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인물사전] 98. 김삼의당(金三宜堂)

입력 2017-04-21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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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히 남성과 忠 이야기한 조선의 시인

1786년(정조 10) 봄, 한 시골 마을에 혼례를 마친 신랑·신부가 마주했다. 신랑은 혼인 전에 신부가 글을 읽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래서 신부의 식견이 궁금해 어떤 시를 좋아하냐고 물었다.

그러자 신부가 당나라 시인 두목(杜牧)의 시 ‘군재독작(郡齋獨酌)’에 나오는 “평생 오색 실로 순임금의 의상 깁고 싶어라[平生五色線 願補舜衣裳]”라는 시구를 좋아한다고 대답했다. 임금에 대한 충심을 드러내는 내용이기에 신랑이 놀라 물었다. “그대는 어찌 그 구절을 좋아하시오? 이 시는 남자라면 괜찮지만 여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데 말이오” 하니, 신부가 “임금에 대한 충성과 나라 사랑이 어찌 남자만의 일이겠습니까? 여자 도움 없이 역사가 제대로 이루어진 적이 있나요?” 하고 대답했다.

혼인 첫날 밤 꽤 파격적인 풍경을 연출한 이 여성이 김삼의당(金三宜堂· 1769~1823)이다. 삼의당은 본관이 김해이며 전북 남원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대학자 김일손(金馹孫·1464~1498)의 11대손인 김인혁이다. 18세에 같은 마을에 사는 동갑내기 하립(河砬·1769~1830)과 혼인했다. ‘삼의당’이라는 당호는 남편이 지어준 것이다.

삼의당은 “배우지 않으면 사람다울 수 없다”고 단언했다. 본인에 대해서도 “나 또한 호남의 한 어리석은 지어미로 깊은 규방에서 자라 비록 경전과 역사서를 널리 살피지는 못했지만, 일찍이 한글로 ‘소학’을 읽어 뜻을 이해했으며 문자도 알아 여러 경전을 대략 섭렵했다”고 당당하게 밝혔다.

삼의당은 본인 저서인 ‘삼의당고’의 서문을 직접 썼는데 그 첫머리를 “임금께서 왕위에 오르시어 다스림과 가르침을 크게 밝히시니…”로 시작했다. 조선시대 어느 여성이 책 서문을 쓰면서 ‘임금’을 거론한 적이 있었던가? 또 혼인 후 시가에 처음 들어간 날 남편에게 “부부의 도리가 어찌 한갓 부창부수(夫唱婦隨)만을 이르겠습니까?” 하면서 부부가 각자 도리를 다하자는 당찬 제안을 건넸다.

삼의당 부부 모두 퇴락한 양반의 후예로 가난했다. 남편은 혼인 직후부터 과거 공부에 매진했으나 10년간 낙방을 거듭했다. 1801년 겨울 삼의당 부부는 땅값과 물가가 싼 진안(鎭安)으로 이사했다. 나이 서른셋이었다. 진안에서 두 사람은 “등에 땀을 뚝뚝 떨구면서” 농사지으며 살았다.

삼의당은 한미한 양반가의 일상을 시로 담아냈다. 삼의당에게 시는 “석양 산 너머로 떨어지니/농부 호미 씻어야지/달 지면 다시 나가/씻어둔 호미 다시 잡고 호미질해야지!”라는 시구처럼 척박한 현실을 위로하는 방도였다. 그러면서 “몇 칸 초가집 맑고 깨끗하니/책상에서 책읽기 좋아라”처럼 독서하는 삶을 지켜냈다. 진정한 자존의 길은 바로 자기 안에 있음을 일깨우는 삶이 아닐 수 없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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