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론] 도덕성에 편중된 인사청문회의 문제

입력 2017-07-13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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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가 출범한 지 2개월이 지났다. 그런데도 아직 행정 각부의 수장을 모두 채우지 못하고, 일부 국정 공백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가동하지 못했던 탓도 있지만, 그것보다 후보자들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녹록지 않았다는 점이 더 큰 이유일 것이다.

2000년 6월 처음 도입된 이래 올해로 17년째 접어든 인사청문회 제도는 고위공직 후보자의 도덕성과 공직 수행 자질을 검증하여 부적격자의 임용을 막자는 데 그 취지가 있다.

지금까지 청문회 문턱을 넘지 못한 후보자들은 한결같이 도덕성 문제가 가장 큰 걸림돌로 지적됐다. 해당 후보자의 도덕성이 국민의 감정에 비추어 용납할 수 없는 수준이기에 청문보고서를 채택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후보자의 도덕성을 판단하기에 앞서, 청문 내용이 지나치게 국민감정을 자극하는 도덕성 검증 위주로 흘러오지 않았나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 청문회에 적용된 대표적인 검증 잣대를 살펴보면 부동산 투기, 위장 전입, 논문 표절, 기초질서 위반, 탈세 등을 들 수 있다. 모두 개인의 이기심이나 준법정신에 관계된 것으로 이타성(利他性)을 필요로 하는 고위공직자로서의 기본 덕목 평가에 요구되는 최소한이라 하겠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도덕적인 요소들이 검증의 주를 이루어 왔다는 데 있다.

지금까지 인사청문 과정에서 해당 직무수행의 적합성이 문제가 되어 낙마하거나 사퇴한 후보자를 본 기억이 없다. 이는 일단 추천된 후보의 직무수행 능력이 뛰어났거나, 아니면 아예 처음부터 문제 되지 않았거나, 둘 중 하나에 해당할 것이다.

인사청문 제도의 바탕에는 대통령의 과도한 권한 행사를 국회를 통해 견제하고자 하는 권력분립의 이념이 스며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청문은 여야 간의 첨예한 대립 구도와 맞물려 당초의 취지를 몰각(沒却)하고, ‘윤리청문회’에 치우친 반쪽짜리 청문으로 변질되어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런 청문회라면 굳이 국회가 나설 이유가 없다.

인사청문회를 국회에 맡긴 것은 정치가로서의 전문성을 활용하여 후보자의 정책 수행능력을 검증하라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도덕성도 해당 직무와 유관한 내용을 위주로 검증이 이뤄져야 함이 마땅하다.

오늘날 국가경영은 정책 결정자에게 고도의 직관과 지성을 요구하고 있다. 클라우스 슈밥의 말을 빌리면, 이 세상은 이미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진입해 있다. 수요자인 국민이 공급을 결정하는 이른바 ‘온디맨드(on-demand) 시대’에 걸맞은 정치적인 역량이 필요한 때이다. 게다가 디지털 기술의 급속한 보급과 이에 힘입은 개인의 대(對)국가적인 영향력이 날로 커지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도덕성만으로 국가를 경륜(經綸)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도덕성으로부터 경륜이 저절로 나오는 것도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철저하게 정책 수행능력 위주로 고위공직자를 검증하는 미국의 인준청문회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물론 이를 따르기에는 지금의 청문 기간이 턱없이 짧다. 적어도 의원들이 정책에 대한 정보나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한 만큼 그 기간을 늘리는 것도 고려해봄 직하다. 또한 도덕성 문제는 서류 검증을 원칙으로 하되, 대면 검증이 필요한 경우에도 프라이버시에 관계된 것은 비공개리에 청문을 진행하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지금과 같은 인사청문 행태가 반복되는 한 후보자는 프라이버시 침해에 고스란히 노출될 수밖에 없다. 설령 청문회를 통과하더라도 그 후유증으로 의도한 대로의 정책 성과를 내기 어려울 수도 있다. 더 염려스러운 것은 청문회 피로감에 따른 공직 기피증으로 정작 적격 후보자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야말로 ‘쇠뿔 빼려다 소 죽이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제부터라도 도덕성 일변도의 검증에서 벗어나 정책 검증의 장(場)인 인사청문회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또한, 이를 제대로 작동시키는 것이 헌법이 부여한 국정 통제기관으로서 국회의 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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