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경진의 루머속살] 배임죄가 석연찮은 금융투자업계

입력 2017-06-15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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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금융부 차장

서울중앙지방법원이 최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투자위원들에게 합병 찬성을 지시해 국민연금에 거액의 손해를 끼친 혐의를 받고 있는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에게 업무상 배임 혐의를 적용해 유죄판결을 내렸다.

이번 판결로 금융투자업계에서는 배임죄(背任罪)가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특검이나 법원은 삼성물산 주주 입장에서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이 배임죄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삼성물산 주식만 갖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 즉, 배임죄라는 것은 삼성물산 주주 입장에서만 국한된 비판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부 전문가 사이에서는 경영이나 투자 판단에 단편적인 부분만을 놓고 판단하는 것에 대해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온다.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국민연금은 합병 당시 제일모직(지분 4.8%·평가금액 1조1763억 원)과 삼성물산(지분 11.21%·평가금액 1조2209억 원)을 모두 보유하고 있었다.

제일모직 주가는 지주사 기대감에 꾸준히 올랐고, 삼성물산 주가는 건설업황 부진에 따라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두 회사 모두 주식을 갖고 있던 국민연금이 합병 반대를 던져 합병이 철회될 경우 제일모직은 최소 20~30% 이상 급락할 것으로 예상됐다. 지주사 기대감으로 이미 주가가 20~30% 이상 올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합병을 반대해 합병이 물 건너갔다면 삼성물산 주가가 올랐을까. 전혀 아니다. 삼성물산은 합병 발표 이전까지 같은 건설업종의 경쟁사 현대건설과 주가 흐름이 거의 일치했다. 일부에서는 국민연금이 삼성물산 주식을 내다 팔아 주가를 일부러 떨어트려 합병을 도왔다며 주가조작 의혹을 제기하지만, 국민연금은 현대건설 주식 역시 같은 시기 내다 팔았다. 국민연금뿐 아니라 기관투자자 대부분 건설주 주식을 매도하던 시기였다.

특검은 국민연금이 합병 찬성으로 1387억 원의 손실을 봤다고 주장하지만, 오히려 합병을 반대할 경우 2000억~3000억 원의 손실을 볼 수도 있던 상황이었던 셈이다. 합병을 반대하면 제일모직에서 손해, 찬성하면 삼성물산에서 손해를 보게 되는 ‘외통수’ 상황에서 차선으로 상대적으로 손해를 덜 볼 수 있는 선택이라 할 수도 있다.

검찰은 당시 국민연금의 선택이 합병 관련 전문가들의 판단을 담은 보고서와 달랐다는 점을 중시했다. 하지만 이 보고서는 국민연금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양 사의 주주로서가 아닌 삼성물산 주주로서의 선택을 분석한 것이다. 이는 보고서 작성자의 증언에서도 확인된 사실이다. 그는 두 회사의 주식을 모두 갖고 있는 것을 놓고 검토했다면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국민연금 사건을 맡은 재판부는 삼성물산 주식을 갖고 있는 것에 대해서만 가정하고 손해를 끼쳤다며 배임죄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렸다. 경제 현실에서 한 시점의 한 부분만을 놓고 결과에 따른 형사처벌이 합당한지 의문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홍완선 전 본부장의 배임죄를 놓고 여러 의견이 나오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최근 이런 문제의식을 반영하듯 인천지법 형사항소3부(부장판사 김동진)는 업무상배임죄(業務上背任罪)를 규정한 형법 355조2항과 356조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재판부는 사법부에 국회가 제정한 법률을 해석·적용하는 국기기관일 뿐”이라며, “사법부가 권한을 초월한 법 해석으로 사법 질서를 깨트리고 있다”고 했다.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상황”이라며 위헌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과연 전 세계에서 유일하다시피 한 배임죄가 위헌으로 나와 사라지게 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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