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피플] 안건준 “일본·유럽국들 벤처 투자에 비교하면, 우린 아직 푼돈 수준”

입력 2017-08-11 11:15수정 2017-08-30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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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기업협회장 인터뷰..."문대통령께 벤처 키우려면 헬기로 돈 뿌리시라 했다"

▲안건준 벤처기업협회장이 4일 경기 성남시 크루셜텍 본사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안 회장은 “스타트업·벤처를 육성하려면 정부가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려줘야 한다. 선진국에 비하면 우리 정부 투자는 아직 푼돈 수준”이라고 말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지난 2월 벤처기업협회장에 취임한 후 반 년 남짓한 기간 동안 안건준 회장(52)은 다사다난한 정치적 일정 속에서 숨가쁜 시간을 보냈다. 급박하게 진행된 대선 일정 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곧이어 중소벤처기업부 신설을 비롯한 정부조직 개편과 추경 협상이 이어지면서 안 회장도 국회와 업계를 오가며 업계 목소리를 대변했다. 안 회장이 이끄는 벤처기업계는 창업·벤처 정책에서 드라이브를 거는 새 정부에서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새 정부가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창업국가 조성’을 내세운 만큼 창업벤처에 대한 정부 지원이 강화되고 벤처투자 시장도 활기를 띨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작년에 이어 올 상반기까지 벤처투자와 엔젤투자 시장이 활황기를 이어가면서 2000년대 초 불었던 벤처 붐이 다시 일지 업계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벤처기업계의 큰형으로서,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 위원이자 대통령의 기업계 조언자로서 일인 다역을 하고 있는 안건준 벤처기업협회장을 4일 경기도 판교 크루셜텍 본사에서 만났다. 안 회장은 “창업시 연대보증 제도를 없애고 기업의 인수합병(M&A) 시장과 스톡옵션 관련 제도를 정비하는 등 정부가 과감하게 정책적인 뒷받침을 해주면 제2의 벤처 붐이 조성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정부 주도의 벤처 투자에 대해 “정부가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려줘야 한다”며 “중국은 지금 비행기에서 돈을 뿌리고 있다. 유럽이나 일본과 비교해서도 우리는 아직 푼돈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벤처기업협회장에 취임한 지난 반 년 동안 새 정부가 들어서는 격변의 시간을 겪었다. 새 정부 출범에 맞춰 앞으로 어떤 방향에 힘써 나갈 계획인가.

“새 정부가 내놓은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대표적인 일자리 정책에 대해 기업계의 입장은 한 가지가 아니다. 지금까지는 중소기업이 한 가지 목소리를 가진 것처럼 비쳐졌지만 이제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표출할 때다. 이런 정책에 대해 중소기업중앙회는 반대를 외치고 있지만 사실 중소기업 내에서도 서로 사정이 다르다. 어느 정도 성장한 벤처기업의 경우 아이디어 기반으로 일하면서 비정규직을 쓰기 힘들다. 우리에게 정규직화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제조업에서는 강하게 반대하고 있는 근로시간 단축에 대해서도 성장한 벤처기업들은 전혀 이의가 없다. 벤처업계는 초과 근무가 필요하면 본인이 스스로 알아서 일한다. 평균 임금은 최저임금 1만 원 비용 수준은 당연히 넘긴다. 새 정부 정책을 벤처기업계는 반대하는 입장이 아니다.”

△이전 정부의 창업·벤처 정책과 비교해서 새 정부에 거는 기대감은 어떤 것인가.

“이전 정부가 잘한 점도 있다. 벤처기업들이 정부 관심에서도 멀어져 갔는데 이전 박근혜 정부가 그 부분을 전환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역대 최고의 펀드 조성도 이뤄졌고, 실질적으로 투자도 했다. 새 정부는 이걸 더 크게 키워주면 된다. 큰 그림에서 모멘텀이 만들어졌다면 이제 이 모멘텀을 디테일하게 활용해야 할 시기다. 벤처기업들은 정부에 재벌 대기업 생태계와 벤처 생태계가 조화롭게 엮일 수 있는 공정경쟁 생태계를 만들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기업에 대해 알려고 하고 공부를 많이 해서 기대가 크다.”

△벤처투자시장의 실적도 개선되고 전향적인 벤처 정책도 속속 나오는 등 새 정부 들어 ‘제2의 벤처붐’이 부는 것 아니냐는 기대가 많다. 과거 김대중 정부 때와 같은 벤처붐이 정말로 일어날 수 있을까.

“그때와 지금은 차이가 있다. ‘인재’의 차이다. 혁신벤처기업이 지속적으로 나오기 위해서는 ‘인재’가 핵심 요소다. 좋은 인재가 유입돼야 성공 확률이 훨씬 높아진다. 그런데 20년 전만 해도 여성들에게 1등 신랑감은 벤처기업가였는데 이제는 인재들이 삼성과 현대를 박차고 나오지 않는다. 과거에는 대기업 다니다가, 혹은 대학교수나 대학원생도 창업했는데 요즘은 싹이 말랐다.

새 정부에서 방향성을 틀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안전망과 제도를 마련하는 일이 시급하다. 카이스트에서 창업할 사람 손들라고 하니까 3%인데 비해 연대보증이 없어지면 창업할 사람 손들라고 하니까 30%가 들었다더라. 미국에서 창업해서 자살했다는 소리 들어보셨나. 이렇게 심한 연대보증 제도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이런 제도를 고쳐야 한다.

M&A 시장과 스톡옵션 제도도 정비해야 한다. 인수합병(M&A)은 결국 수요와 공급의 문제인데 수요가 없다. 잠재적 수요자인 대기업은 많지만 그들은 기술 탈취나 인력 스카우트를 선호하지 굳이 인수합병을 하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회수의 70%가 M&A를 통해 이뤄진다. 심지어 중국도 우리보다 훨씬 M&A 시장이 발달했다. 벤처기업 기술과 인력 탈취에 대해 강력하게 처벌하고 아이디어와 기술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문화를 통해 대기업들이 벤처 매수에 나서도록 하는 과감한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인재들은 지금 다니는 대기업에서 나와 고생을 해도 대박을 칠 수 있는 보상 체계가 없기 때문에 벤처에 뛰어들지 않는 것이다. 스톡옵션 규제 완화와 비과세 한도 확대가 우수 인재를 창업 시장에 끌어모으는 유인이 될 수 있다.”

△정부는 하반기 추경으로 모태펀드 출자를 대폭 확대하는 등 벤처투자 시장을 키우려고 한다. 벤처 붐을 위해 마중물이 필요하긴 하나 정부 주도적 벤처투자의 문제점은 없나.

“모태펀드 추경이 원래 1조4000억 원으로 잡혀 있다가 국회를 통과하면서 절반으로 뚝 잘려 8000억 원이 됐다. 당시 이게 말이 되냐고 항의했다. 지난 일자리위원회 1차 회의에서 대통령께 스타트업과 벤처를 육성하려면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려줘야 한다고 말씀드렸다. 중국은 지금 비행기에서 돈을 뿌리고 있다. 20년 전 DJ 벤처붐 때는 그만큼 정부가 투자를 많이 했다. 20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국내도 시스템이 갖춰졌다. 규제가 덧대진 부분도 일부 있지만 일단 굉장히 촘촘한 제도와 거름망이 생겨 국세를 유용할 확률이 많이 줄었다. 헬리콥터로 돈을 뿌리되 벤처인증제도를 받은 기업을 대상으로 하고 사후 관리를 확실하게 하면 된다. 일본이나 유럽 정부가 벤처에 투자하는 수준에 비하면 우리는 아직도 푼돈 수준이다.

오히려 모태펀드 수익률이 너무 높은 것이 문제다. 모태펀드 수익률은 (과거 청산펀드 기준) 7~8%가 나온다. 지금 은행 이자가 얼만데 정부 정책자금 수익률이 이렇게 나올 수 있나. 근본적인 관리 방법을 바꿔야 한다. 일례로 VC(벤처캐피털)들은 상환전환우선주를 한다. 기업 입장에선 빚이다. 상환전환우선주를 없애고 정책자금은 고수익보다 적자를 보지 않는 선에서 투자를 목적으로 운용돼야 한다.”

△혁신벤처단체협의회와 좋은일자리위원회 출범을 준비 중이라고 들었다. 최근 1차 모임을 가졌다던데 앞으로 활동 방향은 어떻게 되나.

“벤처기업계도 20년이 지나면서 다양한 종류로 분화했다. 스타트업 벤처도 있고 중견벤처, 네이버처럼 수조 원을 하는 유니콘 벤처도 있다. 대기업 협력사인 중소기업이 성장한다고 해봤자 나눌 게 크게 없는 것과는 달리 벤처는 초반에는 힘들지만 성공하면 많은 걸 이룰 수 있다. 재벌 대기업 생태계뿐만 아니라 이런 벤처 생태계에서 나름의 혁신적 사고와 기술을 가진 기업들이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한 시기다. 그런 의미에서 벤처기업계의 다양한 층위를 대변하는 벤처기업협회, 이노비즈협회, 한국여성벤처협회, IT여성기업인협회,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 메인비즈협회, 한국벤처캐피탈협회 등 7개 협회가 모인 ‘혁신벤처단체협의회’를 출범 준비 중이다. 앞으로 수시로 모일 예정이다. 우리는 이익단체가 아니라 좋은 정책들을 제안하는 사회단체가 되고 싶다. 기본적으로 다양한 정책을 만들어내고 제안하고 입법화까지 의견을 내는 과정에 참여하고 싶다. 혁신벤처단체협의회는 별도의 사무국 없이 7개 단체가 돌아가면서 대표 의장을 맡는 완전히 수평적인 구조로 운영할 것이다. 또 정책 제안 기능 강화를 위해 벤처기업협회 산하에 새로 조직된 혁신벤처정책연구소와 긴밀히 교류해 나갈 계획이다.

협의회 산하에는 ‘혁신벤처 좋은일자리위원회’를 만들어 이용섭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과 함께 소통할 계획을 갖고 있다. 공식 발족은 당초 예정했던 이달보다 좀 늦어질 것 같다.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취임하는 일정에 맞출 예정이고, 1차로 모인 포괄적인 단체 수준에서 2차로 바이오나 제약 등 더 많은 부문의 기업단체를 합류시켜 규모를 키우려고 하는데 그러려면 출범 시기가 9월로 늦어질 수 있다.”

△앞으로 크루셜텍과 같은 4차 산업혁명 관련 벤처가 많아져야 국가경쟁력이 생긴다. 현재 우리 경제 체력이나 산업구조에서 이런 벤처들이 나올 수 있을까.

“당연하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유례 없이 ‘재벌 생태계’라는 좋은 생태계가 있다. 국토 균형 발전의 관점에서는 어떨지 모르지만 ‘서울 창업벤처생태계’도 있다. 무역 규모가 6~7위이고 경제규모가 10~12위권인 큰 나라의 시스템이 서울에 다 모여 있다. 서울은 전 세계 도시 중에서 병원도, 대학교도 가장 많다. 서울로 모이는 인구가 3000만 명이고 전 세계 다양한 인종들이 두루 섞여 있다. 국내 유수 대기업 본사도 다 서울에 있다. 창업하기엔 최적의 환경이다. 부정적으로 생각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런 최적의 환경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나

“가장 우선적으로 한 가지 지적하면 장기적으로 벤처기업가들을 키우기 위한 핵심은 교육이다. 기업인들은 말을 잘해야 하고, 말에 논리가 있어야 한다. 사업을 할 때는 논리가 앞선 친구들이 성공한다. 논리는 교육이다. 토론 문화에서 나온다. 한국은 토론문화가 없다. 미국이 왜 창업가들이 많이 나올까. 초등학생 때부터 토론하면서 수업을 한다. 가장 근본적인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창업을 준비하는 예비 창업가들에게 선배 창업가로서 조언한다면.

“준비를 잘하면 백전백승이다. 경영학을 전공했으면 기술을 준비해야 하고 기술을 전공했으면 경영학 공부를 해야 한다. 사업을 하더라도 사업에 대한 시나리오가 있어야 하고 사업계획서가 분명해야 한다. 사업계획서만 분명하고 구체적이면 백전백승이다. 충분한 준비가 됐다면 과감하게 부딪치면 된다.”

안건준 회장은 부산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삼성전자에서 연구원 생활을 하다가 2001년 생체인식기술 전문기업인 크루셜텍을 설립했다. 모바일 광마우스인 OTP(Optical TrackPad)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해 ‘세계 시장 점유율 97%’를 점하는 역사를 써내려간 한국 벤처기업 1세대다. OTP 시장이 정점을 찍었던 때에도 안 대표는 이미 다음 세대 기술인 모바일 지문인식 솔루션, BTP(Biometric TrackPad) 개발에 투자해 자가 혁신에 성공했다. BTP가 스마트폰 핵심기술로 채택된 후부터 다음 세대 기술인 DFS(Display Fingerprint Solution) 기술을 비롯한 신기술에 끊임없이 투자하며 혁신해왔다. 지난해 3200억 원의 매출을 기록한 크루셜텍의 임직원 수는 1300명이며 중국, 베트남에 생산공장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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