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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인물사전] 145. 벽화(碧花)
입력 2017-07-03 10:05
신라왕에게 공물로 바쳐진 국경 지역 美女

벽화(碧花)는 신라의 여성으로, 아버지는 파로(波路)이다. 벽화는 신라 제21대 왕인 소지왕(炤知王·재위 479∼500) 대의 인물이다. ‘삼국사기’에는 파로가 딸 벽화를 소지왕에게 바친 일화가 나온다. 소지왕은 비처왕(毗處王)이라고도 하였는데, 자비왕의 맏아들이다.

소지왕이 재위 22년(500) 가을 9월에 날이군(捺已郡·현재 경북 영주)에 행차하였다. 당시 날이군은 신라의 최북방 요충지였다. 소지왕은 왕의 통치행위의 일환으로 군사와 정치적 목적에서 날이군에 행차한 것이었다. 소지왕이 행차하였을 때, 그곳 사람인 벽화의 아버지가 절세미녀였던 16세의 딸 벽화를 왕에게 보냈다. 파로는 벽화에게 수놓은 비단을 입혀서 수레에 태웠다. 그러고는 그 수레를 색깔 있는 명주로 덮어 왕에게 바쳤다.

왕은 정성들여 꾸며진 수레를 보고는 음식을 보내온 것이라 여겼다. 수레를 열어보니 화려하게 꾸며진 어린 소녀가 있었다. 날이군은 고구려와 신라의 경계에 위치한 곳으로 신라왕으로서 경계를 늦출 수 없는 지역이었다. 그 의도를 의심치 않을 수가 없었다. 왕이 받지 않고 궁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궁으로 돌아온 후에 왕은 벽화에 대한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결국 왕은 날이군에 몰래 숨어 들어가서 벽화를 만났고, 이는 거듭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왕이 고타군(古陀郡·현재 경북 안동)을 지나던 길에 한 할머니[老嫗]를 만나서 그 집에 하룻밤 묵게 되었다. 왕이 할머니에게 “지금 사람들은 왕을 어떤 군주로 생각하오?” 하고 물으니 할머니가 “많은 사람들이 성인으로 여깁니다”라고 대답하였다. 흐뭇하게 여기는 왕에게 할머니가 뒤이어 말하였다.

“그런데 저는 의심스럽습니다. 왕이 날이의 여자와 잠자리를 함께하기 위해 여러 번 미복차림으로 간다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무릇 ‘용이 고기의 옷을 입으면 어부에게 잡히는 법’입니다. 지금 왕은 가장 높은 지위를 누리면서 스스로 신중하지 못하니 이를 성인이라 한다면 누가 성인이 아니겠습니까?”

‘삼국사기’에는 왕이 할머니의 말을 듣고 매우 부끄러워했다고 한다. 신라 사회에서 할머니, 즉 노구는 예지(豫知)와 점복(占卜)을 행하는 이였다. 노구의 조언을 왕조차도 예사로 들을 수는 없었다. 왕은 몰래 날이군으로 행차하던 미행(微行)을 중지하였다. 그러나 왕은 끝내 벽화를 잊지 못해 결국 그녀를 궁의 별실에 몰래 맞아들였으며 아들을 낳기까지 하였다.

소지왕 이후 신라 22대왕으로 지증왕(재위 500∼514)이 전왕이 아들이 없이 죽었기 때문에 왕위에 올랐다고 하였다. 벽화가 낳은 아들은 왕의 아들로 인정받지 못하였던 것이다. 벽화는 날이군의 정치적 목적에 의해 왕에게 바쳐진 공물이었다. 그러나 왕이 벽화를 받아들인 것은 정치적 목적이 아닌 개인적인 감정이었다. 벽화는 공적인 이해와 사적인 감정의 교차 지점에 있는 존재였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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