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1회용 비닐봉지 사용 금지 첫날…"속 비닐 몰래 챙겨가세요" 꼼수도 난무
입력 2019-04-02 14:17

▲1일 오후 송파구 내 한 대형마트는 이날 할인 행사로 많은 사람이 몰렸다. 손님 중에는 마트 내에 비치된 속 비닐을 몰래 가방에 담아가거나, 채소를 담는 속 비닐을 세 장씩 겹쳐 사용하는 등 꼼수를 부리는 사람도 제법 눈에 띄었다. (나경연 기자 contest@)

“속 비닐 몰래 두 장 챙겨서, 밖에서 담아 가세요.”

전국 대형마트와 백화점에서 일회용 비닐봉지 사용이 금지된 첫날, 현장에서는 여전히 일회용 속 비닐 사용이 빈번하게 눈에 띄었다.

1일 오후 서울 송파구에 있는 한 대형마트는 장을 보러 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이날은 해당 마트 창립 21주년 기념 할인 이벤트가 있는 날. 평소보다 많은 고객이 몰리면서 매장은 혼잡스러웠다.

▲마트 내 비치된 롤 비닐 앞에는 ‘환경부 1회용품 사용규제에 따른 비닐봉지 제공안내’가 붙어 있었지만, 해당 안내문을 자세히 읽는 손님은 거의 없었다. (나경연 기자 contest@)

일회용 비닐봉지 사용 금지 뉴스를 접하지 못한 고객들은 계산대에 가서야 비닐을 매장 밖으로 가져갈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평소처럼 요구르트 한 묶음을 매장 내 비치된 속 비닐에 담았던 심 모(32) 씨는 계산대 직원에게 비닐을 사용할 수 없는 제품이라며 제지를 당했다.

심 씨는 “매장 내에 과일이나 채소 코너 앞에 롤 비닐이 버젓이 비치돼 있으니,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계속 롤 비닐을 써도 되는 줄 알고 사용할 것”이라며 “비닐봉지를 못쓰게 하려면 아예 매장 내에 롤 비닐을 치워버려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시험 삼아 기자가 직접 바나나를 속 비닐에 담아 구매해봤다. 계산대에 있던 직원들은 바나나가 속 비닐이 사용 가능한 상품인지 계속 헷갈려 하는 모습을 보였다. 기자는 속 비닐에 담은 바나나를 계산하고 아무 제지 없이 밖으로 가져갈 수 있었다. (나경연 기자 contest@)

일회용 비닐봉지 사용이 금지됐지만, 마트가 롤 비닐, 일명 속 비닐을 치우지 않는 이유는 환경부가 명시한 예외 사항 때문이다. 올해 1월부터 시행된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에 따르면 생선이나 고기, 두부, 아이스크림 등 액체가 샐 수 있는 제품이나 흙이 묻은 채소, 물기가 있는 채소는 비닐 사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마트 직원들이 액체가 샐 수 있는 제품 기준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해 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기자가 직접 바나나를 속 비닐에 담아 계산대로 가져가자, 계산하던 직원은 옆 직원에게 “바나나는 속 비닐에 담아도 되는 건가?”라고 물었고, 옆에 있던 직원도 “과일이니까 되지 않을까?”라며 대답을 흐렸다.

▲계산대 직원들은 손님에게 일회용 비닐봉지 사용금지에 대해 일일이 설명했고, 설명이 길어지면서 계산 또한 지체되면서 계산 줄이 계속 길어졌다. (나경연 기자 contest@)

이후 기자 뒤로 이어진 손님들은 채소, 과일, 유제품 등 대부분 제품을 각각 다른 속 비닐에 담아왔고, 계산대 직원들은 비닐을 일일이 골라내느라 계산이 지연됐다. 계산 도중 직원들은 특정 과일이나 채소에 속 비닐을 사용해도 되는지 계속 헷갈려 하는 모습이었다.

일부 판매 직원은 손님에게 속 비닐을 사용할 수 있는 꼼수를 알려주기도 했다. 한 채소 코너 직원은 단골로 보이는 손님에게 “계산대에서 종이봉투 구매하면 돈 드니까 속 비닐 두 장을 가방에 넣어 나가서, 물건들을 속 비닐로 옮겨 담으면 된다”라고 팁을 전했다.

▲오렌지 판매대 앞에는 오렌지를 담을 수 있는 오렌지 전용 봉투가 마련돼 있었다. 오렌지를 구매하지 않아도 가져갈 수 있게 놓여 있어, 종이봉투를 따로 구매하지 않고 해당 봉투를 이용해 물건을 담는 손님도 있었다. (나경연 기자 contest@)

오렌지 판매대 앞에는 아예 오렌지 전용 일회용 봉투가 비치돼 있었다. 오렌지를 구매하지 않은 고객들도 해당 봉투를 여러 장 가져가, 다른 물건을 담는 용도로 사용했다. 오렌지를 구경하던 장 모(62) 씨는 “일회용 봉투를 사용 못 하게 하려면, 이런 봉투들도 다 못 쓰게 해야지 아예 대놓고 비치해두니 누가 안 가져가겠냐”라고 말했다.

▲근처 백화점 식품 매장은 마트보다 일회용 비닐봉지 규제를 엄격히 지키는 모습이었다. 모든 판매대 옆에는 손잡이 없는 종이봉투가 마련돼 있었고, 물기가 있는 채소에만 속 비닐을 사용했다. (나경연 기자 contest@)

마트 근처에 있는 백화점 식품관은 마트보다 일회용 비닐봉지 규제가 엄격했다. 이곳에서도 오렌지를 판매하고 있었지만, 속 비닐은 아예 비치돼 있지 않았고, 판매대에는 손잡이 없는 종이봉투만 놓여있었다.

기자가 종이봉투에 오렌지를 담으니 종이봉투 밑 부분이 살짝 찢어졌다. 판매대 직원에게 종이봉투 말고 다른 것은 없는지 묻자, 직원은 “일회용 비닐봉지 사용이 금지돼 어쩔 수 없으니, 종이봉투를 하나 더 담아서 드리겠다”면서 “계산대에서 손잡이가 있는 친환경 종이쇼핑백을 추가로 구매해 가져가면 뜯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자는 이날 마트에서 바나나를, 백화점 식품마트에서 오렌지와 청경채를 구매했다. 마트에서는 바나나를 속 비닐에 담아올 수 있었고, 백화점 식품마트에서는 친환경 종이쇼핑백을 100원에 구매했다. (나경연 기자 contest@)

채소 코너 냉장실에 놓여 있는 청경채를 구매하려고 하자, 판매 직원은 냉장 판매대 앞에 놓인 롤 비닐을 뜯어 청경채를 담아줬다. 직원은 일회용 비닐봉지 사용 규제를 의식하고 있었는지 “이렇게 물기가 있는 채소를 속 비닐을 사용해도 된다”라고 말했다.

백화점 식품관 곳곳에는 ‘일회용 비닐봉지 사용 제한 안내’ 공지가 붙어 있었고, 판매대에 올려둔 상품들은 모두 종이봉투에 담겨 있었다. 손님들은 자연스럽게 종이봉투에 든 과일이나 감자, 고구마 등을 그대로 계산대로 들고 갔다.

계산대에서 일하는 직원 김 모(54) 씨는 “과일을 담을 때 종이봉투 말고 비닐을 달라고 요구하는 손님도 있었지만, 일회용 비닐봉지 사용 규제에 대해 설명하니 대부분 손님은 이해하는 모습이었다”면서 “최근에는 장바구니를 가지고 다니는 손님도 많아, 설명에 어려움은 없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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