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인물사전] 82. 도금봉(都琴峰)

입력 2017-03-29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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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요부•귀신役 원조 ‘팜므파탈’ 여배우

도금봉(본명 정옥순)은 1930년 인천에서 무남독녀 외동딸로 태어났다. 1950년대에 ‘대도회’, ‘청춘부대’, ‘창공’ 등의 악극단에서 단원으로 활약했다. 일제강점기 탄생한 악극단은 1960년대 TV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전까지 큰 인기를 끌었다. 이 당시 도금봉은 지일화(池一華)라는 예명으로 활동했다.

영화 데뷔 작품은 1957년 ‘황진이’(조긍하 감독)였다. 여기에서 주연을 맡은 뒤부터 황진이가 살았던 송도의 ‘도(都)’, 황진이의 애장품인 가야금의 ‘금(琴)’, 영화계의 봉우리라는 뜻의 ‘봉(峰)’을 합해 도금봉이라는 예명을 사용했다. 데뷔 후 바쁜 나날을 보내는 도금봉을 취재했던 한 신문은 “통통한 몸집에 비해서 가는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신축성 있는 입술 모습에 애교를 띤 것이 도 양의 매력”이라며 “성격이 쾌활한 반면에 고독을 즐기는 말수 없는 여인”이라고 묘사했다.

그 뒤 ‘그대와 영원히’(유현목 감독, 1958), ‘유관순’(윤봉춘 감독, 1959),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신상옥 감독, 1961) 등 당시 최고의 명감독과 호흡을 맞추며 개성 있는 연기를 펼쳤다. ‘또순이’(박상호 감독, 1963)에서는 생활력이 강한 월남여성 또순이를 연기했는데, 함경도 사투리를 잘 소화했다는 평을 받으며 아시아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한국 공포영화의 고전으로 불리는 ‘목 없는 미녀’(이용민 감독, 1966)와 ‘월하의 공동묘지’(권철휘 감독, 1967)에도 출연했다. 당시 선전포스터에서 “혈관이 얼어붙는 끔찍한 공포”라고 소개할 만큼 공포 장르에 충실했던 영화들이었는데, 여기에서 개성 있는 표정과 연기로 ‘악역’을 잘 소화했다.

‘산불’(김수용 감독, 1967)에서는 한 남자의 애정을 ‘분배’해 나눠 갖자고 주장하는 과부 사월 역을 맡았다. 전쟁으로 남자들이 동원돼 여자들만 살고 있는 지리산 산골마을에 몰래 들어온 북한군 규복을 협박해 욕망을 채우는 연기를 훌륭히 소화했다. 평단에서는 이 영화가 “도덕이나 체면 같은 것을 던져버린 벌거숭이 인간상을 파헤친 작품”으로 “대담한 애욕 묘사가 천하지 않은” 이유는 “원작의 문학성”과 “주증녀, 도금봉의 연기” 때문이라고 호평했다.

이 밖에 ‘세상은 요지경’(염주한 감독, 1966), ‘남자식모’(심우섭 감독, 1968) 등 코미디영화에 출연했다. 1972년 ‘쥐띠부인’으로 제10회 대종상영화제 여우조연상, 1974년 ‘토지’로 제12회 대종상영화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2009년에 사망한 뒤 제10회 여성영화인축제에서 공로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억척여성으로, 귀신으로, 악녀로, 요부로 스크린을 누비던 도금봉은 ‘착하고 예쁘고 정숙한’ 여배우 캐릭터가 넘쳐나는 시대에 새로운 여배우 상(像)을 만들었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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