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호의 독서산책] 한나 모니어, 마르틴 게스만 ‘기억은 미래를 향한다’

입력 2017-08-21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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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아니 새로운 사본을 만드는 ‘기억’

우리는 기억을 과거에 관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기억은 미래 지향적이며 창조적인 능력이다”라고 주장하는 전문가들이 있다. 뇌 과학자인 한나 모니어와 철학자 마르틴 게스만이 함께 쓴 ‘기억은 미래를 향한다’는 기억의 의미와 가치 그리고 기능을 새롭게 조명하는 책이다. 기억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우리가 더 성공적이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데 도움을 준다. 이 책은 △기억 혁명 △꿈과 수면 중의 학습 △꿈을 통한 능력 향상 △상상과 거짓 기억 △감정 기억 △기억과 노화 △집단 기억 △인간 뇌 프로젝트 등 모두 8개 장으로 구성됐다.

“이 길로 가야 하는가, 아니면 저 길로 가야 하는가” 등과 같이 힘든 결정을 내리기 위해 노력하던 중에 우리는 특별한 경험을 할 때가 있다. 불현듯 문제의 해결책이 떠오르면서 언제 그런 고민을 했던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멋진 경험을 할 때가 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일반적으로 기억은 시간과 직결된 것이며, 그 시간도 과거의 시간과 연결되어 있다고 믿어왔다. 사람이 치매에 걸리면 ‘사람다움’의 가장 큰 특징인 기억을 잊어버리게 된다. 따라서 기억에 관한 것은 인간다움에 관한 것이기도 하고, 인간 자체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그만큼 기억은 인간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저자들의 색다른 주장은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다. “기억은 과거를 보존하는 능력이 아니라 미래를 계획하는 능력이다.” 우리가 일상의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면서 기억의 도움을 받아온 점을 염두에 두면 진실임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에 대해 갖고 있는 선입견은 ‘기억은 곧바로 과거’라는 점이다. “기억은 경험을 그저 서랍 속에 넣어 보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경험을 항상 새롭게 재처리하여 미래를 위해 유용하게 만들기 위해서 존재한다. 기억에 따르는 논리는 기본적으로 앞을 내다본다. 우리는 기억에 대한 이해를 철저히 뒤집어 혁명적으로 바꿔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기억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과거의 것을 반복적으로 떠올린다고 생각하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저자들은 기억할 때마다 과거의 일을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떠올리는 점을 지적한다. 저자들은 이를 “우리는 회상할 때마다 추가로 학습한다”고 말한다. 기억한다는 것은 계속해서 다시 쓰기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사본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원본을 갖고 기억할 때마다 새로운 사본을 만들어 낸다는 말이다.

따라서 기억은 반복될 때마다 원본으로부터 멀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런 점에서 보면 기억 조작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저자는 “기억 조작이 일어날 수도 있다. 이 경우는 심지어 고의적이며 의식적인 문서 위조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법정에서 심심찮게 일어나는 일이다. 문제는 집단 기억의 경우이다. 집단 기억에 대한 연구는 뇌과학의 새로운 방향 중 하나인데, 여기서도 얼마든지 기억 조작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자신이 사는 시대 전체가 젊을 때는 기억도 젊다는 점이다.

날로 길어지는 수명을 염두에 둔 기억력 강화에 대한 유용한 내용이 나온다. “시대와 함께 가는 것이 어떤 훈련보다도 낫다.” 이것이 바로 저자가 제시한 해법이다. 나이 든 사람이라면 젊은 사람들과의 교류를 늘려 정신적 민첩성과 새로운 주제 및 내용에 기꺼이 마음을 여는 태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기억이나 뇌의 활용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권할 만한 대중적 학술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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