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기획 도전하는 여성] ‘융합감성’의 4차 산업혁명… 여성에 더 많은 기회 열릴 수 있어

입력 2017-03-16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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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자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장

▲김명자 과총 회장이 이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찾아가고 싶은 과총’, ‘국민과 함께 하는 과총’, ‘프런티어 개척의 과총’이라는 3대 목표 아래 4차 산업혁명의 시대적 흐름에 부응해 더욱 발전적 과총을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히고 있다. 이동근 기자 foto@

‘처음’, ‘최초’라는 타이틀을 가지기란 쉽지 않다. 여성에겐 더욱이 매정한 수식어다.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보수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한국사회에선 더 그렇다. 그래서 여성들은 남성들의 틈바구니에서 빛을 보기 위해 투지와 근성을 가지고 끊임없이 힘겨루기를 해야 한다. 일과 가정을 늘 저울질하며 자신과의 사투도 벌여야 한다. “24시간이 모자랐다”라고 말하는 김명자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이하 과총) 회장처럼 말이다.

1970년대부터 과학자의 삶을 살아온 김 회장의 삶을 들여다보면 치열하다 못해 열렬했다. 남성 고유의 영역으로 인식되던 과학기술 분야에서 여성 과학자의 삶을 살기란 만만치 않았다. 열정이 지나쳐 독이 될 때도 있었고, 주어진 일이 버거워 도망치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런데도 그가 지금의 커리어를 가질 수 있었던 건 포기를 모르는 열정과 투사 같은 기질 덕이다.

김 회장은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1971년 미국 버지니아대학교에서 물리화학 전공 박사학위를 받으며 본격적으로 과학자의 길을 걸었다. 숙명여대 교수로 재직하다 1999년 김대중 정부 당시 환경부 장관을 지냈다. 무려 3년 8개월간 맡아 헌정 사상 최장수 여성 장관이라는 수식어도 갖게 됐다.

이후 17대 국회의원 시절 국회 국방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또 국내 여성 과학기술인 관련 단체에 참여해 여성 과학기술인을 지원하면서 성장을 도왔고, 과학기술계 목소리를 정치권에 전달하는 데 노력했다. 지난해 2월 과총 정기총회에서 차기 회장으로 선출돼 1년간 치밀하고 탄탄한 로드맵을 준비한 그는 임기가 본격 시작하는 지난 2월부터 4차 산업혁명의 시대적 흐름에 부응해 더욱 발전적인 과총 만들기에 나섰다.

김 회장을 인터뷰하기 위해 서울 강남구 역삼동 과총회관 2층에 들어서니 화사한 꽃을 담은 화분이 줄지어 있다. 김 회장의 취임을 축하하는 메시지도 눈에 띄었다. 파란색 투피스를 입은 김 회장은 온화한 미소로 기자를 맞았다. 그의 강단 있는 목소리와 말투 속엔 특유의 냉철함이 느껴졌다. 인터뷰 중 초등학교 5학년인 손녀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는데, 손녀와 대화를 나눌 땐 영락없이 따뜻하고 친근한 할머니의 모습이었다.

◇“내 생애 마지막 프로젝트…4차 산업혁명 혁신 주도”= 여성 과학기술계의 두꺼운 유리천장이 반세기 만에 깨졌다. 김 회장은 과총 51년 역사상 최초 여성 회장으로 자리하게 됐다. 이번 임무가 ‘내 생애 마지막 프로젝트’라고 여길 만큼 애정과 열정도 남다르다. 김 회장은 “사명감이 크고 어깨가 무겁다”면서 “최근 과학기술계에서도 여성의 활약이 눈에 띄지만, 아직 정규직 비중 20% 미만이다. 그래서인지 과총 회장으로 여성이 되는 것을 낯설게 여기는 분들이 있는 걸 보고 ‘슈퍼 우먼’ 역할을 해야겠구나 생각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지난 1년간 전국을 돌며 600여 명의 과학기술계 인사들을 만나 의견을 듣고 문제인식을 공유했으며 어떻게 풀어 나갈 것인지 함께 고민했다. 그는 “과학기술인의 자부심과 열정을 결집해 지식 프런티어 창출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혁신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과제”라면서 “회원이 주인이 되는 과총을 만들어 과총다운 콘텐츠를 생산하고, 젠더·세대 간의 네트워크 사업으로 인재 활용의 파이프라인이 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이어 4차 산업혁명은 모든 기술의 융합인데, 우리는 융합에 약하고 ‘빨리빨리’에 강하다고 지적하면서 약점을 보완하고 강점을 살려 전문성을 갖추고, 사회, 경제, 문화, 윤리, 가치관에 이르기까지 과학기술의 스펙트럼을 넓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만의 리더십? 합리성+감성… 여성인력 활용에 주력”= 김 회장이 생각하는 리더십은 무엇일까. 그가 추구하는 경영의 핵심 가치는 ‘거버넌스(governance)’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협치’라는 의미다. 정부와 시민사회가 공공의 목표를 향해 함께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다. 그가 줄곧 내세웠던 것도 ‘합리성과 감성의 거버넌스 리더십’이다. 그래서 김 회장은 소통을 중요시한다.

이번에도 ‘소통·융합·신뢰’를 키워드로 ‘찾아가고 싶은 과총’, ‘국민과 함께하는 과총’, ‘프런티어 개척의 과총’이라는 3대 목표를 내세웠다. 김 회장은 “전문가로서의 실력은 기본이고 적극적인 조직 참여 등 사회성이 뒷받침된다면 더 좋은 리더가 될 수 있다고 본다”면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여성에겐 기회가 열린다고 본다. 미래 일자리와 산업구조에서는 예리한 감성과 융합적 성향이 중요한데, 이런 덕목에서 여성이 강점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같은 맥락에서 김 회장은 이 시대가 요구하는 여성 과학자들이 더 많이 배출되고 훌륭한 리더로 성장하길 희망한다. 이를 위해 여성 과학기술계에 존재하는 유리천장과 ‘새는 파이프라인’ 문제 해결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말한다.

과학기술 분야는 훈련과 교육에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공백이 생기면 경쟁력을 회복하기 어렵기 때문에 과학기술계 여성 정규직 비중이 낮다는 게 김 회장의 분석이다. 그는 “여성 과학자가 겪는 관행적, 사회문화적, 심리적 장벽을 남성 과학자는 이해하지 못한다. 육아, 출산 등으로 경력 단절이 되는데, 왕성하게 연구활동에 전념해야 할 나이에 그런 고비를 맞게 된다”면서 “국가 차원에서 여성 과학기술 인력의 활용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조치가 중요하다. 개인으로서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므로 출산 절벽 현상으로 번지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모성 보호와 고용 촉진 등 사회적 맞춤형 대책이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화려한 이력 뒤에 세 아이 향한 마음의 빚 남아”= 김 회장은 아이 셋을 키워낸 워킹맘이다. 그래서 여성 과학기술인들의 힘겨운 삶을 누구보다 잘 안다. 1세대 여성 과학자로서 커리어에 대한 열정과 성취감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슈퍼우먼의 능력과 투지가 필수라고 말한다. 그는 미국 유학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후 제대로 된 연구를 할 수 없었다. 아이가 셋이 됐고, 유교 전통의 며느리와 어머니 역할이 너무 버거웠다.

김 회장은 “아이 셋도 모두 방학 동안에 낳았다. 아이 셋에, 시부모 병 구환에, 집과 학교를 오가면서 하루 24시간이 모자를 정도로 정신없이 살았다”면서 “가정과 전문직의 양립에서 한계를 느끼면서 심리적 갈등은 날로 심해졌고, 내 자아를 살릴 수 있는 돌파구가 필요했다.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 된다는 강박관념에 쫓겨 뭔가를 찾으려고만 했다”고 털어놨다.

김 회장이 찾은 길은 과학사와 관련된 저술과 번역활동이었다. 과학 이야기를 담은 책이 부족하다는 게 자신을 자극시켰단다. 반면 엄마로서 아이를 향한 마음의 빚은 커져만 갔다. 김 회장은 “당시 번역하던 책에는 아이가 자기랑 놀자면서 끄적거린 연필 자국이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것도 마음의 빚으로 쌓였다”면서 “어느 때는 ‘다 자기 팔자대로 사는 거지’ 하면서 넘어가기도 하고, 어느 때는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총량의 법칙으로 합리화했다”고 말했다.

◇“경쟁 없는 자유로운 삶…스페셜보단 제너럴리스트 꿈꿔”= 김 회장은 다양한 경험을 추구한다. 어떤 한 분야의 탁월함보다 폭넓은 지식과 안목을 갖기 원했다. 그래서 자신을 제너럴리스트라고 말한다.

김 회장은 “나는 과학자로서 실험 또는 이론 연구의 스페셜리스트라기보다는 과학 외의 분야에 대한 지적 호기심과 소양이 있었던 제너럴리스트”라면서 “이 나이가 되고 보니 경쟁해서 이겨야 할 필요가 없어 자유롭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 싶다. 과총 회장의 일이 비상임으로 하기에는 너무 무겁다는 것을 잘 알지만, 제가 잘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누린 것을 사회에 환원하는 삶에서 즐거움을 찾기 원한다. 또 일을 열심히 하다 가끔 TV 드라마도 보면서 휴식을 취하고, 손녀들과 즐거운 시간을 갖는 소소한 행복을 느끼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미션을 성공적으로 해낼 것이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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