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달자의 햇살과 바람] 그리운 여자들

입력 2017-06-09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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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대통령(大統領)을 먼저 낸 것으로 한다면 미국보다 우리나라가 더 앞선 나라다. 그러나 여성 대통령의 끝이 몰락하면서 그 자부심마저 내려놓아야 했다. 언제 한국에 여성 대통령이 다시 나올지 참 많이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여성이 인간을 앞지르는 영웅적 실화를 만들어 놓은 경우는 정치 역사보다 현실에 더 많았다. 유관순, 신사임당이 있지만 나는 오히려 고대소설에 나오는 춘향이나 심청, 장화홍련, 박씨전의 인물들을 떠올린다. 이 인물들은 모두 결손가정의 불행에서 행운을 스스로 찾은 여성이다. 특히 춘향이의 약속정신과 심청이의 약속정신은 인간의 위치를 한 단계 오르게 했다고 생각하고 싶다. 그것은 예술정신이었으리라 생각한다.

대단한 여성이 세계 예술계에는 많다. 시대를 앞서 비운의 삶을 살았던 여성 중에는 카미유 클로델(프랑스, 1864~1943)이 있다. 프랑스는 예술정신을 높이 평가받는 클로델을 기리기 위해 국립미술관을 개관하였다. ‘로댕의 연인’ ‘비운(悲運)의 조각가’로 알려져 있는 클로델은 비로소 당당한 예술가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로댕 탄생 100주년에 이루어진 일이다.

제자이면서 모델이며 숨은 연인이었던 클로델은 모든 걸 바쳤음에도 심장을 도려내는 아픔만을 가지고 로댕을 떠나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한다. 여러 설이 있다. 클로델을 사랑했지만 앞지르는 천재성을 질투하여 일을 못 하게 압력을 가했다는 설, 아무도 모르게 그의 작품을 사 그녀에게 힘을 실어 주었다는 설도 있다.

조르주 상드(프랑스, 1804~1876)도 대단한 여성이었다. 쇼팽의 연인 상드는 10년 정도의 시간을 쇼팽에게 바쳤고 쇼팽의 걸작은 그때 태어났다고 한다. 남장(男裝)을 즐겼고, 여성에게 금지된 흡연으로 비난을 받았지만 당당하게 살았다. 그러나 그의 자유연애를 질타하는 사람들에 의해 100편이 넘는 소설 중에 단 몇 편만이 남아 아쉬움이 크다.

버지니아 울프(영국, 1882~1941)는 여성 차별에 반기를 든 사회운동가라고 할 수 있다. 1915년 ‘출항’을 간행하면서 작가로 데뷔한 울프는 여성의 정신세계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쳤지만 거기까지 오는 길은 고통과 상처로 얼룩져 있었다. 어린 시절 의붓오빠들에게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당해 신경쇠약에 시달려 자신의 작품 평가도 기뻐하지 못하고 주머니에 돌을 잔뜩 넣고 강물에 뛰어들었던 울프의 삶은 지금의 여성들에게 분노와 갈채를 보내게 한다. ‘자기만의 방’은 여성 차별에 항거하는 함성이 가득한 책이다.

화가 프리다 칼로(멕시코, 1907~1954), 시인이자 소설가 실비아 플라스(미국, 1932~1963)가 있지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나혜석(1896~1948)과 전혜린(1934~1965)도 꼽고 싶다. 하긴 저 멀리 결코 한국 여성에서 빼놓을 수 없는 황진도 있다.

나혜석은 여성 차별을 인류 세계에 통보하고 사라진 대담한 인물이다. 전 애인의 무덤에 김우영을 데려가 세 번의 절을 시키고 결혼한 나혜석은 결국 최린과의 불륜으로 이혼을 당하지만 지금 바라봐도 섬뜩하게 아름다운 작품을 남겼다. ‘자화상’ ‘파리풍경’의 대담한 터치와 과감한 색채는 그녀의 인생을 앞서게 한 그녀의 심장이거나 영혼이었을 것이다. 전혜린도 마찬가지다. 불행했지만 분명한 시대의 흔적을 남긴 그들을 만나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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