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세예보] 웹툰 '비질란테' 김규삼 작가 "해볼 만한 작품이라 도전…창작은 최고의 쾌락"
입력 2019-03-22 06:00

우리는 왜 인싸가 아닐까? 남들은 다 아는걸 혼자만 모르고 있어서 그렇다. 래퍼 비와이가 "진짜는 모두가 알아보는 법"이라고 외쳤지만, 모두가 대세를 알아보지는 못한다. [대세예보]유튜버ㆍ웹툰작가ㆍ웹소설작가 등, 주류로 부상한 새로운 콘텐츠 시장에서 스타가 될 사람들을 예보하는 코너다. 때론 찌질하면서도 때론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그들의 진솔한 모습을 담아 본다.

▲김규삼 작가는 “창작은 내게 쾌락이기 때문에 그 자체는 괴롭지 않지만, 그림 그리는 것은 막노동이라서 힘들다”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나경연 기자 contest@)

“널 풀어준 법을 원망해라.”

'비질란테(Vigilante)'. 공권력이 자신을 보호해 주지 못한다고 판단한 마을 혹은 개인이, 스스로 무장해 직접 자신과 마을의 안전을 지키는 자경단을 말한다. 자경단 설립 배경은 공권력에 대한 불신이다. 따라서 비질란테는 더는 사회가 시민들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불안이 극에 달했을 때 등장한다.

18일 경기도 시흥에서 만난 웹툰 ‘비질란테’ 작가 김규삼은 “시민들에게 사적 제재를 가하는 비질란테는 당연히 있어서는 안 될 존재지만, 시민의 입장으로서 법이 좀 더 피해자 위주로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은 갖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는 비질란테 같은 영웅이 시민을 지켜주는 사회가 아니라, 비질란테가 필요 없게끔 국가가 시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사회다.

네이버 웹툰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김 작가의 ‘비질란테’는 피해자의 아들이었던 경찰대 학생 김지용이, 허술한 법 때문에 솜방망이 처벌을 받고 풀려난 가해자들을 직접 응징하는 이야기다. 김지용은 ‘미성년자, 심신미약, 우발적 실수’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법망을 빠져나가는 강력범죄 피의자들을 찾아내고, 억울한 피해자 가족을 대신해 복수한다.

“법은 구멍 나 있다. 선처를 받으면 안 되는 사람에게 선처를 남발한다. 그 구멍은 내가 메우겠다.”

▲독자들이 웹툰 ‘비질란테’에 열광하는 이유는 현실에서 시민들이 판사들의 판결에 분노를 느끼는 지점을 시원하게 지적하기 때문이다. (출처=네이버 웹툰 '비질란테')

‘비질란테’는 매회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이야기로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고 있다. 뉴스에서 접했던 사건들이 웹툰 에피소드로 재탄생되기 때문이다. 폐지 줍던 할머니를 폭행해 숨지게 했지만, 음주 상태를 고려해 가해자가 감형받은 판결, 데이트 폭력으로 경찰에 신고했지만, 더 큰 보복 폭행에 시달리는 여자들. 독자들은 웹툰 속 피해자들의 억울한 이야기를 보면서 현실에서 비슷한 일을 겪은 듯한 기시감을 느끼고, 피해자들과 함께 분노한다.

이렇게 무겁고 진지한 사회적 이슈를 다루다 보니, 독자들은 김 작가에게서 투철한 정의감을 느낀다. 김 작가는 “절대 정의감이 높은 것은 아니에요. 보통 사람의 정도인데, 차이가 있다면 다른 사람들한테 생각을 전할 수 있는 웹툰이라는 창구가 있다는 것 아니겠어요?”라며 가볍게 웃었다.

그는 “비질란테 작품 자체가 민감한 소재를 다루고 장르도 마이너하기 때문에 고민이 많았지만, 해볼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해서 시작하게 됐어요”라며 “외국에는 배트맨을 비롯한 사적 제재, 사적 복수에 대한 소재가 굉장히 많은데 우리나라에는 그런 장르가 많지가 않고, 또 있다 하더라도 거의 히트를 하지 못했어요. 이런 것도 비질란테를 그린 동기가 됐죠”라고 설명했다.

▲김 작가 웹툰에는 에피소드마다 30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린다. 댓글 대부분은 현실에서도 비질란테가 정의를 구현해줬으면 좋겠다는 내용이다. (출처=네이버 웹툰 '비질란테')

“의원님 같은 분들은 인권과 법을 책으로만 배워서 교과서에 나온 대로만, 시험 범위에 나온 대로만, 답안지에서 정답처리 될 말만 골라서 하다가 피해자의 고통을 외면하는 겁니다.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법을 외면한 의원들의 직무유기가 비질란테를 만들어 정의를 실현하게 만들었습니다.”

웹툰 속 기자와 국회의원 간 토론 장면이다. 이 에피소드에는 “국회의원한테 이 웹툰 정독시키고 독후감 써서 올리라고 하고 싶다”라는 댓글이 베스트댓글에 오르기도 했다.

현대의 법은 피의자 처벌보다 피의자 인권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타인의 인권을 짓밟은 가해자들의 인권을 보호한다는 것이 시민들에게는 법의 허점으로 다가온다. 동시에, 독자는 그런 허술한 법에 대한 책임을 국회의원에 묻고 있다. 김 작가 역시 2명의 딸을 두고 있는 가장으로서, 또 대한민국 시민으로서 법이 피해자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일반인들은 살면서 판결이 억울한 경우가 많은데, 대표적인 것이 피해자의 고통에 비해 가해자의 처벌이 너무 약한 지점이에요. 실제로 폭행사건을 그리기 전, 대법원 판례를 찾아봤는데 차마 끔찍해서 3개 이상을 읽어볼 수가 없었어요. 가끔 웹툰 속 폭행 장면이 너무 잔인하다는 댓글이 있지만, 실제 판례를 보면 웹툰 속 장면은 오히려 미미한 수준이에요.”

▲김 작가는 “작가 활동을 하다 보면 그림에 천재적 소질이 있는 작가를 많이 만났다”면서 “나는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이 아니라 많이 그린 것”이라고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나경연 기자 contest@)

김 작가의 작품 중 ‘쌉니다 천리마마트’는 드라마로, ‘비질란테’는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될 예정이다. 혹자는 작가로서 굉장한 성공이 아니냐고 묻지만, 그는 웹툰 작가라는 직업이 불안 그 자체라고 설명했다. 몇 년 뒤, 만화 시장이 어떻게 변화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초등학생들이 만화를 보지 않고 유튜브만 보는 상황은 웹툰 작가들 사이에서 위기로 간주된다. 그러기에 후배들에 대한 걱정도 늘 따라온다.

그는 “예체능이 다 그렇긴 하지만, 웹툰의 경우 하다가 잘 안 되면 정말 남는 게 없어요. 웹툰에 올인했다가 일이 잘 안 되면 경제적으로 힘들게 살 경우가 많아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금 웹툰 작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플랫폼이 많아진다는 것이에요”라면서 “네이버 같은 사이트가 여러 개 나와서 웹툰 시장의 파이 전체가 커지고, 더 많은 웹툰 작가들이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덧붙였다.

김 작가는 벌써 19년 경력 작가다. 잡지를 보던 시절, 잡지에 그림을 그리면서 데뷔했고, 2006년 네이버 웹툰에 연재를 시작했다.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창작이 힘들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그에게 창작은 인생에서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쾌락임과 동시에 감사한 선물이다.

“얼마 전 히가시노 게이고 인터뷰를 읽었어요. 창작을 어떻게 하냐고 물었더니 ‘그냥 써요’라고 말하고, 소설 속 복선은 어떻게 만드냐고 물었더니 ‘쓰다 보니 생각나던데요’라고 대답하더라고요. 저도 그래요. 스트레스받으면서 작품을 연재하는 것이 아니라 창작 그 자체를 쾌락이라고 생각하고, 창작의 순간을 즐기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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