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첫 여성 대법원장보다 중요한 것

입력 2017-08-02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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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새하 정책사회부 기자

“A판사님은 능력도 출중하고 얼굴도 예쁘죠.” 이따금 ‘남성’ 재판장이 ‘여성’ 배석판사를 소개하며 이렇게 말하곤 한다. “일을 잘하는데 얼굴까지 예쁘다”라는 말은 칭찬이라는 가면을 썼지만, 일종의 성희롱이다.

이성의 외모를 평가하는 과정에는 성차별적인 시각과 권력 관계가 들어있을 수밖에 없다. 배석판사가 자신이 모시는 부장에게 “잘생겼다, 예쁘다”고 말하는 일이 드문 점에서도 알 수 있다.

종종 남성 부장판사를 만나면 무의식적으로 흘리는 이야기들이 있다. “배석판사가 갑자기 출산 휴가를 가서 곤란해졌다”, “아무래도 여자 판사가 야근을 덜 한다”는 식이다. 기자 앞에서도 무심결에 흘리는 말들인데, 당사자나 동료 판사들 사이에서는 어떨까 싶다.

대법원 젠더법연구회가 지난해 발표한 양성평등 방해 사례를 보면, 신체·언어적인 성희롱부터 고정적인 성(性) 역할을 강요하는 말까지 다양하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미스 김이 타 준 커피 맛 좀 볼까?”, “더 나이 들기 전에 결혼해야 한다. 노산이라 위험하다” 등 사회적으로 용인하기 어려운 발언도 상당수이다. 위계질서(位階秩序)와 남성 위주의 조직 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 잡은 탓이다.

요즘 법조계에는 첫 여성 대법원장이 나올지에 관심이 쏠려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여성 인재 중용 방침으로 전수안 전 대법관 등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최근 법원에서는 여성이 주요 요직에 발탁되기도 했다. 김소영 대법관은 지난달 18일 여성으로서는 처음 법원행정처장에 올랐다. 앞서 박정화 대법관은 다섯 번째 여성 대법관, 이선애 헌법재판소 재판관도 세 번째 여성 재판관으로 이름을 올렸다.

사법부 고위직에 여성이 앉는 것은 민주적인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 중요하다. 의사결정 과정에 여성과 소수자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때 사회적인 소수자 집단에서 한 사람만 대표로 뽑아 구색을 갖추는 ‘토크니즘’으로 변질될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여성 법관 비율이 30%에 육박하는 법원에서 더 이상 여성은 ‘소수’가 아니다. 1일 임명된 신입법관 25명 중 16명이 여성이었다. ‘일상의 성 평등’이 우선인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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