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신경영 3.0시대]고인수 전 삼성인력개발원 부원장 “삼성의 적은 내부 20년, 성공 잊고 기본 돌아가야”

입력 2013-06-07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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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와서 하는 얘기지만, 그 당시 삼성이 신경영을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지 생각하니 끔찍합니다.”

삼성 신경영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지난 1993년 이건희 회장이 신경영을 선포한 후 신경영 실천사무국장으로 그룹 내 신경영을 전파하는 역할을 한 고인수<사진> 전 삼성 인력개발원 부원장이다.

그는 삼성그룹의 국내외 사업장은 물론 중앙정부, 사법기관, 금융기관, 대· 중소기업, 협회, 단체, 연수원, 대학 등에 모두 770여 차례에 걸쳐 출강해 10만여명에게 삼성 신경영 철학을 전파한, 자타가 공인하는 ‘신경영 전도사’다. 그는 삼성전자 부사장 시절 성균관대학 상임이사로 파견돼 성균관대의 변화와 혁신을 주도했다. 현재는 창의적·도전적 차세대 리더를 육성하기 위해 설립한 사단법인 ‘창조와 혁신’의 리더십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 5일 서울 종로 집무실에서 만난 고 전 부원장은 20년 전 삼성과 지금의 삼성을 비교하며 감회에 젖었다. 이날은 특히 미국 안방에서 삼성전자가 애플 제품의 판매금지를 이끌어 낸 날이기도 했다. 1993년 미국 전자제품 매장 구석에 희뿌연 먼지를 뒤집어쓴 채 방치돼 있던 삼성 제품이 20년 만에 미국 본토 제품을 밀어낸 것이다.

고 전 부원장은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는 모든 것을 다 바꿔라’라는 화법으로 시작한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비전은 양적 성장의 한계에 부딪힌 한국경제의 몰락을 예견한 혜안의 결과”라고 정의했다. 이제는 질로 승부해야 한다는 메시지였다는 것.

“신경영은 이 회장이 주창했지만, 변화의 주체는 바로 삼성 임직원이었습니다. 신경영에 대한 공감대 형성과 변화에 대한 신뢰감 형성이 가장 시급한 과제였습니다.”

이를 위해 고 전 부원장을 중심으로 한 신경영 실천사무국은 그룹 임직원 전 계층에 대한 교육을 진행했다. 사내 방송을 통해 매일 이 회장의 국내·해외 강연 내용을 방영했다. 신경영 교육은 점차 확대돼 사내 모든 임직원은 물론, 협력업체 경영관리자 7000여명과 대리점주 1만1000명까지 참여했다.

고 전 부원장은 “이 회장이 ‘배수의 진’을 치고 신경영을 주도하면서 임직원들도 적극 동참하게 됐다”고 상시 상황을 돌아봤다. 밤 10시가 돼야 퇴근하는 삼성맨들을 오후 4시에 퇴근시킨 7·4제, ‘불량 해결을 위해 라인을 멈춘다고 회사가 망할 지경이라면 내 사재를 털어서라도 여러분에게 봉급을 주겠다’고 외친 것 등을 이 회장의 배수의 진 사례로 들었다.

물론 위기는 있었다. 신경영 5년 만에 터진 IMF. 그러나 이 회장은 이를 위기이자 기회로 삼았다.

고 전 부원장은 “IMF는 우리의 현실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기회였다”며 “삼성은 조직 인력을 30~40% 축소하고 본사 조직의 슬림화, 사업 구조조정, 전략적 제휴 및 사업 매각 등 구조개혁을 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앞으로 삼성이 나아가야 할 또 다른 20년에 대해 “삼성의 적은 외부가 아닌 바로 내부에 있다”며 “기본으로 돌아가서 다시 한번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2등은 1등만 열심히 따라 잡으면 되지만, 1등은 더 이상 보고 배울 대상이 없습니다. 삼성은 지금부터가 진짜 위기인 것이죠. 20년 전 신경영과는 또 다른 방법으로 다시 한번 변화가 일어야 합니다. 삼성은 윤리와 창조경영을 꾸준히 강조하고 있지만 아직 멀었습니다. 윤리와 창조경영 그리고 사회공헌의 삼박자는 삼성이 100년 기업으로 나가기 위해 더욱 강화해야 합니다.”

고 전 부원장은 삼성이 세계 초일류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임직원들이 행복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삼성은 지금 과도한 경쟁으로 인해 많은 임직원들이 지쳐 있습니다. 회사를 위하는 로열티도 많이 약화됐고, 인간존중의 풍토도 많이 희석돼 보입니다. 인간미, 도덕성, 예의범절, 에티켓이 삼성헌법 1조라고 하나 이것을 실제 업무에 적용하고 강조하는 경영자가 과연 얼마나 되는지 의문스럽습니다.”

그는 “고객을 속이고, 협력사를 쥐어짜고, 직원들을 불행하게 해서는 초일류기업이 될 수 없다”며 “도덕, 창조, 홍익인간의 정신이 살아 숨쉬는 삼성의 기업문화를 배양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삼성의 미래를 책임지는 직원들에게는 겸손하라는 말을 건넸다. “겸손 없는 자부심은 자만이 되고, 겸손 없는 용기는 무모함이 됩니다. 겸손 없는 비즈니스는 고객을 무시하게 되죠. 삼성맨이 일류에서 초일류로 가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겸손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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