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회의 인문경영] 위민(爲民)의 리더십 vs 여민(與民)의 리더십

입력 2017-05-22 10:53수정 2017-05-25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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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는 청와대 비서동의 이름을 ‘위민동(爲民棟)’에서 ‘여민동(與民棟)’으로 바꾸었다. 노무현 정부 때 ‘여민동’이었다가 이명박 정부 시절 위민동으로 개명했으니, 본래 이름을 되찾은 셈이다. 여민과 위민.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깊이 살펴보면 기저 패러다임이 다르다. 자원(字源)을 보면 그 의미 차이가 더욱 분명하다. ‘위민’의 할 위(爲)는 손톱 조(爪)와 코끼리 상(象)으로 구성돼 있다. 코끼리를 부려 일을 시키는 모습을 상형한 것이다. ‘여민’의 여(與)는 마주들 여(舁)와 어조사 여(欤)가 합쳐진 글자다. 함께 힘을 합쳐 손으로 무엇인가를 들어 올리는 모양이다.

‘위민’이 범용 명칭이라면 ‘여민’은 보다 특화된 명칭이라고 할 수 있다. ‘여민(與民)’은 어디에서 유래했는가. 특화된 브랜드로 의미를 부여한 이는 맹자이다. 그는 백성과 함께 나누고, 즐기고, 함께 도를 행하는 것이야말로 군주와 군자의 도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맹자가 활동하던 전국시대, 만인지상(萬人之上)의 자리에서 천하를 쥐락펴락하는 군주일지라도 백성의 눈치는 봐야 했다. 화려한 궁전, 사냥의 사치와 향락을 즐기려면 백성들이 신경 쓰였고 ‘리더의 자격’에 대한 양심의 가책도 느꼈다. ‘이런 사치스러운 행동을 해도 왕 노릇을 잘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맹자의 대답은 의외다. “문제없다. 사치와 향락을 얼마든지 즐기시라. 지금보다 더 크게, 세게 해도 상관없다.” 반전은 그다음이다. 문제는 백성들도 그것을 함께 즐길 수 있느냐, 즉 ‘함께하느냐’라는 것이다. 어쩌면 하지 말라는 말보다 더 무서운 죽비소리가 아닌가.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구호를 패러디하자면 “바보야, 문제는 여민이야”라고 할 수 있다.

여민은 위민과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얼핏 같아 보이지만 차이가 있다. 이에 대한 논의는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먼저 양립할 수 없는 대칭적 요소로 보는 관점이다. 이들은 “위민에는 통치 계층이 주체가 되어 객체인 우매한 백성을 이끈다는 타율적(他律的)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해석한다. 반면에 여민은 “리더와 팔로워를 하나의 공동 주체로 보는 적극적인 견해가 전제되어 있다”고 본다. (청와대에서 내놓은 ‘여민관 이름 원상 회복’의 배경 설명도 주체- 객체 견해와 맥이 닿아 있다). 이들이 지적하는 위험한 오류는 지도층의 ‘위민’에 대한 해석 오용, 과용이다. 백성을 단지 객체로 볼 때, 위민은 엉뚱한 방향으로 오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주체의 오도된 책임감과 리더의 과잉 시혜의식(施惠意識), 희생 심리는 보답과 보상을 은연중 기대케 한다. 그것이 충족되지 않을 때 “이러려고 ○○○ 했나” 식의 일탈행동과 상실감의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다음으로 위민을 총론, 여민을 각론으로 보는 이원적 개념의 시각도 있다. 위민이 총론적 지향점이라면 ‘여민’은 과정의 프로세스라는 설명이다. 여민을 토론과 설득의 사회적 측면, 정의와 분배의 경제적 측면이라고 풀이한다. ‘위민’의 목적이 아무리 옳더라도 ‘여민’의 절차를 함께 밟아야 완성할 수 있다는 요지다. 필자는 이 같은 사회경제적 의미뿐 아니라 감성적 측면을 더하고 싶다. 요컨대 경제적 측면의 밥, 비전 측면의 꿈뿐 아니라 동고동락의 맘을 나누자는 의미이다. 말하자면 맘(공감), 밥(경제), 꿈(비전)의 공동체를 만드는 게 진정한 여민의 리더십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문재인 정부가 청와대 비서동의 명칭을 위민관에서 여민관으로 원상복구한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위민’의 위대한 영도력 못지않게 ‘여민’의 따뜻한 공감력을 가진 리더다. 밀실에서 혼자 즐기는 독락(獨樂) 대통령보다 광장에서 함께 즐기는 동락(同樂)의 소통령(疏通領)을 원한다. 낮은 곳으로 임하는 소통, 다른 것을 포용하는 통합, 그리고 서민의 삶과 다르지 않은 보통의 3통을 갖춘 ‘여민’ 대통령을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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