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보마이라이프]73세의 슈퍼바이커 윤병천, 멋대로 사는 남자

입력 2015-07-20 11:16수정 2015-07-23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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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이 익었다. 모델도 아니고 디자이너도 아니다. 그는 네이비 슈트에 데님바지를 입고 있었다.

평범한 스타일이지만,요즘 찾고 있는 패셔니스타다. 백발 중년 남성의 강렬한 카리스마의 아우라는 그만의 은근한 멋이 났다. 품격과 여유의 노련미가 묻어나 로맨스 그레이를 연상시킨다. 윤병천 ㈜뉴라이트전자 회장을 보면 나이를 거스르는 듯한 젊음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얼핏 50대로까지 보이는 윤 회장은 42년생으로 올해 73세다. 그런데 그의 취미는 그 나이에서는 쉬이 상상할 수 없는, 바이크를 타는 것이다. 그것도 보통의 바이크가 아니라 시속 317㎞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 이탈리아 MV 아구스타의 ‘슈퍼바이크’ F4CC가 그의 애마다. 전 세계에 단 100대만 있는 한정 수량 모델인 이 바이크로 윤 회장은 하루에 400㎞의 거리를 질주한다. 40여 년간 라이딩을 하는 이유와 그가 삶을 바라보는 묵직한 ‘촉’과 ‘각’을 재조명해본다.

충청남도 서산에서 맨주먹만 갖고 올라온 열여덟 살 소년에게 처음 보는 서울은 막막함 그 자체였으리라. 더구나 그가 서울에 도착한 1960년은 4·19혁명이 일어난 해였기에, 세상에 어두운 소년이라 해도 무언가 심상찮은 공기가 돌고 있다는 걸 느꼈으리라.

그러나 소년은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몰랐지만, 소년에게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배짱과 낯선 세상에 자신을 던질 용기가 있었다. 하늘도 그런 의지에 감명한 것일까. 인생을 한판 뜨겁게 살아보려는 소년에게는 천운까지도 뒤따랐다. 운명처럼 삶을 살았다. 지금은 국내 최고의 조명가로 불리는 윤병천 뉴라이트전자 회장이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긴 시간 같은 사업을 이끌어 온 저력

윤 회장은 서울에 먼저 올라와서 보광동에 자리를 잡고 자취하던 형과 함께 살게 됐다. 그러나 밥값이나 축내면서 세월을 날려버릴 생각이 없었던 윤 회장은 ‘운 좋게도’ 국일방전관 연구소의 장병갑 박사가 이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의 삶 자체가 될 조명과의 첫 만남이었다.

당시는 조명 기술이 겨우 백열등에서 형광등으로 넘어가던 열악한 시절이었다. 그런 데다 조명은 어엿한 기술 분야가 아니라 전기기사의 부업쯤으로 여겨졌다. 조명 산업은 흡사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의 윤 회장처럼 백지와도 같은 상태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윤 회장은 더욱 힘차게 자신을 던질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장 박사의 연구소에 조수로 들어가게 된 그는 하나부터 열까지 새롭게 배우고 활용하며 자연스럽게 조명가로서의 자신을 발전시켰다.

시간이 흘러 전구를 개발하는 기술까지 획득하게 된 윤 회장은 1972년에 독립하면서 뉴라이트 조명 연구소를 개설했다. 그리고 연구소는 곧 뉴라이트전자가 되어 조명의 전반적인 기획과 설계를 전문적으로 맡는, 이 땅에 없었던 회사로 거듭났다.

그 이후로 강산이 네 번 넘게 바뀌었다. 현재, 이화여대 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등 최고의 조명을 필요로 하는 국내 유수의 건축물들 중 윤 회장의 손길이 닿지 않은 건 드물다. 맨주먹으로 시작된 소년의 꿈은 국내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1985년에는 미국에 지사가 설립되었다. 그리고 플로스/안타레스(FLOS/ANTARES), 에르코(ERCO), 루체플랜(LUCEPLAN) 등 해외 유명 조명 회사들과 국제적인 협력관계를 맺음으로써 한국의 대표 조명회사로서 자리매김했다. 그야말로 의지가 일궈낸 승리의 인생이라고 정의할 수 있지 않을까.

스피드의 짜릿함과 몰입된 각도

▲사진= 최유진 기자 strongman55@etoday.co.kr (사진=최유진 기자strongman55@etoday.co.kr)

윤 회장을 설명하는 또 다른 키워드는 나이를 훌쩍 뛰어넘는 대단한 바이크 마니아이자 스피드 마니아라는 것이다. 전 세계에서 단 백 명에만 허락된 슈퍼바이크 F4CC에 몸을 싣고 시속 200㎞로 400㎞ 거리를 주파하는 속도의 세계. 그곳이 바로 윤 회장이 즐기는 세계다.

“사람들이 왜 달리냐고 묻기도 하죠. 그냥 달리는 거예요. 한국의 도로는 세계에서 최고입니다. 일본과 유럽에서도 바이크를 타보고 내린 결론이에요. 우리가 속초를 간다고 하면 그냥 속초를 다녀오는 게 아니죠. 느랏재, 가락재, 한계령 등등 산을 타게 됩니다. 그래서 직선 도로를 신나게 달릴 때도 있고 어느 순간 무릎이 땅에 닿을 정도로 커브를 돌게 되기도 하죠. 한국의 도로에는 그야말로 타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윤 회장은 젊었을 때의 라이딩과 나이가 든 지금의 라이딩이 완전히 다르다고 말했다. 젊었을 시절의 바이크는 그저 교통수단일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라이딩은 윤 회장의 삶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하나의 목적의식이 됐다. 슈퍼바이크에 몸을 싣고 시속 200㎞로 도로를 질주한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는 행위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윤 회장은 같이 라이딩을 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의 동지들 중에는 유인촌 전 문화부 장관과 연예계에서 공인된 라이더로 불리는 배우 김상중 씨가 있다.

“함께 라이딩을 하면 같이 타는 사람은 대개 다섯 사람을 넘지 않습니다. 200㎞ 속도면 젊은 사람들도 굉장히 힘들어요. 더구나 초보자들은 힘을 줘야 할 곳과 타이밍을 잘 모릅니다. 그래서 다들 제대로 된 실력을 가진 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에 소수정예가 될 수밖에 없어요. 안전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삶의 아이러니를 묻다

스피드 마니아인 윤 회장을 보면서 가족들은 걱정하지 않을까. 그 질문에 윤 회장은 7년여 전의 아픈 기억을 꺼냈다.

“라이딩하는 친구가 땅끝마을에서 행사가 있다며 바이크를 타고 함께 다녀오자고 한 날이었어요. 가서 행사를 잘 마치고 함께 돌아오는 길에 양평 휴게소를 좀 지나서 앞서가는 친구가 서더라고요.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예술의전당에서 행사가 있는데 조금 늦어서 연락을 해야 할 거 같다고 합디다. 그래서 나도 섰는데 그때 마침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윤 회장의 부인은 남편에게 안부를 묻고, 장충동 족발집에 족발을 준비해둔 게 있으니, 대학로에 있는 집으로 들어오기 전에 들러서 족발을 가져와 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이 부인과의 마지막 대화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족발을 찾아서 집으로 들어가고 있는데 큰아들로부터 전화가 왔어요. ‘아버님 놀라지 마세요, 지금 서울대학병원 응급실입니다’라고 하더라고요. 무슨 일이냐, 물었더니 아내가 갑자기 쓰러졌다는 겁니다.”

천사 같았던 아내의 기억

부인이 쓰러진 이유는 급성 뇌졸중이었다. 수술을 한다고 해도 식물인간이 될 수밖에 없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결국 아내는 다음 날 세상을 떠났다.

윤 회장이 부인을 처음 만난 것은 윤 회장이 19세, 부인이 17세 때였다.

“처음 봤을 때, 조그마한 소녀였지요. 사람이 아니라 천사 같았어요. 계속 꼬드기는데 넘어오지 않더라고요. 한 2년을 그렇게 보냈죠. 그때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때가 많았습니다. 아내가 바깥에 서 있는 거 같았거든요. 스물네 살쯤 됐을 때 장모를 만나게 됐어요. 그런데 그분들이 처음에 날 쳐다보더니 고개를 돌리더라고요. 그때 아내는 미국에 유학을 간 의사와 벌써 정혼한 상태였던 겁니다. 미국에서 온 그 남자와 만나는 자리로 날 불렀던 거예요. 물론 나중에는 장모님이 나를 굉장히 좋아하게 됐지만 말이죠.”

천사처럼 보였던 아내와의 오랜 인연, 힘들었던 결혼까지의 과정, 그리고 충격적인 헤어짐까지. 위험을 안고 이뤄지는 라이딩이 윤 회장이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어떤 철학을 지탱시켜주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 건 이 순간이었다.

신나게 일하고 열심히 쉬는 것

‘나이를 먹으니 이게 참 좋구나’ 싶은 게 있는지 물어봤다.

“나이를 먹으니 좋은 게 없던데. 없어(웃음). 다만 그동안 쌓인 인연들이 고마울 때가 있습니다.”

여전히 젊다. 칠순을 넘어서도 느껴지는 윤 회장만의 젊음을 만들어낸 근원적인 에너지는 무엇일까?

“사람들은 돈이나 시간이 없어서 놀지 못한다고 하지만 지나고 보니 용기가 없었던 것 같아요. 매사에 적극적으로 몰입하는 게 그 에너지를 만드는 방법인 거지요. 신나게 일했으면 또 열심히 놀아야죠.”

홀로 있기에 지울 수 없는 쓸쓸함

▲ ▼ 윤병천 회장은 스스로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아 낸다. 우회하지도 않고 주저하지도 않는 그는 자신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에 남들보다 뜨겁게 사는 이유일는지도.

윤 회장의 뉴라이트전자는 조명 회사다. 조명의 근본은 발광 램프에서 형태가 만들어진다. 그 램프를 작동하게 만들어주는 게 조명 기구다. 그래서 조명은 기획 디자이너와 기구 디자이너가 있다. 과거에 우리나라에서는 그 두 가지 영역을 전기 기사가 다 도맡아 했었다. 그래서 조명 회사의 개념은 산업 안에 전혀 없는, 실로 불모지와 다름없었다. 그런 맨바닥에서 윤 회장은 독자적인 기업을 이뤄냈고 후배들의 존경을 받는 위치에 섰다. 회사에 대해 설명하는 윤 회장의 목소리에서 진짜 조명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묻어났다. 그러나 그에게도 인간적인 고민은 있었다.

“요즘은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면 문득 쓸쓸한 마음이 들 때가 있어요. 2남 1녀인 아이들은 다 컸고…. 누가 옆에 있어야 하나, 그런 생각도 들 때가 있죠. 이게 행복한 건가, 이렇게 살다가 어떻게 되는 걸까 싶을 때가 있고요.”

손녀 생일잔치를 하고 돌아온 윤 회장은 다시금 아내를 향해 품은 아쉬움을 마침내 꺼냈다.

“양평에 집을 지어서 대학로에 있는 집과 왔다 갔다 하면서 살면 되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양평에 있는 집 열쇠를 아내에게 끝내 보여주지 못했어요. 그게 불현듯 생각나더라고요.”

알프스를 넘어 8월에 터키 라이딩 채비 서둘러

연예·정·재계 마당발인 윤 회장은 ‘독수리 5형제’ 라이딩 친구들과 지난해 10월 9박 10일의 알프스 투어를 다녀왔다. 물론 바이크를 타기 위해서였다.

“독일의 뮌헨에 도착해서 그곳에서 오스트리아로 갔고, 거기서 알프스로 향했죠. 알프스를 넘어서 이탈리아 북부의 마을에서 여정을 풀었습니다. 알프스는 가장 높은 데가 3200m쯤 돼요. 올라가기 전에는 날씨가 좋은데 막상 올라가면 눈이 내릴 때도 있고. 눈이 많이 오면 못 올라가게 합니다. 그렇게 여러 변수가 있는 곳이기도 하기에 사전에 도로에 대해 정보를 얻어서 저에게 가장 맞는 바이크를 준비했죠.”

윤 회장은 알프스의 매력으로 깨끗함과 아름다움을 꼽았다.

“알프스는 경사가 심합니다. 그리고 목축을 많이 하죠. 해발 1000m쯤에 도착하니 마을이 있더군요. 심지어 2000m쯤에 도착했을 때도 또 마을이 있었어요. 그런데 소들이 그리 많은데 사람은 없더군요. 축사 같은 집만 하나 덜렁 있어서 밤에는 소가 그 안에 들어가 잔다더라고요. 그리고 사람들의 순박함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돌아올 때 윤 회장은 이탈리아 북부의 마을에서 뮌헨까지 8시 30분에 출발해서 단 세 시간 만인 11시 30분에 도착했다고 한다. 열흘 동안 4000㎞를 달린 굉장한 여행이었다. 그러나 윤 회장의 의지는 이 알프스 라이딩에서 그칠 것 같지 않다.

“오는 8월에는 터키에 갈 예정입니다. 알프스 멤버 그대로 갈 준비를 하고 있어요. 요즘은 터키의 도로 사정을 확인하면서 그곳에 맞는 바이크를 현지에서 렌트하기 위해 고르고 있습니다.”

윤 회장은 라이딩을 즐기려면 무엇보다도 건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말을 본인 스스로도 지키고 있는 윤 회장은 근력 운동과 유산소 운동을 매일 꾸준하게 지속하고 있다. 극한의 속도 속에서 정신을 유지하려면 체력이 필요한 건 당연하다.

“제가 라이딩을 가르친 후배 한 명이 65세까지 타면 행복하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대요. 그런데 지금의 날 보니 용기가 생긴다고 합니다.(웃음) 내 목표요? 못 탈 때까지 타야지요.”(웃음)

윤 회장은 이탈리아 모터사이클과 영국 스포츠카 로터스를 수입해 판매하는 유통회사도 설립해 유통회사는 큰아들에게, 조명회사는 차남에게 넘겨줬다.

가업승계에도 합리적인 그는 가장 잘 알고, 잘할 수 있고, 목표로 하는 분야에만 역량을 키워 왔기에 가능했다.

신나게 일하고, 열심히 쉬는 것, 다가오는 파도를 피하지 말고 즐겁게 타는 것. 윤 회장의 인생 3막은 쉽고 간결하다.

조명가, 슈퍼바이크에서 이제 새로운 페이지를 써내려갈 그의 인생 3막이 더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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