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박형수 원장“증세 정책, 세수항목 재설계하고 속도 조절해야”

입력 2017-06-09 10:42수정 2017-06-12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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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세종특별자치시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서 만난 박형수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은 “조세 정책에서 가장 잘못된 방향은 세율 목표를 정하고 무작정 추진하는 것”이라며 “정권이 바뀌더라도 정책의 연속성을 갖고 계속 추진해야 증세 정책이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유진 기자 strongman55@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는 사실은 박근혜 정부를 겪으면서 뼈저리게 체감했다. 박근혜 정부는 나라 빚을 내지 않고 증세 없이 5년 간 총 135조 원을 조달해 복지공약 재원으로 쓰겠다는 심산(心算)이었다. 결과는 최악으로 흘렀다. 소리 소문 없이 간접세를 올리더니 급기야 어마어마한 빚을 내기 시작했다. 박근혜 정부 4년 간 추가로 쌓인 재정적자 규모만 111조 원이 넘고, 올해 여파까지 고려하면 150조 원을 훌쩍 넘을 것으로 추계됐다. 노무현 정부 10조9000억 원에 불과했던 재정적자 규모가 9년 새 천문학적 수치로 뛴 것이다. 이 기간 우리나라의 부채 증가율도 32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6위로 매우 높았다.

문재인 정부가 일자리 창출을 위해 11조2000억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을 국채 발행 없이 마련하겠다고 강조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새 정부에서 대통령 공약 이행에 필요한 예산 규모는 재임기간인 5년 간 총 178조원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는 연간 35조6000억 원으로, 세부실천 계획에 따라 재원은 더 늘수 있다.

이 중 세출구조조정을 통해 연간 필요 재원의 62.9%(22조4000억 원)을 마련하고, 나머지 37.1%(13조2000억 원)은 조세개혁을 통해 조달한다는 복안이다. 하지만 세출구조조정은 대통령 임기 첫해에는 이전 정부의 사업 물꼬를 틀어 재원 확보가 가능하지만, 이후에는 효과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증세를 통한 세수 확보가 불가피 할 전망이다. 그러나 증세는 자칫 조세저항을 불러 일으켜 정권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증세 해법을 알아보기 위해 이달 7일 우리나라 거시재정분야를 처음으로 설계한 박형수 한국조세재정연구원(KIPF) 원장을 세종시 국책연구단지에서 만났다.

박 원장은 이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증세는 사회적 합의 없이 무리하게 진행될 땐 오히려 역풍에 휘말릴 수 있다”며“방법론적 접근에서 보면 세수항목 재설계와 속도 조절의 두 조건이 모두 충족돼야 성공적인 증세 정책을 펼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조세부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도 매우 낮고, 소득세와 법인세 등의 실효세율도 선진국과 비교해 낮은 수준”이라며 현 상황에서 증세가 가능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1인 가구와 4인 가구의 임금근로자 평균 소득세 실효세율은 각각 5.44%, 2.90%이다. 이는 OECD 1인 가구와 4인 가구의 임금 근로자 평균 소득세 실효세율의 15.75%, 10.45%에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다만, 박 원장은 “세율을 무조건 올리는 것보다는 먼저 각종 비과세 감면 축소, 낮은 세율 항목 정상화, 자본소득 등 비근로소득 과세, 각종 양도차액 과세 등의 기울어진 운동장(세율)을 바로 잡는 게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3월 국세청에 신고된 2015년 12월 결산법인의 실효세율을 보면 기이한 현상이 생겼다. 기준 과표 1000억원 이상의 사업장에서 실효세율이 17.9%로 나온 반면, 500억~1000억원 사이의 사업장은 오히려 19.4%로 더 높게 징수됐기 때문이다.

이같은 원인에 대해 그는 “소득세나 법인세 등에 효과는 없으면서 마치 보조금 주듯이 퍼주는 조세정책을 바로 잡은 후에 세율을 인상해야 조세저항도 줄고 국민적 공감을 얻어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다”고 역설했다.

이와 함께 박 원장은 조세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여러 개의 조세 개혁안을 논의하고 처리하는‘조세개혁 특별기구’를 국회에 설치해 추진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아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동시에 여야가 모인 특별기구에서 합의점을 도출하면 증세 정책에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원장은 “조세 정책에서 가장 잘못된 방향은 세율 목표를 정하고 무작정 추진하는 것”이라며“정권이 바뀌더라도 정책의 연속성을 갖고 계속 추진해야 증세 정책이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박형수 원장과 인터뷰 내용이다.

△선진국대비 우리나라의 조세·국민부담률은 어느 수준인가?

“우리나라 조세·국민부담률은 OECD국가 중에서 매우 낮은 편이다. 그러나 2016년 조세부담률이 19.4%까지 상승한 것으로 추정돼 역대 최고치인 2007년 19.6%에 근접하고 있다. 또 국민부담률은 2015년부터 매년 역대 최고치를 경신해 현재 26%대에 진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새 정부의 공약 이행에 필요한 재원 마련 방안으로 증세 얘기가 계속되고 있다. 어떤 절차를 밟는 게 좋은지?

“복지공약 이행을 위한 증세는 국민적 합의 하에 추진하는 것이 중요한데, 국민들이 받아 들일 수 있는 수준과 속도로 이뤄져야 한다. 공약으로 제시된 ‘조세 재정 개혁을 위한 특별기구’를 국회에 설치해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미국 재무성 작업팀, 스웨덴 조세위원회, 덴마크 조세위원회 등 외국사례와 과거 참여정부 경험을 감안할 때 여야 간 협의를 통해 국회내 개혁 논의 기구를 설치하고 개혁방안 초안 마련을 위한 독립적 전문가 논의기구 운용이 필요하다. 이를 바탕으로 정부의 수정안 마련과 국회에서 이해당사자 협의과정을 통해 세법 개정을 추진하는 게 좋을 듯 하다.”

△우리나라의 평균 실효세율이 세계 각국과 비교할 때 낮은 수준이라고 하는데, 어느 수준까지 올리는 게 적정한가?

“소득세 실효세율(보조금 제외)은 소득수준, 가구 구성에 관계없이 외국에 비해 모두 낮은 수준이다. 다만, 소득세 부담은 빠른 증가 추세에 있으므로 구체적 목표의 설정보다 적절한 증가 속도를 유지하며 국민 수용성을 감안해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구조적으로 소득세는 모든 계층에 대한 세부담 인상이 필요하지만, 세부담 인상의 왜곡 효과를 줄이기 위해 비과세 감면과 금융소득 등 자산소득 과세범위 확대 등을 순차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법인세 실효세율도 명목세율이 높은 미국, 호주, 일본보다 낮으나 명목세율이 낮은 캐나다보다는 높다. 법인세 명목세율은 국가 간 조세경쟁 정도를 감안해 결정하고 실효세율은 명목세율과의 비율로서 판단하는 게 좋다. 명목세율과 실효세율의 격차는 각종 조세지원 등의 효과이므로 이를 어느 수준으로 활용할 것인지의 문제이다.”

△현재 22% 수준인 법인세율을 25%로 원상 복귀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법인세 인상은 어떻게 결정하는 게 좋은지?

“법인세율 조정은 단기적 세수 확보 측면과 경제성장을 통한 고용 등 장기적 세원 확보 측면을 충분히 비교해 결정해야 한다. 법인세율에 대한 평가는 과거와의 비교보다 외국과의 비교를 통해 이뤄지는 것이 효과성을 잘 보여주는 방식이다. 법인세율 조정의 장단기 효과성에 차이가 있는 만큼 즉각적인 조정보다 새 정부 공약과 같이 ‘先(선) 비과세 감면 정비, 後(후) 법인세율 인상’ 원칙 하에 향후 재정상황을 감안해 인상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가부채 증가율 속도가 빠르다는 지적이 있는데?

“정부수립 이후 국가부채 증가 추이를 볼 때 최근 국가부채 급증은 매우 이례적이며, 향후에도 증가 추세가 지속될 전망이다. 안정적이던 국가부채가 1차 석유파동 전후 일시적으로 급증했으나, 1997년 외환위기 직전까지 20여년 간 하락세가 지속해 본래 수준으로 회복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지난 20년 간은 명목GDP는 3.4배 증가에 그친 반면, 국가채무는 10.4배로 급증했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가부채 증가는 대부분이 대응자산 없이 조세부담으로 상환해야만 하는 적자성 채무에서 늘었다.”

△현재 정부의 부채규모가 선진국과 비교해 어느 정도인지?

“국가부채 규모 자체는 선진국에 비해 작은 편이지만, 최근 우리나라 국가부채의 급증 추세는 주요 국가와 비교해 보더라도 크게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우리나라 국가부채 수준은 통계 입수가 가능한 32개 OECD 국가 중 27위로 다른 국가에 비해 아직은 작은 편이다. 그러나 2010~2016년 기간 중 국가부채 증가율은 우리나라가 10.3%(국내기준 8.5%)로 OECD 평균 6.6%를 크게 웃돌았다. 이 기간 중 국가부채 증가율은 32개 OECD 국가 중 6위로 매우 높다.”

△정부차원의 부채관리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는데, 어떤 방식으로 관리하는 게 좋을 지?

“향후 재정정책은 장기적 관점의 제도 개혁을 통해 재정 여력(fiscal space)을 확보하는 동시에 이를 바탕으로 단기·중기적으로 성장잠재력 확충과 사회통합에 필요한 재정투자를 선별적으로 유지·강화하는 ‘이원적’ 재정정책(Intertemporal Fiscal Policy)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

△ 박형수 한국조세재정연구원(KIPF) 원장은

1967년 전라남도 화순에서 태어난 박형수 한국조세재정연구원(KIPF) 원장은 광주동신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UCLA에서 경제학 박사를 취득한 거시재정 전문가이다.

1990년 1월 한국은행 외환관리부에서 외환관련 업무가 그의 사회생활 시작이었다. 한국은행에서 외환관련 업무를 익히면서 거시재정에 눈을 떴고, 미국 유학에 이어 국제부와 조사국을 거치면서 거시재정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2000년 서강대 경제학과 강사로 잠시 재직하던 중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2001년 한국조세연구원(현 한국조세재정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시기는 박 원장이 본격적으로 우리나라에 거시재정분야를 설계하던 때이다. 당시 우리나라의 한해 예산이 지금의 4분의 1 수준인 100조 원에 불과했다. 누구도 거시재정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관심대상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박 원장은 국가예산이 점점 커질 것을 대비해 거시재정분야를 깊게 파고 들었다. 이러한 각고의 노력으로 박 원장은 성장률 모형도 만들었다. 최근 정부의 추가경정예산(추경) 투입 시 성장률이 0.2%포인트 오를 것이란 전망치도 박 원장이 설계한 모형에서 나온 수치다. 이 모형 하나면 연간 성장률 예측뿐만 아니라, 매년 바뀌는 세법 적용에 따른 재원 규모도 예측이 가능하다. 대선 직전에는 이홍구 전 국무총리 등과 함께 새 정부의 정책제언을 담은 ‘대전환의 파도 한국의 선택’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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