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철규의 적시타] 건설현장 묻지마 악성민원에 대처하는 법

입력 2015-11-20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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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철규 사회경제부 차장

며칠 전 살고 있는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입주자대표 명의의 안내 공고가 붙어 있었다. 우리 단지 맞은편에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아파트 공사가 한창인데, 민원이 있으면 시청 관련 부서와 LH에 연락하라며 친절하게 전화번호까지 적어놓은 것이다.

이미 옆 단지에는 꼭대기 층에서 맨 아래 층까지 대형 현수막이 걸렸다. “주민 건강 위협하는 LH는 각성하라”는 내용이 붉은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LH 공사장에서 뿜어내는 먼지와 소음을 지적하는 듯했다.

건설 현장 근처의 초등학교에 다니는 큰아이한테 “공부하는 데 방해가 되냐”고 물어봤더니 아이의 대답은 달랐다. 간혹 소리가 나기는 하지만 수업에는 지장이 없고, 공기도 평소와 다르지 않다고 했다.

아내도 잘 모르겠다고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얘기를 듣고 있던 처제가 답답하다는 듯이 한마디 했다. “시끌벅적하게 민원을 제기해야 콩고물이 떨어지는 법”이라며 “공사 현장 주변에서는 항상 악성 민원이 들끓는다”고 했다. 공무원인 처제는 기자가 세상 돌아가는 이치도 모르냐면서 혀를 찼다.

가족들의 얘기를 종합해 보면 공사 현장 주변의 아파트 주민들은 크게 불편하거나 방해가 되지 않는데도 ‘민원’을 제기하는 게 된다. 물론 그중에는 갓난아이가 잠을 자지 못한다거나, 폐질환이 있는 노인들의 걱정이 없진 않았다.

하지만 공동주택 신규 건설 현장의 빈번한 민원은 대가를 바라는 경우가 많다는 게 대다수 사람들의 공통된 이야기다. 공기업인 LH일수록 정도가 심하다는 말까지 나온다. 민원의 대가로 어떤 아파트는 단체로 관광을 다녀왔다거나, 페인트칠을 새로 하고 단지 내 놀이터를 수리했다는 진원지가 불분명한 소문까지 떠돈다.

건설업계에서는 통과의례 같은 이런 민원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고 한다. 재개발과 재건축, 철거공사, 아파트 신규 건설 현장일수록 악성 민원이 빗발친다는 것이다. 문제는 민원 때문에 공사 기간이 늘어나고 비용이 증가한다는 데 있다. 민원은 주로 지자체에 제기된다. 해당 업무를 맡고 있는 공무원들의 몫으로 돌아가지만 이들은 일손 부족 등을 이유로 건설업체에 모든 책임을 돌리는 경우가 많다.

공사 때문에 생활에 불편을 겪거나 생계에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한다면 이에 대한 개선은 필요하다. 하지만 민원이 집단적이거나 악성일수록 피해는 고스란히 입주자들에게 돌아간다. 공사 기간이 길어질수록 비용 부담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건설사들도 막무가내식 민원 때문에 골치다. 무리한 요구를 해도 공기가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무조건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악성 민원을 근절하기 위해선 지자체만으론 부족하다. 민원인의 불만 내용이 합당한 근거가 있는지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독립적인 조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공사 현장에서 불법적 행위가 일어나기도 하지만 민원인이 법을 지키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양측의 목소리를 균형감 있게 조율할 수 있는 정부의 역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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