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론] MWC 2017의 ‘그 다음 요소’가 말하는 것

입력 2017-03-2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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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한국산업기술진흥원장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1997년, 프랑스 뤼크 베송 감독의 ‘제5원소(The Fifth Element)’라는 영화가 있었다.

줄거리는 간략하게 이렇다. 한 노교수가 이집트의 피라미드 벽에 새겨진 기호와 그림을 보고 지구의 미래에 관한 놀라운 비밀을 밝혀낸다. 5000년마다 세상이 바뀌고 악마가 찾아오는데 이때 물, 불, 바람, 흙을 상징하는 네 개의 돌이 제5원소와 결합해 세상을 구한다는 것이다.

이달 초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이동·정보통신 산업 전시회(MWC)가 열렸다. 주제는 ‘Mobile, The Next Element’였다. 즉, ‘모바일 그 다음 요소(원소)’이다. 지난 2016년의 전시회 콘셉트와 비교해 보면 4세대 통신(4G) 기술을 통한 스마트화(化)에서 이번에는 5세대 통신(5G) 기술을 통한 지능화로 바뀌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5G가 ‘그 다음 요소’로 실생활에 결합해 미래의 지능 정보 세상을 만든다는 것이다.

영화의 스토리를 덧입혀 보자면 ‘5G’가 제5원소에 해당한다. 이 원소가 네 가지 돌과 결합해 구원하게 되는 세상이 ‘5G 파라다이스’이다. 실제로 커넥티드 카, 스마트 홈, 스마트 공장과 도시 등 한마디로 5G 기반의 인공지능이 반영된 미래의 삶이 전시회 공간을 가득 채웠다.

필자가 전시회를 보고 느낀 점은 세 가지이다.

첫 번째는 눈을 비비고 다시 봐야 할 중국이다. 그중에서 화웨이의 약진은 괄목상대(刮目相對)할 만하다. 불과 두 달 전에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된 CES에서 본 화웨이의 스마트폰 P9과는 전혀 다른 P10을 들고 나왔다. 화질, 색상, 구동 성능, 사용감 등은 삼성 갤럭시 최신 제품의 96 ~ 99% 수준에 이르렀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난해 통신 네트워크 분야 장비에서 세계 1위인 시스코를 넘어선 이 기업의 신속한 추격은 충격을 넘어 두려움마저 들게 했다.

두 번째는 이러한 추격이 오픈플랫폼을 통한 최신·최고 기술을 신속하게 적용했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화웨이는 독일 라이카와 협력해 고성능 카메라를 탑재하고, 포르쉐와 디자인 분야에서 협업하며, 미국 기업의 도움으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색을 만들어 스마트폰에 입혔다. ZTE는 돌비와 협력해 뛰어난 음향을 시연하는가 하면, 특수 안경 없이 3D 화면을 볼 수 있는 스마트폰 디스플레이를 들고 나왔다.

이로 인해 중국은 물량 공세와 더불어 오픈플랫폼을 통해 최고의 기술을 신속하게 제품에 채택했다. 이제 스마트폰 시장은 평준화되고 있으며, 중국 기업은 우리 기업을 거의 따라잡고 있다. 그간 폐쇄적 기술 개발 관행에서 벗어나 기술 도입은 물론 국제 협력을 통한 글로벌 플랫폼을 활용하는 노력이 우리 기업들에 더욱 절실히 요구된다.

세 번째는 5G 분야에서 한국은 퍼스트 무버라는 것이다. 유럽의 경우 기존 4G 투자 회수에 대한 우려로 5G 투자에 소극적이고, 지난해까지 중국은 4.5G 수준에 머물렀다. 하지만 올해는 중국에 더해 일본까지 올림픽을 통해 5G 기술을 세계에 알리고 우위를 선점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을 하고 있다. 미국의 통신사와 장비 기업들도 5G 기술에 매우 적극적인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세계 최초로 5G 서비스를 시연하려는 KT의 시도가 차질 없이 성공한다면 퍼스트 무버의 자리를 선점할 수 있다.

이번 전시회에서 지난 CES보다 더 많은 월드클래스 300 기업을 만난 것과 우리 대기업이나 중견기업들이 협력업체와 함께 생태계 형태의 부스를 꾸민 것은 무척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앞으로도 우리 중견·중소기업을 세계적인 전시회에서 더 많이 만나 보려면, 우리가 앞서가고 있는 5G에 대한 기반을 잘 구축하는 것은 물론, 해외 최고의 전문가, 그리고 기관들과의 협업 기회를 더욱 많이 가지도록 정책적인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글로벌 중견·중소기업을 육성하는 일과 이들을 선도할 수 있는 창의융합형 인재를 길러내는 일은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해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할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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