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초, 시속 97km 쾌속질주… 한번 충전하면 400km까지 ‘OK’
우리는 이제껏 전기차로 대변되는 친환경차 시대를 먼나라 이야기로 여겼다. 결국 그때까지의 과도기를 ‘엔진과 전기모터’가 결합한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책임질 것이라고 믿어왔다. 그러나 느닷없는 미국 전기차 메이커 ‘테슬라(TESLA)’의 돌풍에 전 세계 완성차 메이커가 당혹해 하고 있다.
이제 막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우리 주변에 퍼지기 시작한 상황에서 테슬라는 제품 경쟁력과 경영 측면에서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며 단번에 도약했다. 내연기관 자동차와 경쟁해도 뒤지지 않는 성능과 편의성을 갖췄고, 이를 바탕으로 실질적인 판매와 수익에서도 성공하고 있다.
◇테슬라, 자동차 업계의 애플되나 = 전기차는 미래의 주역이 될 친환경 자동차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단점투성이였다. 비싸고 주행거리가 짧으며 충전도 쉽지 않다. 한 마디로 살 수 있는 자동차가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테슬라는 자동차 산업의 ‘애플’로 불리며 혁신적인 기술력을 앞세우고 있다.
테슬라의 전기차는 소비자들의 극찬을 받았고 회사는 올해 초 분기이익에 도달했다. 전기차가 갖고 있는 한계의 대부분을 극복하면서 단번에 변방에 머물던 전기차를 산업의 중심으로 끌어당긴 것이다.
테슬라는 로드스터(2인승 스포츠카) 모델인 ‘테슬라X’와 세단 모델인 ‘테슬라S’ 등 두 가지를 시장에 선보였다. 전기차는 제품원가가 비싸다. 갖가지 기술력도 필요하다. 테슬라는 영국 로터스의 소형 오픈 스포츠카 ‘엘리스’를 베이스 모델로 도입했다. 테슬라는 엘리스를 바탕으로 디자인을 수정하고 전기차로 재탄생시켰다. 이를 통해 개발비를 크게 절감한 것은 물론, 검증된 기본 성능을 구현할 수 있게 됐다.
◇전기차에 슈퍼카에 맞먹는 가치 담았다 = 테슬라의 혁신은 작년 말 선보인 고급 세단 테슬라S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제껏 전기차는 비싼 기름 값을 대신하고 배기가스를 줄이는 운송수단으로만 여겼다.
그러나 테슬라는 접근 방식을 달리했다. 아무나 탈 수 없는 가치와 독창적인 디자인을 바탕으로 전기차의 가치를 품었다. 이는 돈 많은 ‘얼리어답터’의 구매 본능을 건드리는 성과로 이어졌다.
주요 타깃은 독일산 고급 차량을 구매할 수 있는 중산층부터 50만 달러 이상의 차를 살 수 있는 ‘하이퍼 럭셔리’까지 폭넓게 잡았다.
기존 자동차 업체들은 전기차의 본질을 경제성과 친환경성에서 찾고자 했다. 그러나 테슬라는 운전의 즐거움과 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고가의 소비재’에 초점을 맞췄다.
여기에 일반 자동차와 비교해도 모자람이 없는 성능을 얹었다.
기본적으로 모터를 굴리는 전기차는 엔진보다 가속 성능이 우수하다. 내연기관 자동차는 가속 페달을 밟아도 엔진 회전수가 상승하는 데 물리적인 시간이 소요된다. 그러나 전기모터는 전원을 ‘켜는(ON)’ 순간부터 최대 회전수를 즉시 발휘할 수 있다. 테슬라는 이 같은 전기차의 특성을 최대한 활용해 고성능과 운전의 재미, 그리고 개성이라는 가치를 모두 잡았다.
깐깐하기로 이름난 미국 컨슈머리포트는 테슬라S에게 100점 만점에 99점이라는 놀라운 평점을 부여했다. 컨슈머리포트는 닛산과 GM의 전기차에게 각각 69점과 68점이라는 박한 점수를 준 곳이다.
◇BMW M5를 단박에 추월하다 = 고급 세단을 표방한 테슬라S는 독일 스포츠 세단의 대명사인 BMW M5를 성능에서 앞질렀다. 미국 현지의 한 자동차 전문매체가 실시한 가속 테스트에서 테슬라S가 M5를 추월한 것이다.
V8 트윈터보 엔진을 장착하고 최고 출력 560마력을 내는,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세단’을 표방했던 M5를 테슬라의 전기차가 앞지르면서 세상은 테슬라를 달리보기 시작한다.
로드스터인 테슬라X는 288마력 전기모터를 바탕으로 정지상태에서 시속 97km(60마일)까지 3.7초 만에 주파한다. 이는 포르쉐 ‘991 터보’와 맞먹는 수준이다.
테슬라의 전기차는 배터리를 차 바닥으로 낮춰 차의 무게중심을 획기적으로 낮췄다. 코너에서 웬만한 스포츠 세단보다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같은 고성능과 개성을 앞세운 테슬라의 전략은 시장에서 제대로 먹혔다. 이탈리아 스포츠카 마세라티와 영국차 재규어를 닮은 디자인도 개성으로 똘똘 뭉쳐 있다.
한 마디로 포르쉐와 마세라티 등 고성능 브랜드와 경쟁하면서 ‘개성’이라는 가치를 더 얹었다. 테슬라의 돌풍이 글로벌 완성차 업계의 전기차 전략에 적잖은 파장을 불러오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공간 활용도와 차 무게에서 이익을 얻기 위해 작은 경차나 준중형차의 콘셉트로 전기차를 만들던 차 회사는 ‘닭 쫓던 개 지붕 처다보는’ 신세가 됐다. 테슬라가 전기차 성공의 교과서가 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