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원의 세상풍경] 문화계의 블랙리스트와 전업작가

입력 2017-01-20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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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최근 예술계의 블랙리스트 때문에 참 여러 말들이 나오지요. 한심하기도 하고요. 그런 가운데 엊그제 또 한 권의 책을 냈습니다. 후배가 어떻게 끊임없이 쓰느냐는 말에 내가 전업작가인 점을 얘기했어요. 그러자 후배는 자신도 지금 다니는 일자리 걷어치우고 전업작가로 나서 볼까 한다는 말을 했어요. 그 말을 듣고 전업작가가 되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말했습니다. 꼭 그 후배뿐 아니라 전업의 위험성은 내가 문단의 젊은 후배들에게 늘 강조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젊은 시절, 그리고 문학판에 막 발을 들여놓을 때 다른 생계수단 없이 오직 문학만으로 한 생을 살겠다는 ‘배수진’도 진정 존경할 만한 태도이지요. 그러나 한 해 한 해 나이 들어가면서 작가도 가정을 갖게 되고, 가족도 부양해야 하고, 안정적인 거처도 필요하게 되고, 커가는 아이들 학비도 대야 하고, 이렇게 삶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생계에 쫓기게 되면 제일 먼저 허물어지는 것이 처음 마음 안에 단단히 세웠던 문학적 배수진입니다.

처음엔 자기 문학의 순도를 위해 세운 배수진이 어쩔 수 없이 삶에 치이게 되면 글을 쓰는 일 역시 생계의 배수진으로 변해가게 되지 않겠는지요. 저는 젊은 후배들에게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문학세계와 작품의 순도를 위해서도 젊은 시절 ‘생계를 위한 글쓰기’ 내지는 ‘생계적 매문’을 막아줄 건실한 벌이(일테면 직장 같은 것이죠)가 있는 게 좋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요즘은 건실한 밥벌이가 될 직장을 갖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얼핏 보면 작가가 다른 생계적 수단을 갖는 게 자기 글에 최선을 다할 수 없는 여건처럼 여겨지기도 하고, 또 그렇게들 쉽게 말하는데, 그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은 오로지 글만 쓰는 전업작가 생활을 하고 있는 나도 젊은 시절 10년간 직장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그 시절이 저에겐 오히려 작가로서 더 치열했던 시절이 아니었나 여겨질 때가 많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며 매년 4~5편의 중단편을 발표하고, 또 거의 매년 장편소설을 써냈습니다. 지금보다 훨씬 많은 양의 작품을 그 시절에 써냈던 거지요. 그때는 원고 마감시간보다, 다른 작가들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제 작업시간에 쫓겨 원고를 썼고(그러다 보니 퇴근시간이 되면 바로 집에 들어와 원고 쓰고요), 지금은 훨씬 여유로운 시간을 가지고 원고를 쓰는 차이 같습니다.

직장과 전업 둘 다 해본 제 경험으로는 전업이다, 아니다가 작품을 쓰는 작가의 결기를 더 강하게 하는 것도, 작품의 순도를 더 높게 하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젊은 작가들에게 문학을 방해하거나 결기를 흩뜨리는 ‘비겁한 도피처로서의 다른 벌이’가 아니라 오래도록 이 길을 가야 할 언덕으로서의 ‘다른 생계수단’을 갖기를 권하곤 합니다. 문학은 2~3년 하다가 끝내는 것도 아니고, 그야말로 관 뚜겅 닫힐 때까지 장구한 세월 우리가 싸워야 할 일이니까요.

물론 작가마다 마음 자세가 다 다르기는 하지요. 바깥에 떠도는 블랙리스트 얘기도 그렇고, 글을 쓰는 일이, 또 글을 쓰는 여건이 점점 어려워지는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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