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합의 없이 도입한 48곳 성과연봉제 백지화…1600억 원 환급 진통

입력 2017-06-26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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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사실상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폐기 방침을 밝히면서 이에 따른 후폭풍이 거세지고 있다.

26일 기획재정부와 공공기관에 따르면 지난 21일 성과연봉제 도입 때 가점을 주던 경영평가 항목을 삭제하고, 노사 합의 없이 이사회 의결만으로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한국자산관리공사, 한국수력원자력, 한국가스공사, 한국조폐공사, 코레일, 서부발전 등 48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조속한 시일 내 이사회를 열어 보수 체계 환원에 나설 것을 주문했다.

기재부는 성과연봉제 의무화 폐지가 호봉제로의 전환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성과연봉제가 근속 연수와 직급에 따라 매년 자동적으로 임금이 오르는 연공급제(호봉제)의 폐단을 막기 위해 나왔다는 점에서 호봉제로 돌아가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노사 합의 없이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기관은 물론 노사가 합의한 기관도 임금체계를 기관 특성에 맞게 자율적으로 다시 결정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공공기관들은 어떤 방식을 선택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고 있다. 지난해 이사회 의결만으로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공기업들은 이사회를 다시 열어 이를 번복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성과연봉제는 지난해 1월 도입을 발표한 뒤 3월 한국마사회를 시작으로 6월까지 대상 공공기관 119개가 모두 도입을 마쳤다. 이 중 48개는 노사 합의가 안 돼 이사회 의결만으로 시행했고, 이 중 30여곳은 법원에 무효 소송을 내며 반대하는 중이다.

철도노조는 코레일의 성과연봉제 도입에 반발해 지난해 9월 27일부터 74일간 최장기 파업을 벌였고, 코레일은 철도노조 간부들을 대상으로 파면 24명, 해임 65명, 정직 166명 등 255명을 중징계했다.

하지만 최근 경찰은 코레일이 김영훈 철도노조 위원장 등 노조 간부 19명을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한 것과 관련해 업무방해죄 혐의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고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노조의 파업이 정당하다고 본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41부는 지난달 주택도시보증공사 노조가 회사에 ‘노조 동의 없는 성과연봉제 도입은 무효’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하기도 했다.

한국전력공사 등 노사 합의로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공공기관 역시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지난해 4월 노조 찬반 투표를 거쳐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한전 측은 “정부 핵심 과제를 이행한다는 차원에서 노사 합의로 성과연봉제를 도입해 추진해왔다”며 “구체적인 지침이 없어 노조와 급여 부서가 어떤 방향으로 갈지 논의 중”이라고 했다. 한전은 성과연봉제를 조기 도입해 전년도 연봉 월액의 50%(435억 원)를 인센티브로 받았다.

공기업 최초로 전 직원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한국마사회는 성과연봉제를 전면 폐지하고 인센티브를 반환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마사회 노조 관계자는 “정부 지침이 명확하지 않다 보니 혼란스러운 상황”이라며 “사측과 실무적으로 논의 중인데 한전 등 규모가 큰 공기업들이 하는 것으로 보고 맞춰가는 게 맞을 것”이라고 했다.

국토부 산하 공기업인 코레일, LH(토지주택공사)나 한국도로공사, 한국수자원공사, 인천국제공항공사, 한국국토정보공사 등 14곳은 모두 노사합의 없이 이사회 의결만 거쳤다. 이에 따라 대부분이 9월까지 이사회를 개최해 성과연봉제를 폐지할 계획이다. 코레일의 경우 올해 1월 31일 대전지방법원이 철도노조가 코레일을 상대로 낸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전면 중단된 상태다.

이사회 의결만으로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한수원은 이미 연봉월액의 20%에 달하는 100억 원 규모의 인센티브를 지급했다.

성과연봉제 도입 기관에 지난해 지급된 1600억 원의 인센티브 환수를 둘러싸고도 직원들은 동요하고 있다. 성과연봉제 조기 도입으로 성과급을 받은 공공기관의 직원은 18만 명에 이른다.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지난해 정년퇴직한 직원도 있고, 법적으로 강제할 수도 없어 인센티브 반환은 쉽지 않을 것”이라며 “개인의 재산권이라는 의견과 정부의 예산이기에 정부 지침이 정해지면 반납을 하는 것이 맞다는 의견이 내부에서 엇갈리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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