마시니 가을이 눈앞에 왔다. 돈이 아깝지 않은 전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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