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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인물사전] 92. 심지의(沈志義)
입력 2017-04-12 10:13
바른 행실로 묘지명에 이름 남긴 고려 부인

심지의(沈志義, 1083~1162)는 고려 중기의 귀족 부인이다. 묘지명(墓誌銘)이 있어 그녀의 생애를 알 수 있는데, 우선 눈에 띄는 것이 ‘지의’라는 이름이다. 우리는 흔히 전근대 시대에는 여성이 천시되어 이름조차 없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것은 틀린 생각이다. 여성의 이름이 애초에 없었던 것이 아니라 공식적으로 쓰일 일이 없어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을 뿐이다. 예컨대 ‘삼월이’, ‘오월이’ 등 오히려 노비의 이름은 많이 남아 있다. 노비는 특수한 신분층으로 국가의 관리를 받았기 때문에 여성이라도 노비적(奴婢籍)에 이름이 기록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귀족 여성의 경우는 혼인 전에는 집에서 부르던 이름이 있었겠으나, 혼인 뒤에는 남편의 관직에 따라 주어지는 외명부(外命婦) 명칭을 사용하였다. 즉 심지의도 당시의 공식대로 칭하면 ‘의령군대부인 심씨(宜寧郡大夫人 沈氏)’가 된다. 심씨의 묘지명에는 경애(慶愛)와 정애(貞愛)라는 두 딸의 이름도 기록되어 있으며, 또 딸 경애의 묘지명에는 경애의 딸로 귀강(貴姜)과 순강(順姜)이 보인다. 매우 품위 있고 아름다운 이름들로, 고려시대 귀족들의 문화 수준이 엿보인다.

심지의의 아버지는 추밀원 우승선(樞密院 右承宣)을 지낸 심후(沈侯)이고, 어머니의 가계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지만, 비슷한 집안끼리 혼인을 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역시 양반가문 출신일 것이다. 심지의는 17세에 봉성(파주) 염씨인 염덕방(廉德方)과 혼인하였다. 염덕방은 문반 관리로서, 뒤에 정4품직인 태부소경(太府少卿)까지 승진하였다. 심지의는 4남 2녀를 낳았는데, 아들의 이름은 순약(純若)·행약(行若)·충약(忠若)·신약(信若)이다. 순약은 순주(順州) 수령, 행약은 대학생으로 어머니보다 먼저 죽었다. 충약과 신약은 과거에 급제하여 각각 평주(平州) 수령, 감찰어사였다. 딸 경애와 정애는 각각 최루백(崔婁伯)과 이자득(李自得)에게 시집갔는데, 사위들 역시 모두 관료였다.

심지의는 천성이 총명하고 부지런하며 검소하였으며, 아내와 여자로서의 일에 조금도 소홀함이 없었다 한다. 자녀들이 모두 재주 있고 현숙하다는 칭찬을 들은 것도 어머니의 가르침의 결과였다고 한다.

심지의는 65세에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고, 과부로 80세까지 수를 누렸다. 당시 평균 수명이 높지 않던 때라 아들 둘과 딸 둘이 그녀보다 먼저 죽었다. 그녀가 세상을 떠나자 남편의 묘 곁에 장례 지냈다. 묘지명은 다음과 같이 그녀의 생을 찬미하고 있다.

지어미로서의 행실을 갖추어 닦았고/어머니로서의 도리도 다하였다.//부지런하고 검소하여 집안을 일으켰고/자애와 어짊으로 장수를 누렸네.//돌에 새겨 무덤에 넣었으니/향기로운 이름 사라지지 않으리라.

심지의는 약 900년 전의 여성으로, 당시 사회가 요구하던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던 여성이었다 하겠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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