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사회] 창업 변호사가 본 법조 2만명 시대…"조직에서 성장한다는 믿음 깨져"

입력 2017-04-13 09:37수정 2017-04-14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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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프미' 이상민, '굿스톤즈' 박건호 변호사

▲11일 서울 서초동의 한 카페에서 박건호(왼쪽) 변호사와 이상민 변호사가 만나 창업자로 살아가는 얘기를 나눴다. 이 변호사는 3년 전 법률 스타트업 ‘헬프미’를 만들었고, 박 변호사는 지난달 축구선수 에이전시 ‘굿스톤즈’를 창업했다.

“힐링이 되는 것 같아요. 토요일에 운동화로 갈아신고 경기를 보고, 이기면 같이 밥 먹고. 창업에 나선 것이 너무 잘한 것 같아요.”

“그런데 결혼하면 그렇게 하지 못할 걸요?”

“그런가요?(웃음)”

11일 서울 서초동의 한 카페. 이상민(36·사법연수원 39기) 변호사가 최근 창업한 박건호(35·40기) 변호사에게 농담을 건넨다. 법무법인 충정 송무팀에서 일하던 박 변호사는 최근 축구선수 에이전시 ‘굿스톤즈’를 창업했다. 이 변호사 역시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촉망받는 기대주였지만, 조직을 벗어나 자기 일을 시작했다. 법률서비스 업체 ‘헬프미’를 3년째 운영하고 있는 이 변호사가 창업 선배다. 변호사 2만 명 시대에 대형 로펌을 나와 창업을 선택한 젊은 변호사들은 법조 시장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두 변호사의 대화를 정리했다.

(이상민 변호사 )

◇계기

이상민: “나도 나온 지 3년이 됐다. 로펌이 시장 흐름에 맞춰 변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매년 신년사 같은 걸 보면 법률시장 개방 앞두고 바뀌어야 한다고들 했지만 막상 일은 달라지는 게 없었다. 로펌이 모든 이에게 천국이라면 나가는 사람이 없겠지.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기는 어려운 건 사실이다.”

박건호: “나같은 경우 큰 불만은 없었다. 송무팀에 있어서 자문팀 사정을 잘 모르기도 했다. 중국에 관심이 많았고 국제적인 업무를 많이 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관련 사건을 접하기가 쉽지 않았다. 로펌에는 파트너와 어쏘 변호사(채용된 변호사)가 있고, 할 수 있는 일이 한정 돼 있다. 로펌에 속해있기 보다는 다양한 일을 하고 싶었다.”

이상민: “사법연수원 34기무렵부터 사람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로펌 한군데에서 열두명 씩 뽑는 시기. 이러다 보니 다 워킹 파트너로 승진할 수 없는 현상이 발생한다. 4~8년차 주니어들이 미래에 대한 걱정을 안할 수 없고, ‘주어진 일을 하면 배당금을 받고 성장한다’는 믿음이 깨졌다.”

박건호: “로펌이 세부적인 팀을 꾸리다보면 팀 전문성은 좋아질 수 있지만, 송무와 자문은 분리하기가 어려운 영역이기도 하다. 업무 배당을 송무와 자문을 묶어보려고 노력은 하는데, 로펌이라는 곳이 워낙 크기 때문에 유연성에는 한계가 있다.”

이상민: “로펌 입장에서도 손실이다. 한 3년 일시켜서 앞가림할 수 있게 만들어놨더니 한창 일하는 시기에 떠나고.”

박건호: “나는 아직도 로펌 구조적 문제점 이런 부분에 대해 말이 잘 안나온다(웃음). 내 사업을 하고 싶은 건 맞는데, 좀 미안한 마음도 있고.”

이상민: “결국 로펌은 물갈이가 시원치 않다. 10년 전 회사에서 고위층 차지하던 분들이 지금도 계속 같은 위치에 계신다. 내가 병장을 달아봐야 윗 병장이 안빠지면 계속 침상 닦아야 하는 거다. 파트너가 됐을 때 기대하는 역할이라는 게 있는데, 실제 업무하고 안맞는 일이 생긴다. 더군다나 변호사 시장은 전관이 계속 들어온다.”

(박건호 변호사 )

◇조언

박건호: “처음에는 대형 로펌에 입사했다는 자부심으로 다닌다. 하지만 그런 건 몇 년 안 간다. 주어진 업무만 하는 사람은 언제든 대체가 가능하다. 변호사라면 대체가 불가능한 사람이 되려고 해야 한다. 이 사람에게 맡기면 어떤 특성이 있다, 특화가 됐다 이런 생각을 가지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상민:“변호사들은 전문성을 키우라고 하면 하나같이 공부로 해결하려고 한다. 회계사 자격증을 따고 부동산 대학원을 가면 어떨까 생각하고. 그것도 방법이지만 결국 케이스(사건)를 해보는 게 가장 좋다. ‘그럼 케이스를 어디서 따오나요’ 라는 문제가 남긴 하지만.”

박건호:“변호사는 다양한 사람을 만날 가능성이 큰 직업이다. 그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는 자기 모습을 알게 된다. 나도 축구장에서 치킨 먹던 사람이 이런 일을 하게 될 줄 몰랐다. 굳이 공부가 아녀도 내가 어떤 일을 잘 할 수 있는지 여러 영역에 있는 사람을 만나보는 과정에서 확인할 수도 있다.”

이상민:“그것도 똑같이 ‘그럼 사람을 어떻게 해야 만나나요’ 이문제가 나오는데 이건 또 우리도 몰라(웃음). 변호사 1년차에 갑자기 나와서 새로운 일을 하는 건 권하지 않는다. 내가 밖에서 일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돈과 시간, 경험이 받쳐줬기 때문이었다. 어떤 분들은 쉽게 말씀하신다. ‘UN에서 경험을 쌓아라’, ‘홍콩에 진출해라’. 홍콩에 고시원방이라도 잡아주시고 말씀하시지(웃음) 이건 죽으란 소리다. 버텨라. 경험을 하고 돈을 끌어모을 수 있는 능력을 키우고. 자기 영역에서 실력을 갖추지 못하면 ‘사짜’밖에 안된다.”

박건호: “동의한다. 로펌 파트너가 돼 기여할 수도, 자기 브랜드를 키워서 창업을 할 수도 있지만 모두 기본이 있는 상태에서 할 수 있는 거다. 뿌리가 약하면 쓰러진다. 변호사가 처음부터 창업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고 하고 싶은 역할을 생각해보는 게 중요하다.”

이상민: “기존 로펌이 고급노동자를 양산하는 시스템이었다면, 지금은 햐향평준화된 지식노동자를 찍어내는 느낌이다. 새내기 변호사들이 기성 법조인에 안좋은 감정을 가질 수 밖에 없다. 학자금 대출 수천만 원을 안고 사회생활 시작하는데, 최저임금도 안주고 부리려는 사람들이 눈에 불을 켜고 있다. 처음부터 기를 빨리고 시작하니 당연히 악감정이 생긴다. 기성 변호사들이 먼저 시어머니 노릇 해놓고 며느리탓 하는 건 말이 안된다고 본다. 최근에도 법률구조공단 월 35만원 임금이 문제가 되지 않았나. 제대로 된 임금은 줬으면 좋겠다.”

◇비전

이상민: “비전? 그냥 변호사를 하지 말고 딴 걸 해라(웃음). 법조 시장 규모가 2조, 3조로 한정돼 있는데, 아모레퍼시픽 1년 매출에도 못미친다. 사람의 인력이 투입된 만큼 대가를 가져오는 정직한 직업이라서 그렇다. 물론 제조업과 서비스업을 단순 비교하기 어려운 면도 있지만. 나같은 경우는 자동화 시스템을 통해 어떻게 하면 일을 덜 할 수 있는지를 고민했다. 기존 법조 시장에서 커버하지 못했던 영역을 커버할 수 있다는 비전을 본다. 회생, 파산 분야에서 법조 브로커들이 많이 활동한다. 그런 시장이 형성되는 이유는 명확하다. 변호사가 직접 품을 팔면 단가를 못 맞추니 그렇다. 로펌 다닐 때 대접받고 살았다. 내가 어디가서 그런 대우를 받았겠나. 하지만 새 일을 시작하고 업계에서 반응이 오고,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서고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하고. 이러면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겠구나 느낀다.”

박건호:“에이전트라는 게 결국 다른 거 말고 경기에만 신경쓸 수 있게 해 주는 거다. 물론 에이전시 회사에 고문변호사가 있는 경우가 있지만 직접 뛰진 않는다. 외국은 에이전트를 대부분 변호사들이 한다. 우리나라에도 분명 그런 흐름이 올 것이고, 그 때 선두주자가 돼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 사각지대에 있는 선수들이 많다. 불공정한 계약을 체결하고, 부상이라도 당하면 일방적으로 임대가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변호사와 회계사가 같이 일한다. 법률자문과 세무 문제를 묶어서 해결해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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