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기자가 만났다] 여준형 젊은빙상인연대 대표 "폭력코치 편든 학부모들...대응 안할 것"
입력 2019-01-24 13:44   수정 2019-01-24 13:47

▲여준형 젊은빙상인연대 대표는 연일 이어지는 기자회견과 인터뷰로 매우 피곤해 보였지만, 공정하고 정의로운 빙상계를 위한 싸움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나경연 기자 contest@)

“글쓴이가 누군지 알지만, 일일이 대응할 필요가 있을까요?”

여준형 젊은빙상인연대 대표와 손혜원 의원의 ‘스포츠계 성폭력 문제 재발 방지 촉구’ 기자회견은 체육계를 넘어 우리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하지만, 온갖 추측과 소문도 떠돌았다. 빙상계 선수의 학부모로 추정되는 한 사람은 “젊은빙상인연대는 낙오자 모임이고, 코치들의 폭행은 학생들을 위한 일이었다”는 내용의 글을 올려 파장을 일으켰다. 이어 심석희 선수에게 상습 폭행을 저지른 혐의로 구속된 조재범 코치에 대해 “언론을 통해 인격 살인을 당하고 있으니, 학부모들이 나서자”라며 동참을 촉구하기도 했다.

23일 여의도 인근 카페에서 만난 여 대표는 “어떤 학부모가 쓴 글인지 알고 있지만, 해당 글에 일일이 대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그들은 젊은빙상인연대 기자회견이나 발언 때문에 자녀들이 손해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은 자신의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 이미지가 훼손되거나 폄하되는 것을 원치 않고, 빙상연맹이 해체돼 자녀들의 선수생활 유지가 힘들까봐 우려한다. 지도자들의 폭행이나 불공정한 선수 선발 과정을 알면서도 그동안 묵인해 온 이유일 것이다.

▲21일 여준형 대표는 조재범 코치 성폭력 사건 의혹 관련 진상규명 및 스포츠계 성폭력 문제 재발 방지 촉구 기자회견에서 전명규 교수의 퇴진을 강하게 요구했다. (연합뉴스)

여 대표가 21일 전명규 한체대 교수의 기자회견 이후 반박 성명을 내지 않은 것도 대응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 교수는 기자회견을 통해 본인의 과오로 지목되는 성폭력 은폐와 빙상연맹에서 이뤄지는 불공정한 일들을 모두 부인했다.

여 대표는 “전 교수는 자신을 향하는 비판들이 파벌 싸움 결과라는 ‘파벌 프레임’으로 몰고 가는 사람이기 때문에, 일일이 반박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면서 “한체대와 빙상연맹은 전 교수 1인 체제라 오히려 파벌이 없다”고 부연했다.

전 교수 기자회견에서 가장 많이 논란이 됐던 것은 젊은빙상인연대의 조재범 코치 회유 여부였다. 그는 당시 “젊은빙상인연대 어떤 사람이 전명규와 관련된 비리 내용을 주면 합의서를 써 주겠다고 얘기했다고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여 대표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면서 “조재범 코치와 심석희 선수 일은 성폭행이라는 굉장히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에 우리가 감히 합의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고, 합의한다면 당사자가 직접 그 구체적 내용을 얘기해봐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같은날 오후 여준형 대표의 전명규 교수는 기자회견을 통해 여준형 대표를 겨냥한 듯 “젊은은빙상인연대 사람들이 빙상 발전을 위해 활동하는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면서 연대가 어떤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는지 취재해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젊은빙상인연대는 정의롭고 공정한 대한민국 빙상을 바라는 단체다. 여 대표를 비롯해 대중에게 이름이 익숙한 김아랑 선수, 노선영 선수 등 20여 명의 빙상계 선수가 함께한다. 이들이 단체를 만들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는 국민들의 변화를 직접 체감했기 때문이다. 지난 평창올림픽 당시, 남북 아이스하키 단일팀에 몇몇 선발 선수들이 출전하지 못하게 되자, 국민들은 공정성 문제를 제기하며 크게 반발했다. 이를 본 여 대표는 이제 국민들이 메달이나 결과 우선주의에서 벗어났다고 생각, 공정한 빙상계를 위한 단체를 만들게 됐다.

여 대표는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교 4학년 때까지 선수생활을 했고, 고1 때 쇼트트랙 국가대표팀 활동을 시작했다. 한체대를 졸업한 이후에는 전 교수 밑에서 조교생활을 1년 동안 했다.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빙상계의 정 가운데에서 전 교수 지휘 아래 돌아가는 불공정한 시스템을 보고, 느끼고, 견디면서 선수를 위한 단체의 필요성을 느꼈다. 특히, 선수 보호에 가장 힘써야 하는 빙상연맹이 전 교수의 독재체제로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하는 것에 큰 분노를 느꼈다.

젊은빙상인연대가 추구하는 근본적인 목표는 ‘선수들 인권 보호’다. 메달과 상관없이 훈련 과정에서 선수의 인권이 보호되는 환경을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대표가 남자인데 여성 선수들에게 빈번하게 일어나는 성 관련 문제를 과연 이해할 수 있겠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여 대표는 “제가 남자라서 다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단순히 그 문제에만 국한치 않을 것”이라면서 “선수 인권보호라는 더 포괄적인 목표를 향해 노력하면 자연스럽게 불식시킬 수 있는 우려”라고 말했다.

▲조재범 코치는 심석희 선수를 상습 상해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상태다. (연합뉴스)

심석희 선수 미투발언 이후 언론과 정치권은 시끄러웠지만, 선수들이 실질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변화는 전무한 상황이다. 피해를 본 선수들이 피해 사실 폭로를 꺼리는 이유 중 하나다. 폭로하게 되면 사생활이 공개되고 명예훼손을 비롯한 갖은 소송에 시달려야 하는 2차 피해가 발생하지만, 변하는 것은 없을 것이란 부정적 전망이 크다.

특히, 선수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이 모든 사태가 끝난 뒤 전 교수가 다시 돌아오게 되는 일이다. 이 때문에 여 대표는 가장 시급한 과제로 ‘인적 쇄신’을 꼽았다. 그는 “지금까지는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자에게 징계를 주고 연맹에서 쇄신안을 발표하는 순서를 따랐는데, 다시 피해자가 생기면 똑같은 순서만 반복될 뿐, 근본적 문제는 바뀌지 않았다”면서 “우선 전 교수가 모든 직책에서 물러나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물론 전 교수가 물러나고 새로운 사람으로 그의 영향력을 받는 사람이 올 수도 있지만, 전 교수가 물러났던 것이 상징처럼 남아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본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연맹에 들어오는 새로운 사람들을 빙상계 사람이 아닌 아닌 외부 전문가로 채워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여 대표는 파벌 논란에 휩싸일까 봐 젊은빙상인연대 활동을 시작한 후 지도자 생활도 접었다. 현재 수입이 0원인 그는 살 수 있을 정도의 돈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또 다른 인터뷰 일정을 위해 자리를 뜨는 그의 휴대전화는 쉴 새 없이 울렸다.

“빙상이 정의로워졌으면 좋겠다는 이 생각 하나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 시끄러운 일들이 정리될 때까지는 열심히 해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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