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산단·학교인근 호텔 등 한쪽 입장만 반영해선 안돼
정부가 작심한 듯 규제 혁파를 강조하고 있는 가운데 국민 안전과 환경 보호를 위한 필수 규제인 이른바 ‘착한 규제’마저 없애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근 청와대에서 7시간에 걸친 제1차 규제개혁 장관회의 및 민관합동 규제개혁 점검회의 후 정부와 새누리당은 규제 혁파 등을 주제로 실무급 회동을 갖는 등 구체적인 후속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하지만 정부의 이러한 규제 개혁 움직에 대해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규제 개혁에 칼을 빼들었지만 한쪽의 입장만 듣고 무조건 풀어 주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사회적인 합의를 기반으로 세운 규제마저 폐지할 경우 갈등만 증폭시킬 수 있다는 것.
24일 산업계 등에 따르면 여수산업단지 공장 증설 문제를 비롯해 푸드트럭 합법화, 학교 인근 호텔 설립 제한 완화 등이 폐지 찬반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대표적인 규제들로 꼽힌다.
여수산단의 경우 여천NCC를 비롯한 기업들이 공장 증설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녹지 13만5000㎡를 공장용지로 바꾸는 녹지개발 계획을 전남도청에 제출했고, 상반기 중에 규제를 해소해 투자를 이끌어 낼 방침이다. 기획재정부는 해당 기업들의 계획대로라면 5조원 규모의 신규 투자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지역 시민단체들의 반발이 크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녹지 훼손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 같이 규제를 완화하는 것은 대기업 특혜”라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학교 인근의 호텔 설립 문제도 논란의 도마에 오른 대표적 사례다. 정부는 이번 규제개혁 점검회의를 통해 학교 인근에 호텔 설립을 허용할 수 있도록 관련 법 개정에 착수하기로 했다. 앞서 대한항공의 경우 서울 풍문여고, 덕성여고, 덕성여중 인근에 호텔 건립을 추진했으나, 학교 주변 200m 이내에 호텔, 여관 등이 들어설 수 없는 현행 학교보건법에 따라 서울중부교육청으로부터 불허 결정을 받은 바 있다.
관련 법 개정 소식에 시민단체들은 “학교정화 구역 규제가 사라지는 것”이라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호텔이 들어서면 운동회, 체육 활동 등 정상적인 교육에 지장을 받게 될 것”이라며 “중·고교 인근에 호텔이 들어설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이미 나왔는데도 정부가 법을 바꿔가며 호텔을 짓도록 해주는 것은 특정기업에 대한 특혜”라고 주장했다.
1톤 미만 일반트럭의 푸드트럭 합법화는 형평성 논란에 휩싸였다. 노점상인들은 “푸드카도 리어카냐, 좌판이냐, 트럭이냐의 차이가 있을 뿐 같은 노점상인데, 푸드카는 합법화하면 다른 형태의 노점상은 단속한다는 것인가”라고 반문하고 있다.
유사분야 음식점들도 합법적인 거리음식 출현에 불안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서울 노량진의 한 분식집 운영업주는 “푸드트럭이 합법화되면 노점들이 다 소형트럭으로 개조할 것”이라며 “분식집 앞에 또 다른 이동식 분식집(푸드트럭)이 생기는 꼴”이라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