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기자가 만났다] 용산참사 10년…이충연 위원장 "증거 분실한 국과수, 영화보다 기막혀"
입력 2019-01-25 16:29
[이투데이 나경연 기자]

▲이충연 위원장은 출소 후 용산참사가 있었던 남영동에 호프집을 열었다. 주변 만류에도 불구하고 남영동에 돌아온 이유를 묻자 "내가 떳떳하다는 것을 공동정범으로 몰았던 이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란다. 그는 쌍용자동차 노동자 김정욱 씨와 이창근 씨를 응원했던 메시지를 들어보이며 다시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연대'가 힘이 되어 주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나경연 기자 contest@)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일이 일어난거죠.”

건물 옥상 망루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국과수에서는 발화 원인을 찾을 증거가 사라졌다. 화재로 시민 6명이 숨졌고, 현장 책임자는 제1야당의 국회의원이 됐다.

참사 이후 1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 화재에 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미완이다. 이충연 전 용산4구역 철거민대책위원장 겸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은 이 모든 것들을 “영화 같은 일”이라고 표현했다.

2007년 8월, 오세훈 전 서울특별시장은 용산국제업무지구 특별계획구역 개발 방안을 발표한다. 곧 강제 철거가 시작됐고, 철거민들은 하나둘 동네를 떠났다. 남은 철거민들은 용산4구역 재개발을 앞두고, 이주 대책과 보상을 요구하며 반대 시위를 벌였다. 2009년 1월 19일, 사설 용역의 폭력을 피해 옥상으로 올라간 철거민은 망루를 짓고 점거 농성을 시작한다. 농성 25시간 만에 경찰특공대가 투입됐고, 결국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숨지는 참담한 결과를 낳았다.

23일 오후 용산구 남영동에서 만난 이 위원장은 용산참사 10주년이 됐지만, 여전히 그날을 떠올리기만 하면 가슴이 답답하다고 말했다. 사고 당시 아버지를 잃은 이 위원장은 특수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4년 넘게 수감 생활을 했다. 대한민국 법은 이 위원장을 비롯해 망루에 오른 철거민들을 ‘공동정범’이라 불렀다. 공동정범은 2명 이상이 공동으로 범행을 저지른 경우 성립하는 범죄다. 철거민들은 화재 원인도 밝혀지지 않은 채 방화범이 됐다.

“저를 비롯해서 망루에 올랐던 철거민을 모두 범죄 조직으로 몰았던 이명박 정권에 대한 분노는 아직도 큽니다. 지금도 제게 내려진 형량을 인정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어요. 그걸 인정하는 순간, 저는 제 손으로 아버지를 죽인 살인자가 되니까요. 진실은 언젠가 밝혀질 것으로 생각하고,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하지 못했던 진실 규명을 문재인 정부에서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20일 경기도 남양주 마석 모란공원 열사묘역에서 열린 용산참사 10주기 추모제에서 유가족들은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끝까지 싸우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연합뉴스)

지난 20일, 경기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에서 용산참사 10주기 추모행사가 열렸다. 1주기 추모행사부터 지금까지 10년 동안 유가족들이 요구하는 것은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검찰 내 과거사위원회가 생기면서 두 과제가 속도를 내는 듯하지만, 이마저도 순탄치 않다. 이 위원장은 과거사위원회의 독립성 문제를 꼽았다.

“10년 전 용산참사 당시 수사팀 검사들이 승승장구해서 지금은 유력한 위치에 올랐어요. 그때 수사 총괄을 맡은 조은석 검사는 현 법무연수원장이에요. 현재 유력한 차기 검찰총장 물망에 오르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죠. 그러다 보니 수사를 진행하는 위원들이 많은 압박을 느껴요. 현재 수사팀에 있는 7분 중 2명은 아예 사퇴했고, 2명은 출근조차 안 해요.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는 이유라고 봐요.”

설사 조사 결과로 책임자에 대한 처벌 판결이 나왔다 하더라도 문제는 공소시효다. 공소시효가 지난 사건이기 때문에 당시 사태의 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 하지만, 유족들은 국가 폭력에 의한 사건에는 공소시효가 따로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뒤늦게 몇몇 의원들이 ‘반인권적 국가범죄의 공소시효 배제 등에 관한 특례법’을 발의했지만, 아직 국회 계류 중이다.

유족들이 처벌을 원하는 책임자는 김석기 자유한국당 의원이다. 김 의원은 당시 서울지방경찰청장으로, 경찰특공대의 진압을 최종 승인한 총 책임자다. 그는 용산참사 이후 일본 오사카 총영사를 거쳐 한국공항공사 사장에 임명됐고, 2016년 당시 새누리당 공천을 받아 20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앞서 이 위원장은 18일 오전 유족들과 김 의원 지역구인 경주를 방문했다. 그의 지역구 사무실 앞에서 김 의원의 사퇴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앞서 김 의원이 20대 국회의원 선거활동을 할 때는 경주에서 낙선 운동을 했다. 이 위원장은 경주 시민들도 용산참사에 관해서는 진상 규명을 원하고 있으며, 용산참사에 관한 진실은 온 국민이 원하고 있는 진실이라고 강조했다.

▲자유한국당 김석기 의원은 21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용산 화재는 불법 폭력 행위에 대한 경찰의 정당한 공권력 방어"라고 정당성을 주장했다. (연합뉴스)

“용산참사 이후 1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사회는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어요. 여전히 쫓겨나는 세입자들은 많고, 그들의 권리는 보장받지 못하고 있죠. 임대료 상승으로 자영업자들이 지역에서 쫓겨나는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도 용산참사와 같은 문제 아닌가요? 쫓겨나는 세입자들의 절박한 마음. 국회의원들은 이 마음을 절대 헤아릴 수 없죠.”

이 위원장은 세입자들을 보호하는 데 필요한 것으로 ‘강제퇴거금지법’을 꼽았다. 그는 강제퇴거금지법이 퇴거 전에 세입자들에게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해주는 울타리라고 언급했다. 해당 법안은 17대, 18대 국회에서 발의됐다가 폐기되고, 20대 국회 때 다시 발의됐다. 국회에서 논의가 된 후에 상임위인 국토위까지 올라가야 하지만, 현재 국토위에는 김석기 의원이 있다. 이 위원장이 김 의원의 사퇴를 촉구하는 또 다른 이유다.

지금 유족들에게 가장 힘이 되는 존재는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 간의 연대다. 그는 밀양 송전탑, 제주 강정마을,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의 집회에 함께 참여했다. 옆에 누군가 있다는 것 자체가 힘이 된다는 것을 이 위원장은 직접 느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이한열 열사 어머니와 고 김용균 씨 어머니를 만나 서로를 위로했다. 그리고 국가의 사죄를 받기 위해 함께 싸우는 중이다.

유족들은 당시 용산참사 책임자 중 누구에게도 사과를 받지 못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오세훈 전 서울시장, 김석기 전 서울지방경찰청장, 시공사였던 삼성물산 관계자, 아무도 사과하지 않았다는 것. 이 위원장과 유족들은 사과를 받기 위해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진실 규명을 위한 싸움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용산참사를 배경으로 한 영화 ‘소수의견’은 피해자들이 국가의 사과를 받기 위해 국가를 상대로 100원 국가배상청구소송을 시작한다는 줄거리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도 엄청난 게 아니에요. 국가의 진정한 사과, 이걸 받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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