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보험사, 진정한 乙이 돼라- 김덕헌 금융부장

입력 2013-05-23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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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보험사가 설립된 지 90년이 지났다.

1876년 강화도 조약 체결 직후 일본의 니혼생명, 쿄사이생명, 치요타생명 등이 부산, 인천, 목포에 대리점을 개설하고 영업을 시작하자, 위기감을 느낀 국내 자본가들이 1921년 국내 최초 보험사인 조선생명을 설립했다.

이듬해 최초 손보사인 조선화재(현 메리츠화재)가 설립돼 일본 보험사와 시장 경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국내 보험시장은 일본 보험사들이 주도했다. 그러던 일본 보험사들은 2차 세계대전 패배와 함께 계약금을 환급해 주지 않고 우리나라를 도망치듯 빠져나갔다.

막대한 금전적 손실을 본 보험 가입자들은 보험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 보험산업 성장의 발목을 잡았다.

국내 보험산업은 60년대 들어서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박정희 정부의 경제개발계획 추진과 생보사의 저축기관 지정으로 단체보험을 통해 성장의 발판을 마련한다.

70년대 들어서는 단체보험이 점차 개인보험으로 전환됐고, 1977년을‘보험의 해’ 로 지정할 정도로 가파르게 성장했다.

80년대 들어서는 생보사가 기관투자가로써 자본시장 육성에 기여했고, 90년대에는 보험시장 개방과 금융자율화 등 조치로 경쟁체제가 가속화됐다.

2000년대 들어 막강한 자본력과 브랜드를 가진 외국계 거대 보험사가 국내시장에 진입해 시장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

90년 역사의 국내 보험산업이 자산 600조원 규모의 거대시장으로 성장했지만 경영시스템과 영업 문화는 아직 미성숙돼 있다.

역사는 백세(百歲)를 바라보고 있지만 시장 성숙도는 지천명(知天命)을 못 넘은 듯 보인다.

국내 보험업계는 지난 90년간 외형성장에만 주력해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0년 들어 방카슈랑스가 도입되고 인터넷과 텔레마케팅을 통한 보험영업이 시작됐지만 그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저임금의 주부 설계사를 통한 모집인 영업이 주축을 이뤘다.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주부 설계사들은 한 푼이라도 더 많은 급여를 받기 위해 가족, 친척, 친구 등을 찾아가 보험 가입을 권유했던 게 보험영업의 실상이었다.

보험에 대한 전문지식이 부족했던 주부 설계사들은 복잡한 보험상품을 제대로 설명을 못 해주다 보니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

문제는 80~90년대 주부 설계사 모집인시대는 그렇다 하더라도 가입자에게 재무설계를 해 줄 정도로 보험설계사의 전문성이 높아진 현재에도 한해 보험민원이 5만건에 육박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성과위주’ 영업 관행이 개선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보험사의 일선 영업소는 매일 영업 전쟁을 벌인다. 영업소장들은 사무실 게시판에 막대그래프를 그려 놓고 아침 저녁으로 보험설계사들을 압박하다 보니 불완전 보험판매가 만연될 수밖에 없다.

심지어 영업소장의 압박에 지인의 명의를 도용해 보험계약서를 작성하는 ‘가짜 계약’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일부 영업소장들은 가짜계약을 노골적으로 요구한다고 한다.

보험(保 지킬보, 險 험할험)은 글자 그대로 고객의 위험을 지켜주는 지킴이가 돼야 한다.

보험가입을 권유할 때는 모든 보장이 다 되는 것처럼 하다가 막상 보험금 청구 상황이 발생하면 이런 핑계 저런 핑계로 보험금 지급을 회피하는 행태는 이제 사라져야 한다.

그러나 보험민원은 모집과정의 불만이 27.8%, 보험금 산정 26.8%를 차지할 정도 불안전 판매와 보험금 지급 회피가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보험산업은 인간이 태어나서 사망할 때까지 전 생애주기의 위험 보장을 상품으로 판매한다. 그 만큼 시장의 사이클이 크다.

따라서 고객과의 분쟁으로 고객을 잃어버린다면 다시는 되돌아 오지 않는 것이 보험산업의 특성이다.

그 만큼 보험산업은 고객에 대한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130년 역사의 글로벌 금융그룹인 푸르덴셜은 '가족사랑, 인간사랑, 신뢰' 을 창업정신으로 하고 이다. 인간애와 신뢰를 바탕으로 한 경영철학이 푸르덴셜을 세계적 금융그룹으로 성장하게 한 것이다.

국내 보험사들이 백년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보험사들은 금융당국이 민원 감축을 요구하기 전에 고객을 갑(甲)으로 생각하고 진정한 을(乙)이 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보험사가 고객을 돈 버는 대상이 아닌 평생 같이해야 할 동반자로 여길 때 보험민원은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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