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달자의 햇살과 바람] 약속이라는 말과 아버지

입력 2017-04-28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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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 2학년 봄 나는 고향에서 부산의 학교로 전학을 했다. 부산고등학교 바로 앞 초량동이라는 곳에서 하숙을 하고 있었다. 어느 일요일 아침 하숙집으로 아버지가 전화를 하셨다. 친구는 있느냐? 하숙집 밥은 괜찮으냐? 다닐 만하냐? 등의 질문을 하셨는데, 마지막엔 내가 아버지께 질문을 했다. “아버지, 제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면 좋겠습니까?” 아버지는 조금의 여유도 없이 바로 대답을 하셨다. “나 말고, 이 아버지 말고 네 친구들이 달자는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라고 말해 주면 더 바랄 게 없다.” 아버지가 너무 진지하게 말씀하셔서 조금 당혹스럽기도 했지만 그 ‘약속’이라는 말은 내 안으로 들어와 갈비뼈 하나가 되었다.

그렇다면 딸에게 약속을 강조하시는 아버지는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었을까. 절대 그렇지 않았다. 아버지는 젊은 시절 마음의 정처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고 배회(徘徊)하고 많은 사람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떠돌아 다니셨다. 집에 아버지가 안 계신 날이 많았다. 어머니와의 싸움이 잦았고 그때마다 새벽까지 아버지의 신발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아버지의 거짓말은 거의 상습적이었고 누구도 아버지의 방황을 이해할 수 없었으며 사람들의 공격에 준비된 답도 가지고 있지 못했던 것이다.

중학생 때 나는 아버지의 일기장을 본 적이 있다. 그때 아버지는 성공한 남자였다. 내가 보기에도 안 가진 것이 없는 남자였다. 건강, 경제력, 가족, 친구… 게다가 그 시절 나름 사회적 지위도 있었으며 여자도 몇 명 거느렸다.

그러나 아버지의 일기장을 보고 참 많이도 놀라서 이불을 쓰고 떨었던 기억이 있다. 아버지의 일기장 첫 페이지에 “나는 혼자 울었다”라고 쓰여 있었다. 일기장에는 ‘혼자’라는 말이 많았고 ‘외롭다’라는 표현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왜 사람에게는 날개가 없나? 날개가 있다면 멀리멀리 날아가고 싶다”라는 구절은 어린 내 심장을 멈추게 하는 듯했다.

왜? 왜? 아버지는 돈이 많고 뭐도 많고 또 뭐도 많은 사람 아닌가. 돈궤에는 돈이 가득하고 백여 평의 한옥을 짓고 뜰에는 장미가 가득하지 않은가. 나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성장하면서 아버지의 보이지 않았던 마음을 볼 수 있는 것은 ‘글쓰기’라고 생각했다. 문학을 꿈꾸던 아버지는 막중한 현실을 등에 업고 살아야 했지만 현실을 밀치고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고 싶었던 그 순간의 마음을 이해하기엔 시간이 걸렸다.

결국 아버지의 사업은 바닥으로 내려앉았는데 그 이유를 나는 정서적 허기증(情緖的 虛飢症)이라고 생각한다. 배는 부른데 감정적 허기에 시달렸던 것이다.

아버지는 당신이 이루지 못한 것을 딸이 이루어, 내가 어느 날 시인이 되었을 때 너무 지나친 감격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하셨다. “사극(史劇)에는 딸이 왕비가 되면 애비가 큰절을 하던데 내가 네 앞에 큰절을 하고 싶은 심정이다.” 그 말에 결국 난 울고 말았다. 꼴찌 시인을 왕비에 겨누다니, 나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1997년 아버지의 장례식 날, 아버지 시집을 내겠다고 약속했다. 1999년 ‘아버지의 빛’이라는 시집을 내고 나는 ‘약속’을 잘 지키는 시인이라고 속삭였다. 아버지는 나의 스승이다. 그리고 시인의 이름은 얻지 못했지만 나는 아버지를 ‘시인’이라고 불러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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