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기자가 만났다] 포커 플레이어로 변신한 임요환 “포커는 도박 아닌 마인드스포츠”
입력 2019-02-07 11:27   수정 2019-02-07 11:33
[이투데이 김정웅 기자]

▲e스포츠 불멸의 레전드, ‘테란의 황제’ 임요환. 그는 이제는 포커 플레이어다. 또한 포커가 도박이라는 인식에 맞서는 국내 포커계의 선구자 중 한 명이기도 하다. (김정웅 기자 cogito@)

“포커는 도박 아니에요”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임요환의 말이다. 하지만 그는 시종일관 진지했고, 설득력 있는 논리를 펴나갔다. 1일 서울 상암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임요환은 인터뷰 내내 포커를 스포츠의 한 종류가 아니라, 도박의 일종으로 여기는 국내 인식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황제’ 임요환. 애들 공부 방해한다고 손가락질 받던 PC게임을 스포츠의 반열로 격상시킨 사람. 그런 그가 이제는 한국에서 ‘노름’이라고 지탄받는 포커를 '스포츠'로 정착시키려 하고 있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항상 가시밭길을 걷고 있다’고. 사회의 편견이라는 ‘러커밭’을 단신으로 돌파하려는 ‘황제’의 마린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임요환은 프로게이머 시절 “우리 아들 게임 너무 많이 하는데 따끔하게 한 말씀 해주실 수 있나요?”라는 질문을 정말 많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손흥민 선수에게 우리 아들 축구 좀 못 하게 해달라거나, 이대호 선수에게 우리 아들 야구 좀 못하게 해달라고 말해달라는 사람은 없잖아요?”라며 실소를 터뜨렸다. (김정웅 기자 cogito@)

◇“‘포커=도박’ 편견 넘으면, 신 스포츠 시장 열 수 있어”

전직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임요환은 2013년부터 포커 플레이어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바로 직전까지는 프로게임단 SKT T1의 감독직을 맡고 있었다. 포커 플레이어가 된 가장 결정적 계기는, 아직까지도 자신에겐 선수로서의 피가 끓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그렇다해도 다시 프로게이머를 할 만한 나이는 아니었죠. 아무래도 ‘피지컬’(반응 속도ㆍ멀티태스킹ㆍ마이크로 콘트롤 등 게임에 필요한 신체적 능력을 말하는 e스포츠 용어)이 예전같지 않으니까요.”

이때 먼저 포커 플레이어로 변신했던 옛 프로게이머 동료 이창훈이 포커의 세계를 알려줬다. 이창훈은 세계 포커 시장의 흐름, 비전과 함께 포커의 정석을 알려주는 교과서인 댄 해링턴의 ‘캐시 게임’까지 선물하면서 임요환의 눈을 열어 줬다. 프로게이머 시절에도 심리전을 좋아했던 그는 포커에 금세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포커에 입문한 후 1~4년 차까지도 번 돈 대부분을 참가비 체류비용 등으로 쓰며 버텼어요. 5년 차가 된 지금은 수익이 나고 있죠.” 현재 임요환은 아시아권 포커 대회에서 사이드 이벤트(한 대회 내의 작은 규모 경기) 우승 트로피 6개, 메인 이벤트(대회 내 큰 규모 경기) 우승 트로피 2개, 준우승 트로피 2개를 갖고 있다.

▲베트남에서 1월 열린 아시안포커투어(APT) 챔피언십 이벤트에서 결승 상대와 맞붙은 임요환(오른쪽). 제대로된 방송 중계가 아닌 인터넷 방송 플랫폼 트위치TV로 송출한다는 점에서 방송 인프라가 미흡하다는 인상을 준다. (트위치TV 캡처)

그가 올해 1월 우승한 포커 대회를 보면 어딘가 어수선하다는 느낌이 든다. 황제 임요환의 프로게이머 현역 시절, 결승전이 아닌 일반 본선 경기보다도 어딘가 후줄근하다는 인상을 주는 포커 경기다. “베트남에서 열렸던 아시아포커투어(ATP)였어요. 사실 제대로 된 방송중계라기보다 대회를 홍보하기 위해 주최 측에서 캠코더 세 개 정도 가져다 두고 급조해 찍은 영상이라고 봐야죠. 서양의 큰 대회에서 하는 경기는 이렇지 않아요. 방송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죠.”

만약 한국에서 포커 대회가 열린다면? 임요환이 가장 아쉬워하는 지점이 이것이다. “우리나라는 서양보다도 훨씬 잘할 수 있습니다. e스포츠를 만들어낸 스포츠 종주국이잖아요. 다이나믹한 연출 노하우, 방송 인프라와 스포츠로서의 발전 잠재력, 이를 기반으로 배출해낸 수많은 e스포츠 스타플레이어들… 이 모든 것이 포커와 접목되면 거대한 시장을 열 수 있는데 너무 안타깝죠.”

그가 꿈꾸는 것처럼 서울 한복판에서 열리는 포커 대회를 볼 수 있으려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 있다. 바로 ‘포커는 도박’이라는 세간의 인식이다. 임요환이 말하는 포커와 도박의 차이는 무엇일까?

“흔히 포커 대회라고 하면 포커 플레이어가 돈을 칩으로 환전해 대회 참가자들의 판돈을 쓸어가는 대회라고 생각하세요. 하지만, 실제 포커 대회는 전혀 다릅니다.”

▲“실제 포커 대회는 돈 넣고 돈 먹는 ‘캐시 게임’과는 달라요. 편견만 넘어서면 여러분도 얼마든지 마인드스포츠로서의 포커를 즐길 수 있습니다” (김정웅 기자 cogito@)

포커 대회에서는 정해진 참가비를 내고 1회 혹은 2회 정도 주최 측이 정해준 횟수만큼만 참가가 가능하다. 칩은 참가자들에게 게임을 진행하기 위해 제공하는 ‘부루마블’의 돈과 같은 형태로 지급되며, 현금과 환전하는 개념이 아니다.

이 칩을 모두 가져가는 최후의 1인이 남을 때까지 포커 대회를 진행하지만, 1등이 참가비를 다 쓸어가는 것이 아니다. 1등부터 전체 참가자의 상위 약 12%까지 정해진 액수의 상금을 차등적으로 가져가는 구조다.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 참가비를 내고, 참가비가 높은 큰 대회는 받는 상금도 큰 대회. 바둑과 골프의 대회 운영과 같은 방식이라고 봐야죠. 플레잉 카드를 사용한다는 이유로 포커 대회만 도박이라고 규정짓는 건 일종의 편견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포커 쇄국정책’ 중…“스포츠로 만들 수 있는 저력 아까워”

임요환은 아직 한국 만이 일종의 ‘포커 쇄국정책’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북미, 유럽, 남미같은 서구권에서부터 시작해 이제는 필리핀, 베트남, 대만같은 아시아권까지 ‘마인드스포츠’로 포커가 유행하고 있어요. 그간 한·중·일 동아시아 3국은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중국은 재작년, 일본은 작년부터 포커 대회를 열고 있습니다. 카지노가 아닌 스타디움에서요. 포커 불모지는 한국 하나만 남았다고 봐야겠죠.”

만약 사회의 인식이 개선돼 국내에서 포커 대회 개최가 받아들여진다면 그 정착 속도는 e스포츠와 비교할 바 없이 빠를 것이라고 봤다. “e스포츠는 세상에 아예 없었던 것을 새로 만드는 과정이었습니다. 하지만 포커는 이미 스포츠로서의 역사가 100년이 넘었어요. 개척은 이미 세계 시장에서 끝났고 한국은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거죠.”

▲임요환은 무리하게 가산을 탕진할 만큼 도박으로서 포커를 즐기는 사람은 애초에 프로 포커계에 입문조차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김정웅 기자 cogito@)

임요환은 ‘포커 치면 집문서 날리는 것 아니냐?’라는 사회적 인식완전히 대척점에 있는 자신만의 포커 금언을 하나 소개하기도 했다. 바로 ‘뱅크롤의 법칙만 지키면 망하지는 않는다’라고.

“당연한 말이기도 한데, 포커 플레이어가 전 재산을 다 포커에 거는 게 아닙니다. 각자 자신이 포커 플레이에 사용하겠다고 정해둔 한도가 있어요. 이걸 ‘뱅크롤’이라고 합니다. 참가비가 자신의 뱅크롤의 1~2% 정도 되는 대회부터 차곡차곡 쌓아가야 큰 손해를 안 보고 포커 플레이어로서의 생활을 지속할 수 있습니다. 처음 포커 가르칠 때 100달러를 줘 보고, 다 잃고 돌아오는 사람은 보통 다시 가르치지 않습니다. ‘뱅크롤의 법칙’이라는 자기 자신과의 약속을 못 지키는 사람은 아쉽지만 재능이 없다고 판단하는 거죠. 이것만 명심하시고 포커를 하면 최소한 망하지는 않을 거에요.”

◇e스포츠의 아이콘, 그리고 집안의 가장 임요환

어느 스포츠에나 엄청난 기량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선수는 있다. 하지만 e스포츠라는 하나의 스포츠가 새로 생겨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고, 또 존재만으로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의 아이콘이 된 임요환 같은 선수는 찾아보기 힘들다. 게이머들 사이에 널리 퍼진 “우리 엄마도 임요환은 안다”라는 관용구는 그의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전성기의 프로게이머 임요환은 실력도 최고였지만, 실력만으로 e스포츠의 아이콘이 된 것은 아니었다. “2001년. SKY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때였던가요. 정말 인생에서 가장 바쁜 한 해였던 것도 같아요. 리그는 리그대로 진행되고, 국제대회도 참가했어요. 매일매일 들어오는 방송사, 신문사 인터뷰, CF촬영, 심지어는 영화 촬영까지 하면서 ‘프로게이먼데 이런 것도 해야 되나?’하는 생각까지 했었어요.”

▲임요환(오른쪽)이 가장 바빴던 것으로 회상한 2001년 열린 ‘2001 스카이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우승자 기념 촬영. ‘가림토스’ 김동수(가운데)에게 우승을 내주고 말았지만, 이때 프로게이머 활동을 알리는 대외활동으로 바빴던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고. (출처=OGN '2001 스카이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우승 기념 촬영)

과도한 대외활동의 여파일까? ‘2001 SKY배 스타리그’에서 임요환은 ‘가림토스’ 김동수에게 우승을 내줬다. “더 열심히 연습에 매진했다면 그 대회에서 우승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제가 우승 한 번 더하는 것보다 그때 저를, 그리고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을 여러 사람에게 알린 게 훨씬 가치 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해요. 더 많은 분이 e스포츠와 프로게이머를 알아줬기 때문에 지금의 임요환이 있는 것이 아닐까요?”

지금의 e스포츠 대세 종목인 리그오브레전드. 이 종목의 역대 최고의 스타플레이어인 ‘페이커’ 이상혁을 보면 뿌듯한 마음이 든다고. “많이 알려진 것처럼 제가 처음 프로게이머 시작했을 때 월급 150만 원을 받았고, 전성기에도 연봉은 2억 원 정도였어요. 이상혁 선수는 지금 몇십억 원의 연봉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이 선수가 중국에 가면 그 몇 배로 받을 수 있다고 들었어요. 프로스포츠는 정상급 선수의 연봉이 그 스포츠의 규모를 말해주는 거잖아요. 이상혁 선수 보면 e스포츠가 어디까지 왔는지 알 수 있는 건데, 볼 때마다 뿌듯할 수밖에 없죠.”

20대 초반의 전성기 잘생기고, 게임도 잘하는 꽃미남 프로게이머였던 임요환은 이제 불혹을 바라보는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됐다. 집에서의 임요환은 어떤 가장인지 물었다.

“저는 아빠나 남편으로선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 제 딸은 저 같은 사람 안 만났으면 할 정도예요. 제가 원래 한 곳에 집중하면 주위에 신경을 못 씁니다. 일에 집중하다 보면 가까운 이들에게, 심지어 딸들에게까지 무심하게 느껴졌을 것 같아요.” 기자를 당혹게하는 ‘황제’의 허심탄회한 소회였다.

“이 모든 걸 인내해주고, 제가 한 곳에 집중하느라 신경 쓰지 못한 걸 다 챙겨준 사람이 가연 씨에요. 한 우물만 팔 줄 아는 제게 해결사가 돼 주는, 너무 든든하고 인생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죠.” e스포츠계에선 임요환의 부인인 김가연을 ‘그분’의 ‘그분’이라고 부른다. 김가연은 게이머가 아님에도 e스포츠계의 별칭이 생긴 만큼의 이름값을 하는 ‘황제’ 곁의 최고의 조력자임이 틀림없어 보였다.

▲‘황제’ 임요환이 있게 한 또 한 명의 인물, 숙적 홍진호(사진 오른쪽)다. 프로게이머 현역 시절 임요환과 홍진호의 더비 매치는 통칭 ‘임진록’이라고 불리며 열릴 때 마다 온라인 상의 큰 화제를 몰고 다녔다. (출처=OGN '아이옵스 스타리그 04~05' 오프닝 캡처)

임요환은 김가연과 함께 지금의 그를 만들어준 또 한 사람의 인물에 대해 언급하며 인터뷰를 맺었다. 현역 프로게이머 시절 영원한 라이벌이었던 방송인 홍진호다.

“최근에 아시안포커투어(ATP) 세 번의 시즌에서 2위를 했어요. 3연 준우승! 진짜 1등하고 싶었던 대회들이었거든요. 진호에게 ‘3연벙’을 했던 제 업보인가 싶기도 하고….” 장난스레 ‘3연벙’(임요환이 벙커링이라는 초반 도박 전략을 홍진호에게 3회 연속 시도해 3:0으로 승리한 사건)을 다시 언급하는 임요환이지만, 라이벌 홍진호는 그의 프로게이머 인생의 윤활유 같은 역할이었다고.

“지금 와서 얘기지만 진호가 만약 프로토스였다면 어땠을까. 정말 상상만 해도 소름 끼치는 일이에요. 제가 원래 저그에 강하고 프로토스에 약했거든요. 진호야 저그를 해줘서 너무 고마워! 아니, 이건 농담이니까 이렇게 끝나면 안돼요. 진짜 하고싶은 말은 이거에요. 진호야. 네가 없었다면 너도, 그리고 나도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거야. 나와 함께 스타크래프트를 해줘서 정말 고마워!

▲하지만 이 사진을 찍을 때 임요환은 “진호야, 3연벙은 나 때문이아니라 니가 못 막아서 그렇게 된 거잖아. 내가 너 때문에 지금까지도 욕을 먹어야 되겠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못 말리는 라이벌이다. (김정웅 기자 cogi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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