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의 말] “기다려 달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입력 2017-06-27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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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청와대 정책실장

때로 좋은 뜻을 가지고 한 일이 엉뚱한 결과를 낳곤 한다. 도움을 주겠다고 한 일이 도리어 큰 피해를 주기도 하고, 일이 되게 하자고 한 일이 오히려 일을 그르치게 만들기도 한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언젠가 소개한 이야기이지만 1980년대 후반, 전세금이 크게 오르는 소위 ‘전세 파동’이 있었다. 잘 알려진 시민단체 하나가 이 일을 놓고 고민을 하다 나름 그럴듯한 안을 내놓았다. 전세 계약 자체를 2년 단위로 하게 해서 최소한 매년 올리는 것은 막자는 내용이었다.

정부 또한 괜찮은 안으로 생각했고, 그래서 임대차보호법을 그런 방향으로 개정했다. 그러나 이를 어쩌나. 법 개정 후 전세금은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상승했다. 그야말로 다락같이 올랐다. 내년에 올리지 못하게 된 집주인들이 올해 계약에 내년 인상분까지 합쳐서 요구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완벽한 실패였다. 서민들을 살리려고 한 일이 오히려 서민들을 죽이는 일이 되어 버렸다. 한동안 이 시민단체는 이 쓰디쓴 경험을 잊지 말자는 구호를 사무실 벽에 써 붙여 놓고 일을 했다.

지난 대통령 선거 때 여야 후보 공히 많은 약속을 했다. 특히 문재인 후보는 근로시간 단축, 최저임금 인상,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수혜 대상자로서는 눈이 번쩍 뜨이는 공약들을 많이 내놓았다. 당선만 시키면 바로 신분이 달라지고, 또 돈이 바로 주머니에 쑥쑥 들어올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공약들이었다.

당연히 비정규직 근로자들과 저임금 근로자들, 그리고 아르바이트생 등이 이를 믿고 지지를 보냈다. 자신은 물론 가족·친지 등 주변의 적지 않은 사람들이 또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후보가 대통령이 된 지금, 이들 모두 이러한 공약이 이행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게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점이다. 자칫 잘못하면 엉뚱한 결과, 즉 이들 수혜 대상자를 더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 이를테면 최저임금의 급격한 상승은 자동화와 전산화의 속도를 배가시켜 고용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 수 있고,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도 우리 사회와 시장의 활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하지 말라는 뜻도, 해서 안 된다는 뜻도 아니다. 잘못된 공약이라는 말도 아니다. 그만큼 종합적이고 단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래야 제대로 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공약 실현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입장은 다르다. 정권의 힘이라는 게 길어야 2~3년, 정권 초창기인 지금 바로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믿고 있다. 어쩔 건가, “지금 당장 하라”고 고함을 지르며 시위도 하고 청와대 앞에 천막도 친다.

어떻게 해야 할까? 별수 있겠나. 얼마 전 대통령이 한 것처럼 “기다려 달라” 부탁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냥 그렇게 말하는 것은 하지 않겠다거나, 하지 못하겠다는 것과 똑같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정말 그럴듯한, 그래서 누가 봐도 믿을 수 있는 로드맵을 내어 놓으며 그렇게 말해야 한다.

그 로드맵에는 어떤 것들이 들어 있어야 할까? 높은 임금을 감당할 수 있는 산업구조로의 전환 문제가 들어 있어야 할 것이고, 이를 위한 자본시장 개혁 방안과 노동생산성 향상 방안 등도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또 비정규직 양산의 큰 원인이라 할 수 있는 대기업과 대기업 노조의 이기주의를 넘을 방안 등 많은 것이 들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야당들과의 관계이다. 아무리 못나도 야당은 야당, 국가의 중요한 의사결정 주체이다. 이들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밀어붙여 보겠다는 것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다. 대중적 지지를 얼마나 받고 있건 간에 말이다. 이들의 협력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방안이 반드시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오늘도 광화문과 청와대 앞은 시위와 천막들로 어지럽다. 다시 한번 말한다. 혼자 밀어붙이겠다고 하지 마라. 그냥 기다려 달라고도 하지 마라. 마음이 급한 사람들을 기다리게 할 수 있는, 실현 가능성 큰 로드맵을 내어 놓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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