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원의 세상풍경] 안경 너머로 보는 세상

입력 2017-08-11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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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외출을 할 때 두 가지만 필수적으로 잘 챙기면 된다. 지갑과 휴대폰이다. 돈 쓸 일이 없거나 연락할 곳도 받을 곳도 없다 해도 이 두 가지 중 하나를 놓고 외출하면 왠지 하루 종일 불안하다. 여기에 운전을 하는 사람이면 자동차 열쇠 하나를 더 챙겨야 한다. 자동차 열쇠는 빈손으로 나갔다가도 자동차를 탈 때 바로 알아채고 다시 돌아와 들고 나가지만 지갑과 휴대폰은 집을 나온 지 한두 시간 지난 다음에도 모를 수가 있다.

밖으로 나갈 때 또 챙겨야 할 물건 중에 하나가 안경이다. 내 경우는 집에서 글쓰기 작업을 할 때 안경을 책상 위에 벗어놓고 맨눈으로 컴퓨터 모니터를 보는지라 외출할 때 가장 자주 잊는 물건이기도 하다. 뭐 없으면 없는 대로 하루 불편을 감수하면 되지만, 특히 건널목을 건널 때 안전과 직결되는 일이라 늘 신경을 쓰는데도 가끔 잊고 맨눈으로 외출할 때가 있다.

안경을 안 쓰고 외출한 날에는 이상하게 사람 얼굴을 더 자주 보게 된다. 안경 쓴 사람을 보면 저 사람은 안경을 언제부터 썼을까 생각하게 되고, 안 쓴 사람을 보면 저렇게 안경을 안 쓰고도 세상이 잘 보이면 얼마나 좋을까를 생각하는 것이다. 지금은 여름이라 덜하지만 겨울철에 안경을 쓰고 밖에 있다가 실내로 들어갔을 때 안경에 뿌옇게 수증기가 끼면 순간적으로 그것도 참 곤혹스러운 일이다. 라면이나 어묵탕같이 뜨거운 국물을 먹을 때도 그렇다.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엔 전교생이 300명이 넘는데도 안경 쓴 아이를 보지 못했다. 안경은 할아버지와 교장선생님같이 나이 들고 근엄한 사람들만 쓰는 것인 줄 알았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뿐인 동네 어른들과 안경은 전혀 어울려 보이는 물건이 아니었다.

초등학교에서 시내의 중학교로 입학을 하니까 60명쯤 되는 한 반에 안경을 쓴 아이가 한둘 있었다. 지독히도 시력이 안 좋아 안경을 벗으면 제일 앞자리에서도 칠판의 글씨가 안 보이는 아이들이었다. 안경을 쓰면 그 아이는 키가 크거나 작거나, 뚱뚱하거나 홀쭉하거나 누구에게나 “야, 안경!” 하고 불릴 만큼 여전히 귀한 숫자였다. 그런데 요즘은 아이들 절반은 안경을 쓰고 있다.

어린 시절, 집안 숙모 한 분은 우리 집에 와서 할아버지께 인사드릴 때 안방에 안경을 벗어놓고 더듬더듬 벽을 짚어가며 사랑으로 나가서 절을 올리곤 했다. 그 사이에 숙모의 안경을 써보면 세상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만큼 눈이 안 좋은데도 어른을 뵐 때는 그걸 벗어 놓고 뵙는 게 예의라고 했다. 어린 마음엔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젊은 날, 회사에 다닐 때도 잠시 그런 모습을 보았다. 회사의 부서장들은 자신보다 조금 젊은 윗사람한테 무얼 보고하러 들어갈 때 평소 쓰는 안경은 그대로 착용해도, 거기에 얹어 쓰는 돋보기는 들고 가지 못했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그렇게 하는 게 윗사람에 대한 예의라고 했다. 윗사람한테 자신의 나이를 내세우는 것처럼 보일까 봐 조심스러웠던 걸까. 요즘도 그렇게 하는지 모르겠다.

우리 집엔 나 말고도 안경을 쓰는 아이가 하나 더 있다. 나는 안경 대신 매일 눈에 렌즈를 넣었다 뺐다 하는 게 불편할 것 같은데 아이는 안경을 쓰는 게 오히려 불편하다고 한다. 안경 하나로도 세대 차이가 나고 시대 차이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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