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세예보] 웹툰 '내일' 작가 라마 "성폭행 에피소드, 대법원 판례 수백 개 찾아봤죠"
입력 2019-03-12 17:48   수정 2019-03-14 16:43

우리는 왜 인싸가 아닐까? 남들은 다 아는걸 혼자만 모르고 있어서 그렇다. 래퍼 비와이가 "진짜는 모두가 알아보는 법"이라고 외쳤지만, 모두가 대세를 알아보지는 못한다. [대세예보]유튜버ㆍ웹툰작가ㆍ웹소설작가 등, 주류로 부상한 새로운 콘텐츠 시장에서 스타가 될 사람들을 예보하는 코너다. 때론 찌질하면서도 때론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그들의 진솔한 모습을 담아 본다.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만난 웹툰 ‘내일’의 작가 라마는 “24시간 카페에서 친한 작가님들끼리 모여 밤새 웹툰을 그린다”면서 “이제는 일상이 돼 힘들지 않다”라며 미소지었다. (나경연 기자 contest@)

“찐따는 일본어 침바(ちんば)에서 유래된 ‘다리 병신’을 뜻하는 비속어야. 6·25전쟁에서 지뢰를 밟고 다리가 잘린 군인들을 보고, 멍청해서 지뢰나 밟았다고 놀리며 비하하던 단어지.”

웹툰 ‘내일’의 ‘넋은 별이 되고’ 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해당 에피소드는 6.25 참전 용사였지만 국가로부터 어떠한 보상도 받지 못하고, 재개발 지역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할아버지가 주인공이다. 나라를 위해 젊음을 바쳤는데, 전쟁이 끝나고 돌아온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는 주인공의 대사는 지금 우리가 누리는 평화가 결코 가만히 얻게 된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해준다.

8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작가 라마는 “고등학교에 다닐 때, 국사와 근현대사에 관심이 많아 역사 공부를 많이 했는데 ‘넋은 별이 되고’ 편도 그런 관심에서 나오게 된 것 같다”면서 “처음부터 특정 소재를 그려야겠다는 생각이 떠오르기보다는 평소 관심 있던 분야의 이야기나 스치듯 생각나는 이야기가 웹툰에 담기는 경우가 많다”라고 설명했다.

▲라마는 웹툰 에피소드 아이디어를 일상에서 얻는다고 말했다. 그는 “카페에 들어와서도 종업원을 보면서 생각해요. 저 사람은 집에 가서 뭘 할까. 집에 가서 오늘의 진상 손님을 욕하지 않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면 아이디어가 나와요”라며 인터뷰 장소를 둘러봤다. (나경연 기자 contest@)

웹툰 ‘내일’은 취준생 취준웅이 우연한 사고로 저승 기업 주마등의 특별 위기관리팀에서 일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자살하는 사람 수가 급격히 많아지자 옥황상제는 특별 위기관리팀을 신설한다. 이후 옥황상제는 저승차사들을 현세에 내려보내, 자살을 막는 임무를 수행하게 한다.

라마는 왕따, 거식증, 성폭행, 감정노동 등 다양한 이유로 자살을 시도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현실적으로 그려낸다. 그가 웹툰 소재로는 다소 무거운 자살을 다루게 된 계기는 대학생 때 겪은 일 때문이다.

“대학생 시절 이른 새벽에 갑자기 쾅 하는 소리가 났어요. 깜짝 놀라서 창밖을 내다보니, 아파트 주민들이 모두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몇몇 분들은 소리를 질렀고. 아파트에 살던 한 학생이 자살했던 거였죠. 그 학생은 엄마가 아는 분의 아들이었어요. 그때 연민이 생겼어요. 당시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의 자살을 막을 수 있었다면 좋았겠다’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때 경험이 ‘내일’을 그리게 된 동기가 된 것이죠.”

라마가 그리는 에피소드의 공통점은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 낸다는 것이다. 매번 1000개가 훌쩍 넘는 댓글에는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이 돼, 마음이 아프다는 내용이 대다수다. 그가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이유는 그에게도 힘든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힘들었던 시기에 느꼈던 좌절과 고통은 웹툰 주인공들의 심리를 더욱 현실적으로 그릴 수 있게 도와준다.

“자살하고 싶어 하는 재수생 이야기 ‘시간의 숲’은 제 현실적인 경험이 바탕이 됐어요. 저도 재수를 했었는데, 그때의 찌질했던 모습을 생각하면서 그렸죠.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그 시간이 제게는 끝없이 펼쳐진 숲으로 다가왔어요. 저 스스로 자격지심이 생겨 친구들에게 혹은 가족들에게 열폭하기도 했었는데, 그런 모습들이 웹툰에 반영됐다고 할까요.”

▲가장 최신 에피소드인 ‘언젠가 너로 인해’ 편은 반려견에 대한 이야기를 그렸다. 강아지 ‘콩이’와 콩이 주인과의 슬픈 이야기는 독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출처=웹툰 '내일' 장면)

“벗기기 힘든 스키니진이 벗겨질 동안 가만히 있었으니, 결국 피고인의 행위에 동의한 것 아닙니까? 왜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은 겁니까?”

에피소드 ‘숨’에 나오는 판사가 성폭행 피해자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이후 판사는 피고인이 죄를 인정하고 자신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있는 점, 성범죄로 형사 처분을 받은 전력이 없는 점, 술에 취해 우발적인 행동이었던 점 등 여러 사정을 두루 참작하여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아주 가벼운 형량을 선고한다. 단순히 웹툰 속 픽션이 아닌, 실제 현실에서 벌어졌던 이 재판은 라마에게 큰 충격을 줬다.

“에피소드 ‘숨’은 그리기 전부터 고민이 많았어요. 내가 이걸 웹툰으로 그려서 피해자에게 더 큰 상처를 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요. 그런데 지금이 아니면 나중엔 겁을 먹어서 더 다루지 못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최대한 정확한 내용을 담기 위해 관련 다큐멘터리와 신문 기사를 찾아봤죠. 특히 성폭행 사건의 대법원 판례를 다 찾아봤어요. 80년대부터 2019년까지 다 공부했죠. 혹시 내가 일부의 내용만 보고 오해한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 때문에 몇백 건의 판례를 다 봤는데, 대부분 가해자 형량이 2심에서 크게 깎이는 것을 보고 안타까웠어요.”

라마의 걱정과 달리 에피소드 ‘숨’의 댓글은 웹툰으로 위로를 받았다는 내용이 다수였다. 한 명의 독자가 자신도 성폭행 피해자로서 자살을 원하는 주인공이 공감된다는 댓글을 달자, 그 댓글에 또 다른 댓글 수백 건이 달리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를 건넸다. 독자들은 댓글 쓰기라는 행위를 통해 같은 경험을 가진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보이지 않는 연대를 형성했다.

▲라마는 “웹툰을 시작하면 보통 눈이 나빠지는데 저는 신기하게 더 좋아졌다”면서 “아무래도 신체가 생존을 위해 스스로 진화한 것 같다”라고 호탕하게 웃었다. (나경연 기자 contest@)

라마가 네이버웹툰에 올린 첫 웹툰이 ‘내일’이다. ‘내일’은 네이버웹툰 자회사인 네이버 스튜디오N과 슈퍼문픽처스가 드라마 공동제작을 확정했다. 독자들은 라마가 단숨에 스타가 됐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그가 웹툰 작가가 되기까지의 과정도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라마는 미대를 졸업한 뒤, 디자인 회사에 들어가 디자이너로 일했다. 하지만 회사가 영세해 영업도 뛰어봤고, 행정업무도 처리했다. 그러다가 창작에 대한 갈증이 심해져 과감히 일을 그만두고, 웹툰 학원에 등록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 이것을 극복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지만 그만큼 창작 욕구가 높았기 때문에 도전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웹툰 작가는 엉덩이 싸움 같아요. 웹툰 작가에 도전하는 사람끼리 이런 말이 있거든요. 베스트도전에 30화까지 올렸는데도, 정식 작가가 안 되면 접어야 한다고. 저는 신경 안 썼어요. 제가 하고 싶은 일이니까 30화가 넘어도 꾸준히 올렸죠. 그러다가 33화를 막 올렸을 때, 네이버웹툰에서 전화가 왔어요. 웹툰 작가로 등록하시겠냐고. 미래 계획도 똑같아요. 끝까지 엉덩이 붙이고 작가 일을 하고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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