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으로 본 상속·가업승계] 아버지가 전재산을 준다고 한 유언장에 주소를 쓰지 않았다면

입력 2017-06-2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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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명의 아들을 둔 A 씨는 평생 본인과 함께 살아온 장남에게 전 재산인 부동산, 예금 등을 물려준다는 내용의 유언장을 작성했다. 자필로 전 재산을 장남에게 물려준다는 내용을 쓴 다음, 이름과 날짜를 적고 도장을 찍었다.

A 씨가 사망한 이후 큰아들 B 씨는 유언장을 가지고 A 씨가 물려준 부동산에 상속등기를 하기 위해 알아보던 중 A 씨가 자필로 작성한 유언장에 주소가 기재되지 않아 무효가 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만일 A 씨가 작성한 유언장이 무효라면, A 씨가 남긴 재산은 장남 B 씨와 동생 2명이 나눠 갖게 된다. 이 경우 B 씨는 아버지의 유언장 내용대로 전 재산을 상속받을 수 있을까?

우리 민법은 유언의 방식으로 자필증서(自筆證書), 녹음, 공정증서(公正證書), 비밀증서, 구수증서(口授證書) 등 5가지를 정하고 있다. 대법원은 “민법 제1065조 내지 제1070조가 유언의 방식을 엄격하게 규정한 것은 유언자의 진의를 명확히 하고, 그로 인한 법적 분쟁과 혼란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므로 법정된 요건과 방식에 어긋난 유언은 그것이 유언자의 진정한 의사에 합치하더라도 무효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판시하고 있다.

유언자가 자필로 유언장을 쓴 것을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이라고 하는데, 민법은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의 경우 ‘유언자가 그 전문과 연월일, 주소, 성명을 자서하고 날인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민법 규정에 따르면 위 사례처럼 유언자가 주소를 쓰지 않은 경우 유언장은 무효가 된다. 대법원은 유언자가 자신의 주소로 ‘암사동에서’라고만 기재한 사안에서 이 유언장은 무효라고 판단하기도 했다.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은 ‘연월일’도 기재해야 하는데, ‘2002년 12월’이라고 ‘연월’만 기재한 사안에도 대법원은 ‘일’의 기재가 없으므로 유언이 무효라고 판단하였다.

그런데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에 있어 주소까지 기재해야만 유언의 효력이 발생한다고 보는 것은 비현실적일 뿐만 아니라, 필요 이상의 엄격한 제한이고 유언자의 진정한 유지를 실현시키지 못하는 부당한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이에 따라 주소를 기재하지 않더라도 유효하다고 보거나 주소를 기재하였는지 여부를 다소 완화된 기준으로 판단하는 하급심 판례들도 있다.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과 관련해서도 주의할 점이 있다.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은 질병 등의 급박한 사정으로 다른 방식에 의한 유언을 할 수 없는 경우 유언자가 말로 유언을 하고, 다른 사람이 이를 받아 적는 방식으로 하는 유언이다.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의 경우 급박한 사유가 종료한 날로부터 7일 내에 가정법원에 검인(檢認)을 신청하도록 되어 있다. 다른 방식에 의한 유언의 경우 검인을 받지 않더라도 효력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의 경우 검인을 받지 않으면 유언이 무효가 된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이처럼 유언의 경우 민법이 정한 방식을 정확히 지키지 않으면 무효가 될 가능성이 높다. 유언의 효력 여부만을 가지고 대법원까지 가서 다투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필자는 이러한 위험을 줄이기 위해 가능하다면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을 할 것을 권한다.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은 공증인이 유언장을 작성하는 것인데, 전문가인 공증인이 하므로 유언의 효력에 관한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매우 낮다. 비용도 최대 300만 원 정도로, 소송할 경우 들어갈 비용을 생각할 때 크게 부담이 되는 수준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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