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이코노미] '빌리어네어 보이즈 클럽' 폰지사기…조희팔·P2P 다단계 금융사기로 환생

입력 2019-01-21 11:15수정 2019-01-22 14:25

  • 작게보기

  • 기본크기

  • 크게보기

▲조 헌트(안셀 엘고트 분)는 자신의 인맥과 입담, 딘 카니(태런 에저튼 분)의 명석한 두뇌를 이용해 비버리힐즈 재벌들을 대상으로 엄청난 규모의 투자금을 모으기로 계획한다. (사진제공=워너비 펀)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다. 유행은 돌고 돌아 한 세기를 넘나든다. 범죄도 마찬가지다. 반세기 전 세상을 뒤흔들었던 범죄는 시대만 달리해 그대로 재현된다.

영화 '빌리어네어 보이즈 클럽'은 1980년대 미국 남부 캘리포니아에서 벌어진 '빌리어네어 보이즈 클럽(BBC) 금융사기 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을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의 줄거리가 어색하지 않은 이유, 지금 이 순간 똑같은 범죄가 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BBC 금융사기의 핵심은 ‘폰지사기’다. 폰지사기는 일종의 다단계 금융사기로, 신규 투자금을 가치 있는 사업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투자자에게 이자나 배당금으로 지급하는 것이다. 이 방식은 1920년대 미국에서 찰스 폰지가 벌인 사기 행각에서 유래됐다. 폰지로부터 약정된 비율의 수익금을 받은 투자자들은 자신의 지인까지 2차 투자자로 추천했다. 몇 달 만에 투자금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지만, 투자자들이 투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하면서 폰지 사업은 순식간에 몰락한다.

영화 속 조 헌트(안셀 엘고트 분)와 딘 카니(태런 에저튼 분) 역시 폰지사기로 돈을 모은다. 그들은 재벌 2세 친구들에게 ‘금 투자’를 유도하는 투자 설명회를 하고, 소액의 투자금을 지원받는다. 조 헌트의 예상과 달리 금값은 폭락하고, 투자금은 절반밖에 남지 않는다. 이들은 투자자들에게 절반이 남은 투자금을 수익금이라 속이고, 수익률을 50%라고 생각한 친구들은 더 많은 금액을 투자한다. 재벌의 가족까지 투자에 뛰어들면서 BBC 기업은 막대한 규모로 성장하지만, 이들의 사기를 눈치챈 투자자들이 투자금을 회수하면서 BBC는 파산을 맞이한다.

▲딘 카니(태런 에저튼 분)는 금 투자에 실패해 투자금이 반만 남게 되자, 이 돈을 수익금으로 위장하고 수익률 50%라는 허위광고를 한다. (사진제공=워너비 펀)

100여 년전 미국에서 발생한 폰지사기는, 최근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P2P 투자에서 빈번하게 나타가고 있다. 지난해 한 P2P금융 투자자가 1kg 골드바 123개를 담보로 한 폴라리스펀딩의 P2P 금융 상품에 투자한 뒤 막대한 돈을 잃은 사건이 보도됐다. 이 업체가 제시한 골드바와 보증서는 모두 가짜였고, 허위 매물에 속은 투자자 역시 다수였다. 허위 매물을 담보로 받은 투자금은 금 투자가 아닌, 전에 가입한 투자자들의 이자로 지급됐다.

앞서 금융감독원은 P2P 금융사기가 급증하자, 지난해 3월부터 9월까지 P2P 연계대부업자 178곳을 전수조사했다. 이 중 20곳은 사기 또는 횡령 혐의가 있다고 보고 검찰과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상태다. 금융당국은 지금까지 유용된 투자자 자금이 1000억 원을 넘고, 투자자 수도 수만 명에 이르러 피해 규모가 막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P2P 금융업은 대부업과 달리 자기자본을 활용할 수 없다. 그럼에도 대다수 P2P 업체는 자기 자금으로 연체 대출을 대납하거나, 대출을 돌려막기 하는 식으로 부실한 재정 상태를 감추고 있다. P2P 업체의 문제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자 국회에서는 투자자 보호 강화를 골자로 하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이 발의됐다. 해당 법안이 통과되면 대출 관련 공시 내역이 대폭 늘어나고, 운영 업체에 재정 투명성도 높아지게 된다.

▲조 헌트(안셀 엘고트 분)와 딘 카니(태런 에저튼 분)는 자신들을 믿고 투자한 투자자들에게 죄책감을 갖지만, 점점 늘어나는 통장 잔고에 빠져들어 사기 행각을 멈추지 못한다. (사진제공=워너비 펀)

희대의 사기꾼 조희팔 역시 폰지사기로 약 4조 원을 가로챘다. 그는 2004년부터 2008년까지 전국에 10개의 피라미드 업체를 차리고, 의료기기 대여업으로 30~40% 고수익을 보장한다는 광고를 냈다. 새로운 회원이 가입하면 그 가입비로 먼저 가입한 사람들에게 이자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운영했다. 이렇게 모은 투자자만 3만 명이었다. 그러던 중 사기 행각이 드러난 조희팔은 검찰이 기소하기 직전인 2008년 말 중국으로 밀항하면서 자취를 감췄다.

1920년 미국의 폰지를 시작으로 조희팔을 거쳐 지금의 P2P 금융업으로 넘어오기까지 사기 행위의 주체와 그들이 살았던 시대는 다르지만, 변치 않는 것이 하나 있다. 고수익을 노리는 서민들의 투자심리를 이용한다는 점이다. 빌리어네어 보이즈 클럽 역시 처음에는 재벌들을 상대로 투자자를 모집했지만, 높은 수익률에 평범한 서민들까지 몰려들었다. 사업이 점점 유명해지자 자신의 퇴직연금과 자식들 대학 등록금까지 투자금으로 넣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고수익. 치솟는 물가에 정체된 임금으로 하루하루가 고단한 서민들을 유혹하는 단어다. 정당한 노동으로 저축한 서민들의 재산이 금융 범죄로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지 않도록, 정부가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뉴스
댓글
0 / 300
e스튜디오
많이 본 뉴스
뉴스발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