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인물사전] 187. 손장순(孫章純)

입력 2017-08-31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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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문학•사상을 한국적으로 문화번역

손장순(孫章純·1935~2014)은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고 졸업 후 서울대 불문과에 진학했다. 프랑스 문학에 매료되어 작가의 꿈을 품고 전공을 결정한다. 1958년에 ‘입상(立像)’, ‘전신(轉身)’이 김동리의 추천을 받아 ‘현대문학’으로 데뷔했다. 장편 ‘한국인(韓國人)’, ‘세화의 성(城)’을 대표작으로 남겼다. 1969년부터 한양대 불문과에 재직하며 후학을 양성했다.

손장순은 근대로의 전환에 따른 사회변동을 여성 지식인의 눈으로 날카롭게 파헤쳤다. 그녀는 전후 한국의 문화 담론을 강타한 전후파(戰後派) 여성을 대표하는 작가로 평가된다.

그러나 그녀가 그려낸 전후파 여성은, 현대 여성을 정조 관념이 없고 타산적(打算的)이라고 폄훼하는 가부장제 담론과 구별된다. 서구 문명의 유입이라는 새로운 환경 속에서 전후파 여성을 부덕(婦德)을 넘어서 개인의 윤리를 추구하는 신인류(新人流)로 표상했기 때문이다.

‘한국인’(1966~69)은 손장순의 출세작이다. 이 소설의 서문에서 작가는 “8·15와 6·25를 계기로 밀물처럼 들어온 서구 문명과의 혼합 속에서, 자기의 것도 제대로 갖지 못하고 남의 것도 소화시키지 못한” 한국인의 정체를 밝히겠다고 썼다. 그녀는 이상화되어온 남성성의 베일을 벗기고 그 허약함을 포착하는 식의 급진성을 보인다. 작중 남성들은 1960년대 사회의 급속한 성장과 속물화의 양상 속에서 부와 권력을 얻지 못해 열등감에 시달린다. 반면 여성들은 근대화의 허위를 꿰뚫어 보고 주체적 개인으로 서려는 실존주의자이다.

손장순은 프랑스 문학과 사상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되 한국적으로 문화번역(文化飜譯)한 작가이다. 불문학자로서 실존주의 페미니스트인 시몬 드 보부아르의 사상을 소개하고, ‘위기의 여자’를 번역했다.

또한 한국 문학사에서 드물게 국가 간 경계(境界)를 넘나드는 이동(移動)의 서사를 선보였다. ‘한국인’, 단편 ‘우울한 파리’, ‘미세스 마야’ 등에는 한국인 서구 유학생이나 한국 내 이방인이 등장한다. 이 작품들은 서구를 참조 대상으로 삼아 한국의 졸속 근대화 양상을 비판하는 한편, 선진국/후진국, 서양/동양을 중심으로 형성된 중심/주변의 위계적 이분법을 비튼다.

손장순은 1965년에 아들을 하나 둔 채 이혼한 후 1985년 언론인 임승준과 재혼했다. 1996년 한양대를 퇴임한 후 문예지 ‘라플륌’의 발행인 겸 편집자로 활동했다. 한국소설분과협회·한국불문화협회·한국여류문인협회·국제펜클럽 이사, 한국소설가협회 최고위원을 지냈고, 한국여류문학상, 국제펜클럽 소설문학상, 유주현 문학상을 수상했다. 2011년 모교인 서울대에 20억 원을 기부했다. 이듬해 서울대에서는 손장순 부조(浮彫) 제막식 및 평전 출판 기념회가 열렸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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